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내 가을임을 깨닫는다. 가을은 전시의 계절이다. 

David Salle, ‘Tree of Life, Blue Beret’, 2023, Oil, Acrylic, and Pencil on Linen, 61×43.2×2.5cm.

David Salle, ‘Tree of Life, Gender Roles’, 2023, Oil on Linen, 182.9×248.9×3.8cm.

VARIOUS STORY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캐리커처를 그리는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가 <World People>에서 2020년부터 선보인 ‘Tree of Life’ 시리즈의 최신작을 소개한다. 그는 관람자가 작품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없게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작품 중앙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는 일관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화면 속 인물을 단절시키고, 인물 간 관계성이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질적인 이미지와 색감은 상황에 대한 명확성을 유보한다. 작품 하단에 배치된 추상적인 이미지는 더욱 모호한 분위기를 풍긴다. 상반된 요소는 한데 모여 극적인 전개를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10월 28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Pablo Picasso, ‘Bright Owl’, A.R.285, 1955, White Earthenware Clay, Engobe Decoration, Knife Engraved, Glaze, 37×31.5×4cm.

빚은 얼굴

회장님의 컬렉션이 품고 있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도예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피카소 작고 50주년을 맞아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피카소의 도예 107점을 <피카소 도예>에서 공개한다. 사진 아카이브 56점, 작가의 삶을 그린 영화 <피카소를 만나다>까지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얼굴, 여인, 신화, 투우 등 작가가 평소 즐겨 다루던 요소를 전시 구성에 활용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큰 새와 검은 얼굴(1951)’이 자리한다. 새와 사람의 얼굴을 결합한 독특한 이미지는 그의 조형이 가진 입체주의적 특성을 드러낸다. 백토와 적토로 만든 접시와 화병 위에 음각, 양각, 나이프 각인 같은 기법으로 단순하고 재치 있게 묘사했다. 2024년 1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구정아, ‘FLAMMARIOUSSS(Yvon Lambert Editions)’, 2006, Book, 34.9×26.9×8cm.

구정아, ‘Density’, 2023, Polyamide, Paint, Wood, Magnetic Levitation Device, 126.3×43.6×60.8cm.

LEVITATION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구정아가 단독 선정됐다. PKM갤러리는 <공중부양>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대형 신작 ‘Seven Stars’를 포함한 작품 20여 점을 공개한다. 작가는 모든 것이 떠다니는 기이한 세계, ‘우스(Ousss)’를 정의하고, 드로잉과 프린트, 포스터, 책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한다. 9년에 걸쳐 제작한 우스 3D 필름의 초석이 된 드로잉, 드로잉에서 증강현실(AR) 작업으로 발전한 ‘Density’를 입체로 구현한 조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다. 작품들은 서로 관계없는 듯 보이지만,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는 시각 아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0월 14일까지, PKM갤러리.

 

국제갤러리 3관(K3)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설치 전경.

BODY EFFECT

페인팅, 드로잉, 조각을 망라하며 시각예술의 물리적·개념적 한계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개인전 <Anish Kapoor>로 돌아왔다. 작가는 혀, 심장 등 인간의 신체를 검고 붉은 색채의 평면과 조각으로 추상화해 ‘생’이 가진 숭고함을 나타낸다. 작품의 형태는 추상적이지만, 질감은 섬유유리와 실리콘, 유화 같은 재료를 이용해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희고 넓은 공간 안에 병치된 작품은 함께 어우러지기도, 각자 고립되기도 한다. 작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차분하지만 불안정한 모순적 감정을 불러일으켜 작품의 대상이 된 신체의 존재와 그 존재를 초월하는 또 다른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10월 22일까지, 국제갤러리.

 

Tavares Strachan, ‘Self Portrait (Space Helmet)’, 2023, Ceramic; two parts, 90×60×60cm.

AMAZING UNIVERSE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타바레스 스트라찬(Tavares Strachan)이 아시아 첫 개인전 <Do and Be>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와 고대 문명, 그들이 사용한 기술까지. 2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관심사를 작품에 녹여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세라믹 작품은 오랜 시간 인류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 흙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2400페이지 분량의 갖가지 불가사의에 대한 사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2018-)’은 작가가 전개하는 작업의 핵심이다. 책 속 이미지와 텍스트, 맥락의 연관성을 깨고 재구성하며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알지 못하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탐구는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담은 모호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10월 7일까지, 페로탕 서울.

 

Universal Everything, ‘Transfiguration’, 2020, 4K Video, Stereo Sound.

MEDIA WORLD

현대미술 미디어 아트 전시 <럭스(LUX)>가 서울을 찾았다. 2021년 런던에서 공개한 첫 전시에 이어 열린 두 번째 전시 <럭스: 시적 해상도>는 동시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생명체의 움직임을 공학적 방식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드리프트(DRIFT) 등 아티스트 그룹 12팀이 대규모 설치 작품 16점을 선보인다. 미디어를 하나의 재료로 여기고 영상, 설치 등 여러 표현법으로 실험한다.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는 유니버설 에브리씽(Universal Everything)의 인터랙티브 작품은 전시를 찾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2월 3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박미나, ‘벽돌 집’,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74.5×52cm. 사진 아티팩츠.

HOME SWEET HOME

네모난 벽과 세모난 지붕, 연기 솟는 굴뚝과 마당, 작게 난 창문. 집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까? 박미나는 원앤제이 갤러리 재개관전 <집>을 통해 사회적으로 정의된 집에 대한 고정관념, 이상, 욕망을 복합적으로 탐구한다. 그의 회화는 방대한 범위의 색, 형태, 기호를 ‘집’이라는 주제 안에서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모양의 집은 시각적 재미를 불러온다. 1999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온 연작 ‘집’ 속 깔끔한 윤곽선은 우리의 시선을 치우침 없이 화면 위로 균일하게 이끈다. 주변 환경과 섞이며 마을, 도시, 국가로 점차 범위를 확장하는 집처럼 박미나의 작업은 작품, 공간, 관람객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무한히 확장한다. 10월 22일까지, 원앤제이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