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의 심판대가 두려운 기업이 입을 닫기 시작했다. 외면과 침묵, ‘그린허싱’에 대하여. 

쉿! 그린허싱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는 제품이 비윤리적 노동으로 탄생한 건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건 기본,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가치관까지 파고든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 소비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무늬만 녹색인 기업을 가려내는 검증 과정도 필요해졌다. 즉, 소비자가 똑똑해져야만 하는 상황이 형성된 거다. 가치소비를 방해하는 그린워싱의 위험성이 높아지자 환경부가 기업의 그린워싱 과태료 신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가 매의 눈으로 그린워싱을 감별하고, 위장 환경주의에 총을 겨눈 결과가 ‘침묵’이라는 의외의 행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이 입을 닫기 시작한 것. 친환경 목표나 성과 자체를 숨기고 피하는 ‘그린허싱’이 등장한 거다. 

 

두려움은 침묵을 만든다 

그린허싱(Greenhushing)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에 ‘침묵, 조용히 시키다’는 뜻의 허싱(Hushing)을 더한 신조어다. “그린허싱은 그린워싱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감시와 요구가 강해지면서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기업이 만들어낸 반발 현상입니다. ‘그린허싱이 뉴노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죠.” 그린워싱 감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 슬록 김기현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스위스 기후 컨설팅 기업 사우스폴은 ‘2024 넷제로 보고서’를 통해 “12개국 1400개 기업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그린허싱이 국가 전반에 걸쳐 널리 퍼져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의아한 건 해당 기업이 모두 지속가능한 노력을 줄인 건 아니라는 거다. 1400개 기업 중 4분의 3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린다는 것. 친환경 기업일수록 투자자, 소비자,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감시와 요구를 받기에 의식적으로 축소 보고를 한다는 거다.

여기엔 기업의 친환경적 조치가 소비자로부터 의도치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일례로 이케아가 런던 그리니치에 ‘가장 지속가능한 매장’을 짓기 위해 한 슈퍼마켓을 철거한 것이 수많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해당 슈퍼마켓이 20세기 말 친환경 건축의 선구적 사례로 꼽힌 건물이기 때문. 이후 새로 지은 이케아의 그리니치 매장은 높은 지속가능성 등급을 획득하고 태양열, 빗물 등 적극적 재생에너지 활용까지 인정받았지만, 사람들은 그보다 친환경 슈퍼마켓을 철거한 사실에 줄기차게 항의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를 모조리 파악하면서까지 지속가능 활동을 드러내기가 버겁다는 입장이다. 물론 그린허싱을 하는 기업 중에는 간혹 실제로 그린워싱이 사실로 드러나자 과거에 홍보한 내용을 교묘하게 감추거나, 슬며시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린워싱 고발로 인한 중대한 소송이 오가는 걸 보고 자체적으로 발을 빼버린 거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테니까. 

그렇다면 친환경적 활동을 줄이는 것도 아닌, 그린워싱이 두려워 침묵을 지키는 것뿐인 ‘그린허싱’이 문제 되는 이유는 뭘까? 김기현 대표는 “그린허싱을 통해 기업이 당장은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의 감시와 비난을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 성과를 공유한다는 ESG 경영의 본질과 부합하지는 않습니다. 또 그린허싱 사실이 알려진다면 기업의 이미지는 그린워싱만큼 타격을 입게 되겠죠”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그린허싱을 한다는 건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지 않음을 의미한다. 계속된다면 모두가 지속가능 활동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다해야 할 기업 간 선의의 경쟁이 불가능해질 거라는 얘기다. 소비자가 가치소비를 가려내는 게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그린허싱으로 남모르게 꽁꽁 숨어버린 친환경을 가려내는, 술래잡기식 소비에서 유쾌한 승자는 없을 거다.

 

녹색 가면 벗기는 3자 검증

그린워싱에 이어 그린허싱까지. 과도한 목소리로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침묵을 지켜 혼란스럽게 하는 기업에 맞설 현명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화장품 업계에도 비콥, 에코서트, EWG 등급, 이브 비건 등 동식물을 보호하고 친환경적 제품에만 부여하는 여러 인증 마크가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검증은 제한된 항목에 대해서만 인증 마크를 제공하는 방식이라 지속가능성 전반에 대한 평가를 원하는 소비자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지속가능한 화장품이라고 단정하기 힘들거나 유사한 인증, 검증 마크가 쏟아져 진짜를 구별하는 데 피로감이 느껴진다. 이에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제3자가 검증하는 ‘지속가능성 3자 검증’이 출시되고 있다. 소비자를 대신해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서비스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지속가능 마케팅 테크 기업 ‘프로방스’가 있다.

프로방스는 ESG 전반과 관련된 검증 포인트 125개에서 검증이 완료된 항목에 한해 ‘입증’ 혹은 ‘검증’ 같은 방식으로 명시한다. 영국 편집숍 컬트뷰티는 제품 상세 페이지에 프로방스 3자 검증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에게 그린워싱 걱정을 덜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슬록의 ‘케이-서스테이너블’이 3자 검증 서비스로 꼽힌다. 슬록은 화장품 개별 제품에 대한 탄소발자국 산정, 환경적 가치,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등 총 3개 카테고리 15개 항목에 대해 정량적·정성적 검증을 진행한다. 정성적 검증은 ESG 심사원 자격을 가진 전문 인력이 수행하며, 검증을 마친 제품에 카테고리별 등급을 부여한다. 탄소발자국 분야에서 투명한 계산을 마치면 A, 환경적 가치 8개 항목 중 3개 이상을 입증하면 A,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6개 항목 중 3개 이상을 입증하면 A로, 전 항목에서 입증을 받으면 AAA 등급을 획득하는 식이다. 현재 ‘케이-서스테이너블’ AAA 등급을 받은 제품은 비욘드의 출시 예정 제품 4가지를 포함해 듀이트리의 ‘AC 컨트롤 딥 그린 카밍 클레이젤 모공팩’ ‘어반 쉐이드 안티폴루션 선’ 등이 있다.

듀이트리 마케팅팀 이현지는 “다양한 인증 서비스가 많지만 ‘친환경적이다’라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이를 종합적으로 수치화하거나 평가받을 방법이 없었는데, 3자 검증을 통해 친환경성을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어요. ‘케이-서스테이너블’ 인증을 통해 제품에 사용된 원료, 원료의 함량비, 포장재의 소재, 제품 카테고리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꼼꼼히 산정하고, 제품 자체만이 아닌 배송 과정이나 폐기물 감축 등에도 친환경적 요소가 담겼는지 검증해야 했죠. 브랜드의 ESG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확인했고요”라며 3자 검증의 절차와 신뢰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묘한 그린워싱이 생겨난다면 그린워싱을 벗겨내는 방식 역시 체계적으로 진화할 거다. 과장하거나 숨기기보다는, 팔짱 끼고 주시하기보다는 모두의 환경을 위해 진정성 있고 투명한 ‘지속가능의 시대’가 도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