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육식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다시 육식을 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채식주의자 베로니카 센트는 이렇게 고백했다. “매일 밤 고기가 나오는 꿈을 꿔요. 참치 캔과 돼지고기, 소고기를 그득 채운 핫도그를 마구 먹어 치우는 기괴한 꿈이죠.” 핫도그 악몽이 급습하기 전까지 센트는 15년간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동물 복지 차원에서 육식을 중단했지만, 최근 한동안은 내면 속 무의식이 자신에게 고기를 갈구하듯 아우성치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그가 소량의 고기와 해산물을 다시 섭취한 건 그때부터다. 10년 넘게 유지해온 식습관을 단숨에 바꿔버리는 센트의 행동이 잘못된 일처럼 느껴진다고? 사실 육식으로의 회귀는 미국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2014년, 동물 복지를 지향하는 비영리 단체 파우널리틱스는 비건과 베지테리언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응답자 중 “다시 육식으로 돌아갔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84%. 응답자의 3분의 1은 채식을 유지한 기간이 3개월 미만이었고, 절반은 “채식을 시작한 지 1년 안에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그사이 또 한 번의 변화를 거듭했을 육류 섭취 문화를 연구하고자 5년 이상 철저한 채식 식단을 유지하다가 육식으로 돌아간 채식주의자 25명을 모집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인터뷰이의 공통점은 ‘신념과 행동 사이의 부조화로 불편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던 센트는 말했다. “채식을 중단한 저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동물과 제 신념을 배반한 것 같았죠. 지난 1년간 고기, 생선, 달걀을 다시 섭취했다는 사실을 숨기고는 했죠.”
본능적으로
고기를 다시 먹는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면서도 육식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명쾌하다. 고기는 맛있기 때문이다. 영국 기자이자 한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올리버 휴는 팬데믹 때 생애 처음으로 먹은 스테이크를 두고 “입에서 버터가 사르르 녹듯 풍부하고 깊은 맛이 난다”고 표현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애 첫 모예하(Molleja)를 맛본 작가 라제쉬 파라메스와란이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고기의 냄새였다고. “이제 풍부한 육즙이 흘러넘치는 음식을 보면 설렘 비슷한 감정까지 느껴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으면 마음속 어딘가가 가득 차는 것 같거든요.”
고기에 본능적으로 끌렸다고 대답한 인터뷰이는 생각보다 많았다. 마르타 자라스카의 저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Meathooked)>에서는 “6500만 년 전 선조가 과일에 숨어 있던 벌레를 실수로 먹은 후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욕구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인간의 몸은 단백질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고기에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지금의 식탁이 얼마나 다채롭든 간에 우리는 언제나 ‘동물의 살’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이를 ‘미트 헝거(Meat Hunger)’라고도 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센트의 핫도그 악몽에 호박씨, 적양배추, 잘 익은 바나나 대신 고기가 나온 것, 육식 경험이 전무한 휴와 파라메스와란이 고기를 먹고 즉각적으로 매료될 수 있었던 것 모두 같은 이유다.
육식에 담긴 함의
육식에 대한 갈증이 오로지 영양소 때문만은 아닐 테다. 고기 앞에 항복을 선언한 이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발생한다. 어릴 적 먹은 음식에 대한 추억, 문화와 단절되었다는 소외감, 자신과 아이, 또는 배우자를 위해 매번 두 끼를 차려야 하는 불편함. 어떤 이들은 ‘모처럼 마련된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사회적인 잡식을 자청했다’고도 고백했다. 결국 사회·정서적인 이유로도 고기를 먹는다는 얘기다.
미국 푸드 매거진 <본아페티>의 에디터 제네비브 얨에게 동물성 식품은 가족의 온기를 상기시킨다. 10년간 채식주의자로 살다 2020년 다시 육식을 하게 된 건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 초기 진단을 받고서다. “엄마는 늘 가족과 제가 살아온 문화를 잊지 않게 하는 뿌리 같은 존재였어요. 그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전수받았죠.” 달콤한 코코넛 밀크와 토란을 곁들인 돼지고기 갈빗살, 밤을 넣고 삶은 닭고기, 여주와 함께 요리한 소고기까지. 다채로운 육류 요리는 서서히 기억을 잃는 엄마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방법 중 하나였다.
돌아온 육식, 다른 선택
잡식성인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동물의 삶을 앗아가야 한다는 딜레마.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멀리하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뼈에 붙은 고기를 뜯어 먹거나 랍스터 껍데기를 깨부숴 속살을 발라 먹을 때, 이 생물들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거쳤을 끔찍한 과정이 머리를 스친다. 인터뷰이 대부분도 “이런 불편한 사실이 고기에 대한 욕구를 이겨내고 신념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고기를 다시 먹는다고 해서 이 불편함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는 없다. 채식을 택한 윤리적 동기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다시 육식을 택한 이들이 조금 다른 선택지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이제 고기를 흉내 낸 비건 미트보다는 소규모 지역 농장에서 윤리적으로 사육한 고기로 만든 식품을 선택해요. 공장식 농장에서 대량생산한 고기라면 지체 없이 비건 미트를 집어 들고요.” 얨의 말이다. 그는 고기를 살 때 1인분용이 아닌 것을 고른다. 닭가슴살보다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사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을 택한다. 센트는 큰 스테이크 덩어리보다 콜드 컷 햄을 선호하고, 이왕이면 목초지에서 풀을 먹고 자란 소고기를 선택하려고 한다. 주중에는 가급적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는 중이다.
지속가능한 식습관을 찾아서
<본아페티>의 에디터 앨리샤 케네디는 말한다. “고기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삶은 훨씬 가혹하다”고. 전 세계 맛있는 요리의 주재료는 대부분 고기다. 어느 식당에 가든 채식 메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 널리 허용된 식습관으로 돌아가는 건 쉬운 일이에요. 그러니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단순히 먹고 싶어서, 혹은 영양소적으로 필요해서 고기나 해산물을 조금씩 시도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거죠.” 케네디가 가장 경계하는 건 채식과 육식 어느 쪽이든 극단적으로 치우친 식습관이다.
인터뷰를 나눈 참가자 25명은 육류 산업에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어느 순간 고기를 먹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일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엄격한 식단을 유지하려고 하면 실패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에서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들어요. 단 한 번이라도 식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패배자가 되어 채식을 완전히 포기할 확률이 높으니 그 또한 바람직하지 않죠.” 자라스카의 말이다. 채식주의자 대부분이 다시 육식을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파우널리틱스는 7년 후 또 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6개월 이상 동물성 식품을 기피해온 실험자 222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한순간에 식습관을 바꾸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서서히 바꾸려는 태도와 필요한 경우 소량의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유연한 자세가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캐나다 영양학자 데저리 닐슨이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한 끼의 식사가 내 신념과 건강 상태를 완전히 와해시킬 일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한 끼 식사일 뿐이니까요.”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이나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