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정말 아름다운 것일까? 솔직하게 말한다면, 노화는 아름답다기보다 귀찮은 것이다. 

VOGUE PORTUGAL REVOLUTION ISSUE, APRIL 2023 
COVER ART DIRECTION | JOSÉ SANTANA, EDITOR-IN-CHIEF | SOFIA LUCAS

“나이 먹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30대다. 나 역시 그랬다. 무례한 사람들이 종종 행하는 ‘나이로 후려치기’를 제외한다면 나이를 먹는 게 너무 좋고 감사하다는 여자들이 더 많은 때다. 나 역시 30대가 좋았다. 나를 몰라서 헤매던 날에 안녕을 고하고 ‘줏대’ 있게 살게 됐다. 쓸 만큼은 돈을 벌었고, 시간을 관통해온 친구와 동료, 가족은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다. 외모는 어땠을까? 의학적으로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생각해보면 스물세 살이 아니라 서른너댓 살쯤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옷을 사도 실패하지 않았고, 진한 쌍꺼풀에도 왠지 침착한 분위기가 깃든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요즘 시대가 그런지, 시술도 관리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늙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체력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노화, 별거 아니군. 자연스럽게 나이 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내가 결정적으로 ‘노화’를 느낀 건 새치가 나기 시작했을 때다. 가르마를 중심으로 한 가닥, 두 가닥 올라오던 새치가 열 가닥, 수십 가닥이 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겠다고 했지만, 그냥 두기는 어려웠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머리카락 조금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그동안 어떤 염색도 하지 않고 자연 머리를 고수해왔는데, 그제야 그건  내가 자연 갈색 머리를 좋아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난생처음으로 ‘뿌리 염색’을 시작했다. 한 번 갈 때마다 5만5천원이 드는데, 돈도 시간도 아까워 웬만하면 안 가고 싶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두 달이 넘어가면 잔소리하는 사람이 생긴다. 선배가 타박을 하고, 후배가 해맑게 말한다. “선배, 초능력을 잃은 안나 같아요!” 이대로 두면 크루엘라가 되겠지? 다시 전화를 걸어 염색 약속을 잡는다. 1년이면 33만원, 이것은 노화의 비용이다. 이런 노화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만약 피부과에서 탄력 관리며 시술을 꾸준히 받는다면 한 달 월급도 모자랄 거다.

나는 머리카락으로 왔을 뿐, 또래 친구도 노화를 겪는 건 마찬가지다. 우스갯소리로 30대 후반이 지나면 아픈 얘기만 한다고 한다. 나도 아프다, 너도 아프냐? 친구 A가 말했다.“나 요즘 노안이 와서 당근 주스만 마셔.” 친구 B는 무섭게 살이 찌는 게 걱정이고, 친구 C는 평생 안 나던 등드름이 난다고 하며, 친구 D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장생도라지며 지네며 안 먹는 게 없다고 한다. 생활 습관이 나빠서도, 딱히 병도 아닌 이것은 노화의 과정! 베개에 눌린 자국이 잘 안 펴진다는 건 애교다. 최근에는 증상이 하나 더 늘었다. 모기에 물리든, 넘어지든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그 흔적이 그대로 흉으로 남는다. 본래 약한 피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주치의에게 달려갔더니 이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산부인과 검진에서도 변화가 포착되었다. “자궁에 물혹이 생겼네요?” 가슴과 자궁에 혹 하나 없는 여자가 없다지만 그래도 없던 게 생겼다니 신경이 쓰였다. “40세 무렵부터 물혹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늘어나다가 폐경이 되면 얘들이 먹을 게 없어지거든요.” 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엔데믹이 도래하며 이제 다시 해외 출장을 떠나게 됐는데, 방콕에 하와이까지 다녀오고 보니 기미란 것도 생겼다. 요는 그런 것이다. 어린 시절, “꼼데가르송을 입는 할머니가 될 거야. 은발을 곱게 빗어서 벨벳 리본을 달고 다닐 거야”라고 말했던 나는 필시 아름다운 할머니 셀러브리티를 본 것일 테다. 주디 덴치의 실버 헤어는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답던지! 하지만 노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설처럼 하루아침에 은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느리게 지저분한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인간의 털갈이에 가깝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 내가 늙고 있다니! 노화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단숨에 가는 게 아니라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으며, 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시간은 우리에게 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맞서 싸울 것인가? 싸운다면, 얼마나 싸워야 하나? 사람들은 TV에 나온 배우를 보면서, 그들이 20년, 30년 전만큼 예쁘지 않다고 말한다. 외모가 좀처럼 늙지 않는 배우를 칭송하는 동시에 수많은 시술로 인위적인 얼굴이 되었다고 비난한다. 평범한 나 역시 노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데, 대중 앞에 서는 그들은 더욱더 고민이 많다. 누가 봐도 애쓰고 있는 한 배우를 보면서, 나는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들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김영애를 생전에 만났을 때, 그는 말했다. “주름지고 처지는 게 눈에 보이면 너무 속상해. 그래도 연기하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노력할 거예요. 여기 이 세포가, 얼굴에 있는 너무 많은 세포가 움직이는데 인공적으로 시술하면 표정이 안 나오잖아요. 어차피 늙는 거 어쩌겠어요. 그러니까 늙는 건 포기하고, 연기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만 관리하자는 게 내 철칙이에요.” 다른 배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늙어 보이면 누가 날 써주겠어요? 관리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예요.” 그 말을 할 때 그는 노화와 싸우는 투사로 보였다.

노화는 외모만 말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노년의 여성에게는 중년의 여성만큼도 관심이 없다.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광고는 많아도, 호르몬이 변화시키는 갱년기 여성의 피부 관리를 언급하는 기사는 많지 않듯이 말이다. 메리 루플의 에세이 <나의 사유재산>은 노년을 향해가는 여성의 삶과 심리를 깊이 사유한다. ‘갱년기 열감’은 폐경기 여성의 가장 사소한 증상이라는 거다. <나의 사유재산>에 실린 글 중 ‘멈춤’은 폐경 경험과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놓으며 누구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 여성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나는 메리 루플의 글을 읽으면서 만약 그때가 온다면 반드시 병원에 다니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리라 마음먹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친구도 거들었다. 만약 각자가 호르몬의 난동으로 미쳐가는 꼴을 보인다면 꼭 귀를 잡아끌어 병원에 데려가기로 약속했다.

시간은 멈추거나 어디로 보낼 수 없고, 인간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나이를 입고 변해간다. 아직은 인생의 반도 채 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주름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며, 언젠가는 뿌리 염색이 아닌 머리카락 전체를 염색할 날도 올 것이다. 노화는 더 거추장스러질 것이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나는 노화된 나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좀 더 건강한 모습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생애 한번쯤 그 문 앞에 서게 된다. 새로운 시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