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얼루어>의 그린한 행보에 동참해 지속가능한 삶을 이야기하던 이들을 다시 만났다. 그때와 지금,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1 상암 노을공원의 나무 심기 활동에 참여한 양예빈 연구원.
2 재생에너지 키워드를 새긴 레고로 자신을 표현했다.
3 3월 21일 세계 산림의 날을 맞아 기후솔루션에서 진행한 행위극.

양예빈 

2021년 4월호에서 만났을 때는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의 활동가였다. 지금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의 재생에너지 연구원으로 일한다. 

2년 사이 연구원이라는 직함이 생겼다.
기후솔루션으로 이직한 지 1년 반이 넘었는데도 연구원이라는 직함은 여전히 어색하다.(웃음) 이곳의 목표는 온실가스 감축이다. 나는 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지를 연구한다. 정부나 지역의 전문가,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하거나 공론장을 만들기도 한다.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정도로 될까?’ 하는 생각이 가장 컸다. 활동하면 할수록 기후위기가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전문성을 쌓고 싶었다.

그때와 지금, 달리 보이는 것이 있다면?
작년 구글 코리아 검색어 1위가 ‘기후변화’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작년 지방선거가 보여주는 건 다르다. 기후 어젠다가 거의 실종된 수준이었으니까. 비율로 따지면 전체 공약에서 기후 공약은 한 자리 수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껏 기후변화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했다면, 이제는 사회적 논제로 삼는 일에 방점을 찍게 됐다.

당시 인터뷰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는 사회구조를 비판했다. 그 사이 기회의 장이 더 넓어진 것 같은가?
기존의 거버넌스에 청년을 끼워주지 않는 건 비슷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리가 없다면 새로운 판을 짜서 목소리를 낸다. 최근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기후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해 승소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법원 판결에 기후위기라는 내용이 명시된 것도 극히 드문 일이라 뜻깊다.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 중립법을 제정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법으로 명시한 건데, 단순한 선언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내용의 구체성이나 이행 방안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국가 예산을 배정하거나 산업 정책을 만들 때도 탄소 중립을 고려하려면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로 삼아야 한다.

기후솔루션에서 활동하는 동안 스스로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찾아가고 있다. 기후문제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초점이 미래로 맞춰져 번아웃을 겪는 사람이 많다. 지금을 즐기며 사는 것도 10년, 20년 뒤의 지구를 생각하는 일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환경을 위해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가?
아직까지 ‘탄소 중립 사회’ 하면 떠오르는 구체적 그림이 없다. 변화할 모습이 불확실하다면 동기부여가 약해진다. 어쨌든 이대로 살아지기는 하니까. 탄소  중립 사회를 가시화해서 보여주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1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의 제주 산호 보호를 위한 수중 작업.
2 삼척 석탄 발전소 반대 퍼포먼스를 펼치는 녹색연합 회원들.
3 고산 침엽수 조사 활동을 하는 임태영 활동가.

임태영 

2016년 4월호에서 만났을 때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에서 울진과 삼척 지역의 멸종 위기종인 토종 산양을 보호했다. 지금은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조직팀에서 기후, 자원 순환, 법 제도 등 녹색연합 활동 전반을 모니터링한다. 

활동부에서 관리부로 팀을 옮겼다. 이유가 있나?
관리부도 의제를 갖고 일하는 여느 부서와 다를 바 없는 활동가다. 지금까지 야생동물과 지역 주민, 정책을 대상으로 활동했다면 지금은 녹색연합의 활동가가 대상이 된 셈이다. 활동가가 형식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그때와 지금, 달리 보이는 것이 있다면?
쓰레기와 자원 순환 문제를 다루는 녹색 사회팀, 기후 에너지팀, 법 제도 개선을 위해 힘쓰는 그린 프로젝트팀까지. 다양한 부서의 구성원을 관리하다 보니 환경문제에 고루 관심을 갖게 됐다. 청년을 중심으로 한 ‘청년기후긴급행동’이 등장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 세대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당시 울진, 삼척 지역의 토종 산양을 위한 구조 치료 센터 건립을 위해 힘을 쏟았다. 성과가 있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울진군을 설득해 부지를 매입하고 운영비까지 마련했을 때, 울진 군수가 바뀌었다. 한순간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대신 작년 울진 산불 이후 산양공존센터가 들어서 훼손된 산양의 서식지를 보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산양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사와 구조부터 이행하는 초기 구상과는 다른 형태지만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다.

요즘 녹색연합의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
3년 전 신설된 해양생태팀이 최근 제주의 ‘파란’이라는 별도의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쓰레기 문제는 물론, 해양 보호 구역을 돌아다니는 관광 잠수함이나 제주 제2공항, 미군 기지 문제 등. 녹색연합 전문 기구로서 최근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해양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기대가 크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
대중의 관심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래전부터 녹색연합과 함께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그린 캠페인을 통해 수익금을 지속적으로 기부해온 <얼루어>만 봐도 그렇지 않나.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환경문제가 있다면?
전자 폐기물 문제. 지난 30년간의 보고서와 사진 자료를 보면 그저 막막하다.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 자료를 보관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건 명백한 낭비다.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는 동안 스스로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올해로 11년 차가 됐다. 신입 활동가를 보면 내가 자꾸만 쉽게 가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성적으로 대하는 일은 없는지를 자주 검열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가끔은 ‘우리가 하는 일에 성과라는 게 있기는 할까?’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덤덤해진다. 과정에서의 작은 변화와 만족점을 찾아내는 건 활동가 각자의 몫이다.

 

1 문래 청소년 수련관에서 꿀벌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송권일 대표.
2 꿀을 수확하기 위해 밀랍을 제거하는 모습.
3 미나리를 감싼 대형 사이즈 허니랩. 4 코코넛으로 만든 허니 포켓.

송권일 

2015년 4월호에서 만났을 때는 서울과 경기 지역 8곳에서 양봉가로 일했다. 지금은 벌집으로 만든 친환경 식품포장랩 브랜드 ‘허니랩’을 운영한다. 

허니랩은 어떻게 시작했나?
양봉을 하며 꿀벌과 벌집을 가까이하다 보니 이를 활용해 물건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허니랩 전에는 스틱 형태의 꿀을 판매하는 사업도 했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접었다. 제작 과정부터 제품 자체도 환경에 이로운 물건을 고안한 끝에 2018년 밀랍으로 만든 친환경 식품 포장 랩인 허니랩을 론칭했다.

밀랍으로 만든 랩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
천에다 밀랍과 송진, 코코넛 오일을 발라 방수가 되게끔 만드는 원리다. 미세한 기공이 있어서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고, 항균 효과를 지닌 송진과 밀랍 덕에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같은 유해균을 99%까지 막아준다. 단점이라면 단가가 비싸다는 것. 대중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때와 지금, 달리 보이는 것이 있다면?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꿀벌의 수만 140억 마리가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벌통의 60%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그때도 토종벌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사실 안일하게 대응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게다가 서양종은 엄청난 포화 상태였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11월에 개화하는 마당에 벌이 건강히 자랄 리가 없다. 지금 같은 여름엔 벌통 하나에 3만 마리까지 있어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6000 마리 남짓한 수준이다.

벌이 사라지면 지구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
식물 번식을 책임지는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금세 식량난을 겪게 된다. 생태계 전반이 무너지고, 변질된 생태계는 고스란히 꿀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될 거다.

8년 전,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밀원식물을 식재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안타깝게도 산림청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가로수 조성, 관리에 관한 규정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공원이나 길에 나무와 식물을 심을 때 꽃이 피는 시기와 꿀, 꽃가루의 양 같은 생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관리할 규제가 없다. 요즘 공원을 보면 꽃이 많지 않다. 있어도 벌레가 가지 않거나. 밀원식물 대신 화려하고 예쁜 꽃만 심는다는 얘기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
시민의 의식 수준은 분명 높아졌지만, 적극적인 행동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경제적으로 가장 편하고 값싼 물건을 찾게 된다. 50원으로 10개 살 수 있는 걸 알면서 500원 주고 1개를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대중의 행동을 끌어낼 필요도 있다.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환경문제가 있다면?
대체 플라스틱. 100%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이 개발된다면 허니랩도 필요 없어진다. 단순히 친환경 아이템을 만드는 것으로는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사업 외적인 방향으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고민하고 있다. 점점 운동가나 활동가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웃음)

 

1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3>에서 쓰레기 정리 작업을 마친 노리플라이 정욱재.
2 올해 봄, 정욱재가 직접 주최한 하이킹 행사.
3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3>에서 다회용기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참가자.

정욱재 

그룹 노리플라이의 기타리스트. 2010년 얼루어 그린 캠페인 에코 콘서트 무대에 섰다. 2018년 4월호에서 만났을 때도, 지금도 조경학을 공부하며 솔로 프로젝트 튠(TUNE)과 강연 등을 기획해 환경과 관련한 목소리를 낸다. 

지난 4월 노리플라이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신곡 소식은 5년 만인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그 무렵 시작한 공부를 작년 8월에야 끝마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올 초부터 노리플라이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도 새 앨범을 낼 예정이다. 다시 음악인으로 돌아가는 중이다.(웃음)

어떤 것을 공부했나?
조경학은 크게 도시 재생, 도시 계획, 가드닝 등의 파트로 나뉘는데, 나는 아웃도어 디자인 쪽에서도 등산로, 둘레길 파트로 학위를 받았다. 공원 같은 생태 환경을 조성할 때 어떻게 하면 자연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그때와 지금, 달리 보이는 것이 있다면?
환경문제를 논할 때 주로 시민 의식을 고취하려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한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느낀다. 여전히 ‘텀블러를 써야 한다’ ‘북극곰의 집이 녹는다’는 인식에만 머무른다면 변화를 끌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 일반 시민이 환경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연구하거나 제도 장치를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어 반갑다. 지식은 계속해서 공론화되어야 한다. 학문에 그치지 않고 대중의 언어로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공부를 하면서도 환경 메시지를 음악에 담는 튠 프로젝트를 이어온 이유인가?
그렇다.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환경문제를 차용하고 있지만, 음악 분야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1년 발매한 싱글 ‘문래동’을 끝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지역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처음 튠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
환경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삶 전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결국 환경문제는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는 음악적으로 풀고 싶은 메시지가 떠오르고,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공부를 하고 싶어진다. 학회나 컨퍼런스에서 접한 정보도 음악적 영감을 준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환경 폐기물 저감 캠페인 ‘eARTh’의 자문을 맡고 있다. 음악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08년 처음 ‘eARTh’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는 분리수거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걸 생각하면 지금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이제는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로 향하는 단계다. 올해 <뷰티풀 민트 라이프>의 푸드존은 일회용품을 없앴다. 참가자도 텀블러나 다회 용기를 지참하고 있다.

명함에는 뮤지션에 이어 그린 액티비스트(Green Activist)라는 직함을 넣었다. 스스로를 활동가로 규정하나?
그렇다. 음악 활동을 할 때도 이 본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노리플라이 콘서트를 할 때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하는 활동을 홍보한다.(웃음)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환경문제가 있다면?
최근 지방 곳곳에서 빈집이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비단 낙후된 시골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지역 소멸’이 환경문제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