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음악을 하는 DJ 4인에게 물어본 희열
부스 위에는 대세도 장르도 없다. 자기 음악을 하는 DJ만 있을 뿐.
KICO
클럽은 신나게 놀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음악을 트는 건 모든 걸 내려놓고 놀아보자고 설득하는 일이라 여긴다. 주특기는 댄서블한 음악. 독특한 신스를 넣되 베이스는 무겁게 잡아 강약을 조절한다.
디제잉은 어떻게 시작했나?
원래 직업은 댄서였다. 10년 넘게 춤을 췄지만, 늘 나를 더 보여줄 수 있는 일에 갈증을 느꼈다. 춤춘 시간만큼 음악과도 함께했으니 이 신으로 고개를 돌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라면 DJ 사마(Sama)가 보일러룸에서 디제잉하는 영상을 본 것. 방방 뛰고 이리저리 몸 흔들며 음악 트는 모습은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당장 같이 놀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자유로워 보였다.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내 작은 몸짓, 손짓, 찰나의 표정은 사람들의 몰입에 영향을 미친다. 음악에 집중한 모습은 계산해서 꾸며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좋은 습관과 애티듀드가 몸에 배도록 신경 쓴다. 일을 할수록 더 자유롭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음악적 영감은 어디서 얻나?
사람들과의 대화.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듣는 귀가 열린다. 음악으로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게 직업이니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
지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면?
레드 피그 플라워(Red Pig Flower).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DJ인데, 그야말로 무아지경 상태로 춤추듯 음악을 튼다. 최근 한국에서 플레이하는 걸 보고서는 더 반해버렸다. 그 압도적 에너지는 자기 음악에 진심으로 몰입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아우라라고 생각한다.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최악의 컨디션으로 페스티벌 무대에 설 일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힘없이 축 늘어지던 몸이 무대에 오르니 신기할 정도로 가벼워졌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듯 집중했다는 얘긴데. 말로는 다 못할 짜릿함이다.
잘하는 DJ는 뭐라고 생각하나?
트렌드를 앞서가면서도 설득력 있는 음악을 트는 사람. 자기 흐름대로 사람을 이끌면서 노래에 희로애락까지 담겨 있다면 최고다.
내가 트는 음악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사랑. 디스코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과 화합, 평등의 가치가 배어 있는 장르니까. 내 음악을 들으며 최대한 많은 순간을 즐기고 사랑하면 좋겠다.
키코가 가진 무기는 무엇인가?
자주 듣는 피드백 중 하나가 ‘찐으로 노는 것 같다’는 말이다. 사실이다.(웃음)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시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같이 놀자고 어필하는 거다.
CO.KR
올해 3월 설립한 AOMG의 DJ&프로듀서 레이블, 솔라빔 레코즈에 합류했다. 하고 싶은 음악은 주로 이태원 클럽 케익샵에서 튼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마피아노, 브라질 발리펑크, 영국의 정글 같은 세계 전역의 문화에 기반을 둔 장르에 관심이 많다.
이름은 무슨 뜻인가?
별 뜻은 없다. 요즘은 ‘좀 유치한가?’ 싶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말하고 다닌다.(웃음)
디제잉은 어떻게 시작했나?
20대 초반, 아티스트 크루인 360사운즈나 데드엔드(Deadend)가 트는 음악을 자주 들었다. 레슨은 취미로 받았다. 업으로 삼을 각오로 시작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음악으로 돈을 벌고 있더라. 앞으로도 한눈팔지 말고 좋아하는 걸 계속하려 한다.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놀 수 있는 것. 조선시대 광대를 보면 좌중을 휘어잡는 뭔가가 있지 않나. ‘나만 보고 따라와!’ 하는. DJ도 그런 압도감을 줄 수 있다.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지난달 ‘보일러룸’에 참여했을 때. 트랙 반응이 좋아 분위기를 띄우려고 되감고 다시 틀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너무 신난 나머지 내 머리를 마구 때렸다. 맞은 건 어이없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아 묘하게 뿌듯했다.
요즘 꽂힌 음악은 무엇인가?
각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가 녹아 있는 음악이 좋다. 요즘은 남아공에서 시작한 아마피아노(Amapiano) 장르를 자주 튼다. 거기서 주로 발견되는 무그 베이스(Moog Bass)에 완전 꽂혔다. 굉장히 낮은 음역대의 소리인데, 기타 베이스로는 표현하기 힘든 두꺼운 톤이 마음에 든다.
8월 24일엔 싱글 앨범도 발매한다고.
그 곡도 무그 베이스로 작업했다. 자메이카계 런던 아티스트인 레이디 라익스(Lady Lykez)와 함께 만든 곡이다. 자메이카 MC들이 카니발 페스티벌이나 동네 사람이 모여서 노는 블록파티(Block Party) 같은 프리스타일에 익숙하다 보니 비트만 넘겨도 술술 나오더라. 일단 목소리 톤부터 사기다.
음악적 영감은 어디서 얻나?
축구를 좋아해서 빈티지 축구 유니폼 디깅을 자주 하는데, 그 취향을 음악에 녹일 때도 있다. ‘JONNA Go’라는 트랙은 축구 응원가를 샘플로 한 곡이다. 오늘 입고 온 티셔츠에는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The Sopranos)>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극 중 자주 등장하는 피가로 목걸이나 반지를 스타일링에 녹여보기도 했다.
DJ로서 목표가 있나?
축구 응원가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파키스탄, 인도 뮤지션은 전통 악기로 클럽 음악 트랙을 완성하기도 한다. 우리도 사물놀이로 클럽 EP를 만드는 거다. 혹시 모르지. 올림픽이나 월드컵 행사 오프닝이나 클로징 음악으로 쓰일 수도?(웃음)
OENN
DJ 부스에 오르지 않을 때의 삶이 곧 음악에 드러난다 믿기 때문에 오엔의 셋은 자연스럽다. 작년 한 해 그가 선 파티 메인 타임엔 내내 오가닉다운 템포 사운드가 흘렀다. 클럽 신에서는 도통 먹히지 않던 장르지만, 인간 최지원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하회탈을 쓰고 디제잉하기도 한다. 어쩌다 탈에 꽂혔나?
한국의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것에 관심이 많다. 친한 작가 형이 들려준 하회탈 스토리가 재미있길래 ‘탈을 쓴 채로 디제잉하는 영상을 찍어볼까?’ 한 게 시작이었다. 탈을 쓰니 순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음악을 트는 DJ도, 듣는 사람도 탈을 쓰고 놀면 누구의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는, 진짜 자유로운 파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제잉은 어떻게 시작했나?
6~7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히피 친구를 만났다. 오늘 마실 맥주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 그들의 자세가 좋아하는 일을 미루지 않는 삶을 꿈꾸게 했다. 그렇다면 답은 음악 하나였다. 돌아오자마자 싼 장비와 작은 작업실부터 구했다.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말하거나 춤을 추지는 않지만 음악을 셀렉하고 믹싱하는 일로 수십에서 수백 명을 움직인다. 귀가 따라온다고도 표현하는데,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눈에 담으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늘 흥미롭다.
내가 트는 음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연. 장르는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자극을 주는 아티스트 역시 모두 자연을 베이스로 하는 사람이다. 프랑스 DJ인 FKJ나 폴로앤판(Polo&Pan), 브라질의 보사노바 아티스트. 폴로앤판은 자연의 요소로 만든 타악기로 사운드를 내고, FKJ는 아내와 발리에서 살며 보고 느낀 모든 걸 음악에 담는다.
작년 유튜브에 올린 믹스셋의 배경도 온통 자연이었다.
좋아하는 걸 제대로 흡수하고 싶었다. 나무를 끌어안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옷을 벗고 자유롭게 춤췄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살아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꿈꾸는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흠뻑 몰입한다면 진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듣는 일을 직업 삼고 있으니 귀를 쉬게 해줄 환경을 찾게 되는 것도 같다.
작업실에 마음 챙김과 관련한 책이 많다. 역시 쉼을 위한 것인가?
마음이 균형을 이룬 상태가 모든 일의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코어가 무너지면 어떤 것에서도 영감을 받을 수 없다.
잘하는 DJ는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단순히 음악을 들으러 오지 않는다. DJ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때 더 반응한다. 그래서 DJ는 확실히 즐겨야 하는 일이 맞다. ‘척’하는 건 안 된다. 부스에서 연기하지 않는 것. 내가 잘하는 DJ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DJ로서 목표가 있나?
광화문에서 DJ 파티를 여는 것. 경복궁 안에서 해보면 싶다. 엿장수 옆에서 디제잉을 하는 축제에 해외 아티스트도 함께하는 거다. 한국 전통 마을 축제에서 착안한 페스티벌이면 재밌을 것 같다.
KUGEL
이태원 클럽 ‘터널’의 레지던트 DJ. 장르를 불문하고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코스믹 사운드에 빠져 있다. 디제이 부스에서 음악을 틀 때만큼은 주변을 까맣게 지워버리는 순간에 빠진다.
이름은 무슨 뜻인가?
독일어로 ‘구’라는 뜻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시작점 삼아 넓게 뻗어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최근에 리투아니아 국적의 DJ를 만났는데, 거기에선 쿠겔이 감자파이 같은 전통 음식을 뜻한다더라. 우리나라로 치면 ‘DJ 김치’ 같은 느낌인 거지.(웃음) 그냥 본명 쓸 걸 그랬나?
베를린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교환학생으로 간 독일에서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을 처음 접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안정된 길만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그 벽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경험을, 낯선 베를린 클럽에서 할 줄은 몰랐다. 그날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관심 없다는 듯 음악에만 활짝 열려 있었다. 술인지 분위기인지 모를 것에 기꺼이 취해 춤추고 노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렸다. 한국에서도 그런 순간을 계속 경험하고 싶어 디제잉을 배웠다.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음악은 누군가의 삶을 크게 한 방 흔들어놓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내 음악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터닝 포인트가 될 만큼 강한 충격을 받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터닝 포인트랄 것도 없다. 찰나의 순간이더라도 남의 시선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잘하고 싶어진다.
잘하는 DJ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그랬듯, 클럽에 혼자 음악 들으러 가는 걸 어렵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놀 각오를 해도 완전히 자유롭게 즐기는 순간은 몇 번의 찰나에 그친다. 그럼에도 그 상태를 더 오래,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DJ가 있다. 나도 모르게 음악을 따라가며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있는 걸 발견할 때 ‘이 DJ 미쳤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런 인상을 남긴 DJ가 있었나?
어제 일본의 스모킹 배럴스(Smoking Barrels)라는 형제 DJ가 이태원에서 플레이를 했는데, 딱 그랬다. 누군가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감동받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은 힐즈 앤 유로파에서 리스닝 파티를 한다길래 인터뷰 끝나면 가볼 생각이다.
내가 트는 음악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이야기. 모든 셋에는 스토리가 있다. 서로 다른 곡을 적절하게 배치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건 분명 흐름을 창작하는 일이다.
DJ로서 목표가 있나?
딱히 없다. 목표를 정해두면 그 이후가 허무해질 것 같거든. 지금까지도 그랬다. 2018년 DJ를 시작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저 매일 주어진 곳에서 음악을 트는 데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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