A NEW CONSTRUCT / 건축 큐레이터 컬렉티브 CAC 크루
건축 전문 큐레이터 컬렉티브 CAC의 김희정, 정다영, 정성규는 느슨한 연대로 뜨거운 화합을 이룬다.

정다영이 입은 레이어드 블레이저와 펜슬 스커트는 코스. 블랙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정성규가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는 잉크(Eenk). 팬츠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경사진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단면도 ⓒ김석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김희정이 입은 블랙 롱 재킷은 레하. 화이트 팬츠는 잉크. 화이트 이너 톱과 레드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다영이 입은 블랙 풀오버와 언밸런스 멀티 플리츠스커트는 준지(Juun.J). 블랙 슈즈는 지안비토 로시.
배경사진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모형과 초기 구성 ⓒ김석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5월 10일 개막하는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 예술감독을 맡았다. 한국관 설립 30주년이기도 한 올해, 총괄을 맡은 건 어떤 의미인가?
김희정 2018년에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기획팀으로 일했지만, 30주년이 되는 해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많은 전시가 열렸음에도 한국관 자체를 조명하는 전시는 없었다. 한국관의 과거 30년을 정리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는 건축물의 탄생과 소멸의 과정, 즉 건축물의 생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도 ‘30주년’이라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했다.
정다영 덧붙이자면, 우리 구성원이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의 전문 기획자가 전시를 맡았다는 점은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신선한 전환적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는 경험 디자인이기 때문에 내용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뿐 아니라, 형식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관객 입장에서 전시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설계 방식에 관해 고심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관의 과거, 현재, 미래와 국가관의 지속 가능성을 조망한다. CAC가 바라본 한국관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정다영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말이 떠오른다. “과거가 미래를 구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분절된 시점처럼 느껴지지만, 전시를 준비하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중요한 지점을 건드린다는 걸 30년이 지난 현시점에 보여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건축계에서 30년은 한 세대가 새롭게 등장하는 시기이자 건축물을 철거할 수 있는 연한이기에 건물의 수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된 메시지다.
단순한 화이트 큐브가 아닌 이 공간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해 전시를 꾸리는 일은 어떤 경험이었나?
정성규 전시 준비 과정에서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 교수의 아카이브와 다방면의 리서치를 통해 한국관을 깊이 있게 살펴봤다. 설립 당시 발생한 제약 조건으로 인해 건축물이 철거 또는 이동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된 것은 한국관이 여전히 유효한 공간임을 체감하게 했다.
정다영 한국관은 건축물 외부와의 관계성을 고려한 특수한 조건 아래 탄생했다. 이를 발견하고 작품의 설치나 관람의 시선을 전시장 안에만 두지 않기로 정했다. 건축물이 말하는 실질적 개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한국관 외부까지 전시 사이트로 삼는다는 설정이다. 작품 설치에 한국관 지하, 지상, 옥상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배치도 역시 주변의 수목을 모두 표현해 그 역시 전시의 일환임을 드러냈다.
김희정 2024년 10월, 큐레이터 3명과 작가 4명이 다 함께 베니스로 필드 트립을 떠났다. 당시 한국관 내부가 꽤 비워진 상태라 의도치 않게 공간을 다양한 방향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단이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 바닥을 내려다보고 주변 수목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둘러보는 등 전시장 내부의 모서리, 굴곡, 건물의 재료, 조망, 외부와의 관계까지 폭넓게 관찰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한국관이 수많은 감각을 작동시키는 공간임을 느끼게 했다.
공식 전시명이 결정되기 전, ‘나무의 집’이라는 가제가 있었다. ‘나무’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
김희정 나무는 한국관을 비롯한 모든 국가관에게 보호 대상으로 작용한다. 베니스라는 도시 자체도 나무 기단 위에 건설되었고,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카스텔로 공원 자르디니는 베니스 내 유일한 공원이다. 이런 장소적 특성 때문에 수목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반드시 필요로 한 거다.
정성규 벨기에관, 프랑스관, 영국관 등 초기 설립한 국가관은 나무가 없는 빈 공간에 건축했지만, 1950년 이후에는 빈 곳이 점차 사라지면서 수목이 있는 공간에 국가관을 건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 흐름 안에서 수목을 지켜야 하는 규율은 점차 강해졌다. 그렇기에 국가관마다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국가관은 나무를 품고 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대화와 협력을 이어가지 않을까.
전시의 제목이 무척 독특하다. 어떻게 결정됐나?
정다영 ‘두껍아 두껍아’라는 전래동요에서 착안했다. 가사를 살펴보면 이번 전시의 메시지와 맞닿은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너희 집에 불 났다/쇠스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우리가 한국관을 바라보는 시선, 여러 정치사회적 문제로 국가관들이 맞이한 변수, 이런 변화를 새롭게 전환하려는 시도 말이다. 무언가를 재건하고, 고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은 건축이 지닌 근본적 영향력과 연관이 있다. 이런 면에서 ‘두껍아 두껍아’의 가사는 건축적 언어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두꺼비가 동서양 공히 재생과 변화의 상징물인 점 역시 제목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도코모모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전시 <장소의 재탄생: 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다. 10년 넘게 관계 맺기를 이어 오며 좋은 점은 무엇인가?
정다영 의지가 많이 된다. 서로 성격이 참 다른데, 그래서인지 각자 부족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묘하게 잘 메워준다. 각자 명확한 롤도 있다. 나는 주로 일을 벌리는 역할을, 정성규 큐레이터는 그걸 옆에서 잘 다듬는 역할을, 김희정 큐레이터는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잘해준다.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는 형태로 굳어졌고, 그렇기에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부딪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깊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느슨한 부분도 공존한다.
정성규 함께 보낸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해를 거듭할수록 더 그렇다. 최근 들어 밀도 있는 협업을 전개하는 것이지, 이전에는 CAC 활동과 각자의 일을 병행했다. 그럼에도 서로가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전시를 하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봤다. 단순히 ‘저 사람이 뭘 하는지 봐야지’가 아니라, 밀접하게 고민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 관찰과 관심이 쌓여 강한 에너지를 만든다.
함께하기를 결정한 계기가 있었나?
정다영 서로의 일을 직간접적으로 도우며 우리가 지향해온 건축 큐레이터의 정체성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많은 대화 끝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겠다 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 ‘CAC’라는 이름도 그렇게 탄생했다. 목소리를 모았을 때 또 다른 차원의 영향력이 발휘되니까.
고민 끝에 정의한 건축 큐레이터의 정체성이나 역할은 무엇인가?
정성규 계속 바뀌는 중이다. 올해는 건축물의 생애에 대한 관점을 주도적으로 연결하고, 그게 전시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기다려진다.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지 않을까.
정다영 CAC에게 전시는 리서치 프로젝트다. 물리적으로 완성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 큐레이터로서 사회와 환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 배움의 과정 안에서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다. 이것저것 해보며 조금은 열린 체계 속에서 일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같은 건축 전문 큐레이터지만 서로 다른 부분도 있나?
정다영 속했던 배경이 달라서 발생하는 차이가 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오래 일했고, 김희정 큐레이터는 일대일 파빌리온 중심의 프로젝트를, 정성규 큐레이터는 마이크로한 스케일에서 디테일한 것을 관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희한하게 프로젝트를 다루는 규모의 차이가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의 차이도 생긴다. 내가 큰 요소들을 본다면 정성규 큐레이터는 디테일한 걸 잘 본다.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키는 규칙 같은 것도 있나?
정성규 서로 ‘오케이’를 해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 실리적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고, 이걸 왜 해야 하는지를 합의해야 한다. 공통 관심사에서 시작해 수많은 이야기를 거쳐 결정된다.
정다영 우리가 같이하면 재미있겠다 싶은 동기 부여가 중요한 것 같다. ‘이걸 하면 재밌겠는데?’ 하는 식의 직관적 감각. 합일이 이루어져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거다.
일 외에 어떤 것을 도모하나?
정다영 육아. 나와 김희정 큐레이터는 아이를 키우는데 정성규 큐레이터는 아직 아이가 없다. 나는 아들이 커서 성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클 수 있어?”(웃음)
정성규 반대로 다가올 육아를 먼저 배운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각이 두 분에게 있으니 그 감각을 미리 경험하는 것.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면 재미있다.
다양한 변화 속 변치 않는 CAC의 고유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다영 전시를 만드는 방법론과 형식에 대해 깊이 파고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건축 전시의 맹점은 전시답게 보이지 않는 장치가 너무 많다는 거다. 전시로서 갖출 기본적인 꼴을 간과하는 경우를 많이 마주한다. CAC는 초청장, 웹사이트, 포스터, 작가 협약서 등 전시를 위해 생산되는 많은 산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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