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팅’의 날들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 ‘베드로팅’을 경험했다. 

‘베드로팅(Bed Rotting)’이 젠지를 대변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내로라하는 유력 언론이 앞다퉈 이 현상을 보도하고 분석에 나섰는데, 시작은 같다. ‟대체 베드로팅이 뭐죠?” 직역하자면 ‘침대에서 썩기’지만, 좀 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침대에서 발효되기’가 되겠다. 이 트렌드에 동참하는 건 아주 쉽다. 모든 걸 침대에 누워서 하면 된다. 드라마 <무빙>도 침대에서 보고, 간식도 침대에서 먹는다. 토너팩을 해도 되고 친구들과 밀린 수다를 떨어도 된다. 자는 것만 빼고는 모두 허락된다.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누워 있다 보면 침대에 고이다 못해 발효된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순간순간을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남기면 당신도 젠지! 틱톡에서 베드로팅 해시태그(#bedrotting)는 조회수가 1억3000만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이게 트렌드까지 되나? 이건 완전히 마감이 끝난 내 모습이잖아.’ 베드로팅을 염탐한 내 속마음은 그랬다. 밤 12시든, 새벽 5시든 긴 마감을 끝낸 에디터들은 비로소 해방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밀린 잠을 청한다. 정신이 든 후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침대에 등을 딱 붙이고 해파리처럼 그냥 있는다. 메시지가 오면 답하고, 드라마도 보고, 유튜브도 본다. 그러다 보면 출출해지는데 뭘 해먹을 기력이 없으니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손에 잡히는 간식거리를 찾아 침대에서 먹는다. 바나나, 견과류,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다. 침대 시트와 잠옷 어깨에 얼룩이 생겨 자세히 보니 초코칩쿠키에서 떨어진 초코칩이었던 적도 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뒹굴다 보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침대에서 썩기’가 아니라 ‘침대에서 환생’이다. 생각해보니 쓸개가 빠진 후 집에서 회복하던 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누워 있었고 엄마가 트레이째 가져다준 죽과 물김치도 침대에서 먹었다. 

겉모습은 동일하더라도 현재 트렌드가 된 베드로팅은 조금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베드로팅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즐거운 휴식이자 놀이이기 때문. 베드로팅에 참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이렇게 보내도 되나’라는 의심을 버리는 것. 하루를 낭비했다는 죄책감 대신 하루를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해야 올바른 베드로팅의 자세다. 

심리 전문가들은 베드로팅의 유행을 소셜 미디어 등으로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은 Z세대의 도피처로 분석한다. 사회생활 역시 젠지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올해 BBC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사회인이 된 Z세대에게 팬데믹은 혼란 자체였다는 것. 엔데믹 이후 출근을 하게 됐지만 대인관계, 사회적 매너, 조직 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그래서 Z세대는 현재 업무와 역할에 대한 자신감이 모든 세대 중 가장 낮고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가장 크다. 이렇다 보니 주중에 느낀 사회생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말은 사회적 접촉을 끊은 채 이불 속으로 도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기가 빨린다’로 표현하듯이 사람을 만나거나,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도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대신 베드로팅을 선택한다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해도 된다. 말 그대로 완전한 휴식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침대일까. 카우치로팅은 안 되나?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의자를 따로 놓을 수도 없는 작은 방이 젠지에게 주어진 유일한 공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형제 등 가족과 산다면 거실이나 부엌은 가족 모두의 공간이지 나만의 공간은 아니다. 첫 독립은 대부분 기숙사거나 원룸일 때가 많으며 ‘소파를 놓을 공간’이 새로운 로망이 될 정도다. 뉴욕, 파리, 런던 등 대표적인 대도시라면 사정은 같다. 일자리와 문화를 찾아 젠지는 대도시로 몰려들지만, 부모 지원을 받은 일부 금수저를 제외한다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수입이 역부족이다.
<뉴욕 타임스>가 젠지의 수입과 주거 형태를 조사한 기사의 제목은 ‘Z세대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였다. 그 결과 성인 젠지 중 약 3분의 1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며, ‘미국인은 성인이 되면 독립한다’는 상식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니게 됐다. 미국과 유럽 대도시에서는 집을 나눠 쓰는 ‘플랫 셰어(Flat Share)’가 흔한 주거 형태다. 친구 서너 명이 한집에 살며 주거비를 아낀다. 공동 생활의 에티켓이 적용되는 셰어하우스에서 나혼자만의 안락함은 오직 방에서 허락된다. 볕이 드는 창가에 침대를 두고 낮에는 소파로, 밤에는 침대로 쓴다. 쿠션과 러그, 눈에 보이는 벽을 좋아하는 사진과 포스터 등으로 멋지게 꾸민다. 작지만 확실한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Z세대 유행어대로 ‘현실은 시궁창’일지 모른다. 그 속에서 침대는 안온한 휴식처가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뒹구는 시간이 곧 자기 관리와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전문가들도 ‘베드로팅이 스트레스와 피로,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현대인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에 목적 없고 오히려 계획 없는 베드로팅이 건강한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한 주가 많이 피로했다면, 주말에는 느긋하게 발효되는 시간을 가져보자. 좋아하는 먹거리와 책, 아이패드 등을 두고 하루 종일 뒹구는 거다. 과자 부스러기는 좀 떨어지겠지만,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는 게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것보다 쉬울 테니까.

    에디터
    허윤선
    일러스트레이터
    신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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