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81끼, 2021년 1052끼, 2022년 1033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내 손으로 직접 나와 가족을 위해 집밥을 했다. 나를 독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아무튼 나는 해냈으니까. 

내가 애타게 건강을 갈구한 이유는 수만 가지에 달한다. 15년 전 시작된 불안증은 해마다 심해졌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남편은 스트레스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던 결정적 이유는 나보다 더 예민하고 불안한 아들 때문이었다.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모성애는 무기력한 마음을 다잡게 했다. 아이의 편식 때문에 가장 먼저 돌아본 건 가족의 먹거리다. 뇌와 장이 연결되어 있다(Gut-brain axis)는 것을 안 후, 장이 편안할 수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아이와 내 불안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지난 7년 동안 국내외 할 것 없이 기능 의학서와 영양서를 닥치는 대로 읽고, 관련 강의를 찾아 들었다. 경영 컨설턴트였던 나는 기업 문제를 분석하듯, 내 가족의 건강 코드도 반드시 찾아 해결하겠다는 열망에 불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답을 찾기만 하면 무조건 좋아질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먹으란 말인가 

기대와 달리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유행을 따르는 패션처럼 웰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 식단의 트렌드는 늘 변하고, 상식을 뒤집는 연구 결과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여러 논문에 휩쓸리다 보니 뭐가 답인지 알 수도 없었고, 모든 걸 포기하고도 싶었다. 온갖 식단을 시도하며 느낀 건 모두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완벽한 식단은 없다는 것. 건강한 식사는 몸 상태와 체질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것이며, 전문가의 말에 의존하기보다 내 몸이 들려주는 소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팔레오, 키토, 채식, 자연식물식 등 이름난 식단을 뒤로하고, 기본에 충실하되 내게 맞는 식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는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 어떻게 먹느냐까지 아우르는 문제였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단의 기본기를 다지는 일이다. 기본은 모든 식단의 공통점에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찾아낸 식단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가공식품이 아닌 홀푸드를 먹을 것. 2) 채소를 충분히 섭취할 것. 3) 너무 자주 많이 먹지 말 것. 4)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먹을 것. 이 네 원칙을 읽었다면 “에이~ 뻔한 이야기지”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혈당을 일시적으로 낮추고, 체중 감량에 도움을 주는 보충제나 속임수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기본기는 어느 순간 화려한 마케팅과 다이어트 식단에 밀려 잊힌 듯했다. 

점에서 선으로, 건강한 집밥 1000끼 

이렇게 기본에 집중하는 식사를 하려면 반드시 따라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내가 직접 재료를 정하고 요리를 해야 한다. 내 몸은 나만이 제일 잘 알기에 남이나 기업에게 이 일을 일임한다면 결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외부 활동에 제한이 있었던 팬데믹 기간은 매끼를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밀가루, 정제 설탕, 유제품, 초가공식품 없이 매일 집밥을 하면서 하루하루 손과 눈, 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맞는 요리를 만드는 셰프로 단련되었다. 외출하거나 여행 갈 때도 도시락을 싸거나 부엌이 있는 숙소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고집을 부리며 적어도 1년은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나를 위한 식사를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이 수련을 계속 해나갔다. 이렇게 점을 찍듯 매일 집밥을 하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 점이 모여 기다란 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고 나 역시 매일 다른 사람으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하나씩 찍어온 점은 한 끼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다정하고 성의 있게 스스로를 응원하고 돌봐주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왜 집밥과 멀어질까? 

집밥의 큰 이점은 ‘ROI(Return on Investment)’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집에서 하루 세끼 정성 들여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먹었던 그릇을 치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하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집밥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우선순위에서 한참을 밀려나 있다. 그 이유는 내 손으로 차리는 집밥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행위가 아니라 충분히 아웃소싱해서 해결할 수 있는 ‘집안 잡일(Drudgery)’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언론인이자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집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던 1970년대,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나 빅 푸드 컴퍼니는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집안 잡일인 집밥을 그들에게 맡기라고 홍보했다. 이렇게 집밥의 아웃소싱은 ‘여성의 자유’를 상징하면서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행위의 격은 추락하고, 소비자는 ‘편리함’에 더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고. 이런 움직임은 결국 빅 푸드 회사가 현대 푸드 체인에 하나씩 침투해 식사의 반 이상을 가공식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식사와 식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매일 집밥을 하며 크게 깨달은 점은 집밥은 그저 집안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찮은 일이기는커녕 엄청난 투자 효과를 가져오는 절대적 투자처다. 식재료의 주권을 가지는 일이며, 몸에 맞는 재료로 건강을 지키는 일이며, 혀와 뇌를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창조 활동이다. 더 나아가 가족을 식탁에 모이게 하는 큰 힘이자 일의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는 펀드, 비트코인, 주식, NFT보다 확실하고 리스크가 없는 이례적 투자 상품이다. 물론 집밥을 많이 해 먹자는 것이 일하는 여성이 부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남편이든 아내든 우리 모두 부엌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집밥을 예찬하다 

혹자가 그랬다. ‘매일 건강한 습관을 지속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러브 레터를 보내는 것과 같다’고. 아이 때문에 시작한 집밥이지만 사실 가장 크게 변한 건 나 자신이다. 꾸준히 건강한 집밥을 먹자 수면의 질부터 엄청 좋아졌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니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운동하고 난 뒤에는 온몸에 에너지가 끓어오르며 삶의 다음 목표가 생겼다. 늘 하고 싶었음에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더 큰 나를 찾고 싶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긍정적 에너지와 기운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를 통해 내 음식 경험과 레시피, 건강한 삶의 정보를 공유한 것도 그즈음이다.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남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힘들거나 지친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세상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책을 내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경험과 레시피를 담은 책 <집밥 예찬>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꾸준하고 건강한 집밥 경험을 통해 지혜와 행복, 건강, 긍정, 뿌듯함이 넘쳐나는 삶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당장 오늘 밤, 부엌에서 그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홀썸모먼트(노진주)_ 건강한 집밥과 웰니스의 가치를 전하는 인플루언서이자 10세 아들을 둔 엄마.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일했으며, 예민한 아들을 위해 기능 의학에 대한 논문과 책을 읽고 관련 수업을 들으며 전문 지식을 쌓았다. 오랜 시간 꾸준히 집밥을 만들며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세웠고, 이를 ‘홀썸모먼트’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공유하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집밥 예찬>_ 노진주의 건강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인기 레시피를 담은 책 <집밥 예찬>은 건강한 집밥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건강한 재료의 선택, 영양, 조리 원리, 마음가짐 측면에서 설명한다. 맛과 건강을 둘 다 잡은 밀가루(글루텐), 정제 설탕, 유제품, 초가공식품 없는 인기 레시피 약 80가지를 소개한다. 5단계의 심플한 조리 과정으로 정리해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며, 저자가 직접 그린 핸드 드로잉으로 건강한 집밥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5월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