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명상
삐뚤빼뚤 손 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는다. 내내 평온하기를 바라는 나의 복잡한 마음과 요가의 지혜를.
요가를 하기 전까지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엄마 따라 피트니스 센터에서 PT도 받았고, 친구 따라 발레도 배웠다. 스쿼시는 잘 맞나 싶었지만 지구력 부족으로 숨이 가빠 포기했다. 이렇다 할 것 없던 나의 운동 역사에 요가가 굵직한 선을 그었다. 3년 전, 퇴근 후 씻을 힘도 없이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게 체력 부족 탓임을 느끼고는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가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는 관심 없었다. 헉헉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운동만 피하자 싶었다. 무작정 시작했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됐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명상이 요가의 존재 이유임을.
그렇게 매주 2번씩 3년을 이어온 요가 라이프가 위태로워졌다. 왕복 4시간의 출퇴근과 불규칙한 일정 탓에 주 2회는커녕 주 1회라도 채우려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주 1회는 곧 0회가 되고, 급기야 한 달에 한 번도 갈까 말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운동이든 꾸준함이 관건이다. 한껏 늘려놓은 어깨는 다시 뻑뻑해지고, 부장가아사나로 간신히 다시 만든 허리의 커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오늘은 얼마나 아플까 걱정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요가의 존재 이유는 잊은 지 오래였고, 어느새 요가는 수련이 아닌 통증 참기가 됐다. 주변 사람에게 요가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꾸준한 집중을 되찾기 위해 고민하다 인도의 힌두교 사상가 파탄잘리가 지은 요가 근본 경전 <요가수트라>를 하루 한 구절씩 옮겨 적는 필사 명상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루 30분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에 집중하는 명상 효과를 꾸준히 느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만사 제쳐두고 필사에만 몰두했다. 적당한 크기의 줄노트와 부드러운 잉크 펜을 사고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둔 독서대를 꺼냈다. 잔잔한 명상 음악을 틀고 스머지 스틱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웠다. 종이 위에 써낼 수 있는 최선의 글씨로 파탄잘리의 말을 천천히 써 내려갔다. 책 내용을 요약하거나 축약하면 안 되기 때문에 꼼꼼히 읽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필사한 내용 중 마음에 와닿은 부분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포스트잇에 따로 정리해 보충했다. 50명 남짓한 인원이 함께 참여하는 네이버 밴드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하나둘 눌리는 ‘좋아요’에 뿌듯함까지 챙겼다. “문장 하나를 눈으로 먼저 읽고 머릿속으로 되뇌며 옮겨 적는 방법으로 필사를 했어요. 1년쯤 지나니까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집중력도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필사 명상 모임의 주최자이자 라자 요가를 안내하는 한진영 강사는 “필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로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도 향상됐다”고 했다. ‘템빨’도 무시할 수 없었다. 독서대는 책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높여 뒷목의 부담을 덜어줬고, 노트를 지그시 눌러주는 문진은 손에 불필요한 힘이 가해지지 않도록 도와줬다.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이어가는 필사는 정화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고비는 찾아왔다. 필사는 점점 숙제처럼 버거워졌고 여행과 일을 핑계로 미루는 날도 생겼다. 6개월의 긴 여정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지금 하는 필사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내면의 속삭임이에요. 필사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아요.내가 이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동기가 있다면 문제되지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수없이 핑계를 만들죠.”
한진영 강사도 처음 필사를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다. “처음 요가 이론을 접했을 때 제 사고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시간이 흘러 요가의 기본 인식과 개념이 우리의 관념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저는 ‘생각의 각도’를 바꿨어요. 나와 다른 이를 구분하고 물질적 만족을 좇는 데서 벗어나기로 했죠. 고전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거든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필사를 ‘베끼어 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요가수트라> 필사는 단순히 베껴 쓰는 일을 넘어선다. “필사는 요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 8가지 중 하나인 마음의 집중, 의지력 개발을 위한 연습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손으로 글을 쓰고 머리로 생각하고 삶에 적용하며 통합적으로 공부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고요. 명상은 ‘다라나(Dharana)’, 즉 집중에서 시작되거든요.” 흐트러진 집중을 다시 모으기 위해 필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을 계속 떠올렸다. 아사나를 하며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려고 쏟는 집중, 명상을 하며 주위로 분산된 내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집중을 필사를 통해서도 느끼고 싶었다. 필사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각 구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필사하는 행위가 아닌 책의 내용에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중도가 높아졌다. 정갈한 글씨체를 위해 손에 불필요한 힘을 가하거나 ‘좋아요’를 받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글귀를 옮겨 적는 30분은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됐다. “간혹 마음이 급한 날은 최대한 빨리 필사를 해치우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마다 이 시간은 온전히 ‘필사를 위한 시간’이라며 마음을 다잡아요. 그 마음을 지키면 필사를 하는 시간이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요가수트라> 1장 2절에는 요가의 목표를 뜻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요가 치따 브르띠 니로다흐.” 마음의 작용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요가라는 거다. “마음을 조절하려면 나 자신을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필사, 명상, 아사나 같은 다양한 과정을 수련하면서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는 게 요가의 목표 달성을 위한 첫걸음이에요.” 나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다스릴 수 있는 건 나 자신이기에 오늘도 필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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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재윤(어시스턴트)
- 일러스트레이터
- 소우주
- 도움말
- 한진영(요가 강사, <공공 요가: 모두의 요가>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