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홍경은 항상 도달할 수 없는 꿈을 꾼다고 말했지만, 그건 영원한 자유로움인 것만 같았다.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홍경이기에. 

셔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팬츠는 베르사체 (Versace).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링은 파나쉬 차선영(Panache Chasunyoung). 브레이슬릿은 톰우드(Tom Wood).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셔츠, 타이와 팬츠는 모두 어니스트 더블유 베이커 바이 10 꼬르소 꼬모 서울(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 브레이슬릿과 링은 파나쉬 차선영.

트랙 재킷과 트랙 팬츠는 어니스트 더블유 베이커 바이 10 꼬르소 꼬모 서울. 셔츠와 타이, 슈즈와 실버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베스트는 구찌(Gucci). 셔츠는 서커스폴스. 팬츠는 이알엘 바이 지스트리트 494 옴므(ERL by G.Street 494 Homme).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 골드 네크리스와 링은 톰 우드. 실버 링은 스쿠도(Scudo).

티셔츠는 로에베(Loewe). 스카프는 서커스폴스. 브레이슬릿과 실버 링은 크롬하츠(Chrome Hearts). 팬츠와 슈즈,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느덧 세 번째 만남이고, 겨우 2년 사이 눈부시게 성장했네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잘 모르겠어요. 늘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니까요.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죠. 특히 배우에게는 더.
맞아요. 하지만 제게는 아주 중요하고 그걸 갖고 살려고 해요.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떤 걸 보강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이 일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걸 위해 계속 노력할 것 같아요. 홍경은 그런 믿음이 가는 사람이죠.
제가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해 지나친 애정을 너무 가지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몰아세우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엄청 고통 속에서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엄청 진공 속에서 살기도 싫거든요.(웃음) 거품과 진공 딱 중간, 먼지가 좀 있는 그런 상태면 좋겠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제 거를 잘 못 봤는데 이제는 봐요. 주로 못한 점이 보이고 제 몸이 반응하는 부분이, 그게 대부분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냉정히 보려고 해요.

최근에는 스스로를 냉정히 바라보면서 뭘 느꼈어요?
더 과감히 해보자. 좀 더 해봐도 되겠다.

더 극적인 것에 끌리는 요즘인가요?
맞아요. 저는 영화는 결국 이미지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영화는 주로 이미지로 압도하는 영화예요. 그런 이미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댓글부대> 역시 이야기지만, 이미지적으로도 관객을 매혹시킬 수 있을 듯이요.

그럼에도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자아도취 또한 필요한 게 아닌지.
그 자아도취를 못해요.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칭찬도 찬사도 많이 받는데, 그런 말들은 안 믿어요?
잘 안 믿는 것 같아요.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느냐 못 미치느냐가 저한텐 중요하고, 내 필모에 남기고 싶은지 아닌지가 최우선이에요. 내가 내 20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다면 20대를 아주 성실하게 살고 있네요.
다 가버렸어요. 이제 다 가고….(웃음) 발버둥치는 사이 20대가 끝나버렸어요.

뭘 향해서, 뭘 위해서 발버둥친 것 같아요?
새로운 것. 저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에 대한…, 그 시기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있어요. 그 시기를 통과한 선배 배우들은 작품 안에서 계속 너무나도 좋은 초상들을 남기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댓글부대>와 <청설>이라는 작품은 제게 유난히 뜻깊어요. 예전 기자님과의 인터뷰에서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는데, 저는 20대는 오히려 멀리 돌아가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해왔어요?
“나는 내 길을 갈 따름이고, 그 길에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다”라는 차이밍량 감독의 말이 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20대에 좀 다른 걸 그리고 싶었고, 도전적인 거에 끌렸어요.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을 하자. 그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도 그런 두려움을 준 작품인가요?
<청설>은 2000년대 영화 같은 그런 순수성 하나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렸어요. 그 작품을 빨리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사실 오리지널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참여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요. 그래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스스로 세운 기준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거의 도달하고 있나요?
절대 못 도달하죠.

한 번도 도달한 적 없어요?
한 번도 없어요. 매번 도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맨날 고통스러워하고. 친한 형에게 늘 힘들다고 신세 한탄을 하면서 괴로워하죠. 그 형이 신랄하게 제 문제점을 꼬집어주거든요.

그런 사람이 필요하죠. 유명해질수록 대부분 좋은 점만 말해줄 테니까요.
맞아요. 그게 바로 객관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너를 위해 내가 느낀 점을 얘기해준다’는 애정과 솔직함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엔 연예인 친구들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 동료 배우들이 많이 늘었죠?
많아졌죠. <약한 영웅> <악귀>에 <댓글부대>와 <청설>에서도요. 다들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그래도 고민 있거나 할 때 믿고 의지할 동료가 많이 생겼어요. 이전에 얼마나 사람이 없었던 거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웃음)

왜 이미지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죠. 사실 매거진도 화보에서 매 순간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요.
좋은 다이얼로그가 중심이 된 영화를 보면 너무 좋죠.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도 그렇고, 그런데 많지 않아요. 결국 좋은 이미지가 저를 감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에 압도된다는 것 있잖아요? 저한테 그건 결국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좋은 예술은 인간이 갖고 있는 방어막을 뚫고 내면까지 도달할 수 있죠.
정말 그렇죠. 이번에 무대 인사를 하면서도 영화관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간은 언제나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어느 한 공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한 작품을 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고, 그 안에서 연대감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금만큼 영화관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요? 대립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게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티켓값이 비싸더라도 영화관에 올 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뭐라고.(웃음)

유튜브에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30분 정도로 압축해놓은 콘텐츠가 몇백만 조회수를 달리죠. 하지만 영화관의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거든요.
너무 바쁜 시대라 그렇겠죠. 저는 그런 클립은 보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언제나 그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노력하고요. 한 번에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피아노를 배우는 홍경 씨와도 어울리네요. 아직도 피아노 쳐요?
치고 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다른 걸 많이 배워요. 절대 돌아서는 갈 수 없구나. 그런 의미에서 연기랑도 맞닿은 지점이 있어요. 우리의 대부 알 파치노가“반복이 나를 더 이렇게 진하게 만든다(Repetition keeps me green)”라고 했듯이. 아무튼 반복, 반복, 반복이 돼야 어느 순간 되게 진해지고 선명해진다. 어느 순간 되지 않던 것이 딱 되는 순간이 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많이 느껴요.

20대가 다 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어요. 뭘 해보고 싶어요?
20대만 해볼 수 있는, 20대를 관통하는 연기. 30대가 10대, 20대 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30대에 가서는 30대의 초상을 그리고 싶어요.

세 번째 만남이지만, 처음부터 이 사람은 배우가 천직이 아닐까 싶었던 신인 배우는 오랜만이었어요. 앞으로 30년은 더 지켜보고 싶은 배우죠.
제가 그때까지 할 수 있을는지!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호기심에 가슴 뛰고, 뭔가 두려워하는 순간이 올 때 제가 건강하게 느껴지거든요. 고민을 많이 해요. 뭔가를 결정할 때도 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

작품을 결정할 때마다 오래 걸려요?
이번 <댓글부대>도 그렇고, <D.P.>나 <약한 영웅>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도 저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건강한지, 잘 사는지가 저한테 중요해졌어요. 내 삶이라는 게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 아프거나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내 삶이 곧바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옆 사람 얘기를 더 들으려고 하고,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이라도 더 표현하려고 해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bluecages인데, 음악가 존 케이지에서 따왔나요?
처음 말하는 건데 제가 이브 클라인을 좋아해요. 파란색을 보고 그냥 뭔가 압도당했어요. 파리 퐁피두 센터나 런던 테이트 모던에 가도 항상 먼저 찾거든요. 정식이 확 깨는데요. 그 파란색과 어쩌면 지구본 역시 거대한 새장이 아닐까, 그런 세상을 떠올리면서 지은 건데… 쑥스럽네요.(웃음)

<댓글부대>가 한창 관객을 만나고 있고, <청설>과 <콘크리트 마켓>을 비롯해 공개될 작품이 세 작품이나 있죠. 올해는 또 어떤 계획이 있어요?
휴! 재미난 프로젝트를 하나 해볼 거예요. 그게 뭔지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볼 거야’라고 힌트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청설>을 마무리해서 세상에 잘 내보이고 싶어요. 우리 세대가 우리 세대의 것을 그려내는 데에 일조하고 싶고, 그거에 당분간 집중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홍경이 세운 높은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거예요, 무조건.

그나저나 지금 입고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티셔츠는 어디서 샀어요?
이거요? 뉴욕 여행 갔을 때 구겐하임에서요. 보는 순간 이거 내 건데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