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생 떠그민. 스무 살이 되던 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떠그클럽(Thug Club)을 만들었다. 5년이 흐른 지금 떠그클럽은 에이셉 라키(ASAP Rocky), 시저(SZA) 등 굵직한 해외 아티스트와 럭셔리 브랜드가 찾는 곳이 되었지만, 떠그민은 여전하다.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한다.

촬영 제안 DM을 남긴 지 10분도 안 돼서 바로 전화를 줬어요.
<얼루어>가 20주년이라는 데에 꽂혔거든요. 되게 크게 느껴졌어요. ‘그 기운 한번 받아보자!’ 했죠.

오늘 같은 화보 촬영은 처음이라고요.
이런 식으로 진행해본 적은 없어요. 굳이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나를 알 사람은 다 알겠다 싶어서. 또 너무 나대는 것 같잖아요. 잡지에 나온다는 것 자체로 ‘나 뭐 된다’의 느낌이니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뭐 되긴 하잖아요.
하하. 아직 갈 길이 멀죠.

재미없는 일은 안 할 것 같아요. 인터뷰는 재미있어요?
제가 워낙 말이 많아서 얘기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다만 끌리지 않으면 하지 않을 뿐. <얼루어> 20주년 진짜 축하드립니다.

떠그민의 20년 후, 생각해본 적 있어요?
글쎄요. 그럼 마흔넷 정도일 텐데. 뭐든 되어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지는 않아요. 기대도 하지 않고요. 지금 질문 듣고 잠깐 생각해봤는데, 뉴욕이랑 파리에 집 한 채씩 있으면 좋겠는데요? 요트도 있고. 거기에 친구들 다 데려가야죠.

촬영 장소를 공지했더니 반가워했죠. 한남동이라고.
이 동네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한국에서는 이태원, 한남동이 제일 젊게 사는 동네 같아요. 클럽만 가봐도 연령대가 다양해요. 플러팅 그런 거 없이 진짜 음악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고. 인종도 다양해서 작은 뉴욕 같아요.

촬영에서 입을 옷을 직접 준비해왔어요. 콘셉트가 있나요?
그냥 늘 제가 입는 스타일이에요. 저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거. 이왕 지금까지 안 하던 거 해보기로 한 이상 저답게 가고 싶었어요.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피드에 쓴 글을 보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어요.
잘 보셨네요. 저는 저를 안 숨겨요.

최근에는 스레드(Threads)도 개설했죠. SNS는 어떻게 활용하려 해요?
일종의 일기장 같은 거예요. 나중에 자식이 생겼을 때 ‘아빠, 이렇게 살았다’ 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적어도 제가 한국에서는 독보적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해외라면 모를까 한국에는 저처럼 살아온 사람 진짜 없을걸요? 있었다면 보였겠죠. 한국인이 바뀌면 좋겠어요. 뭘 그렇게들 남들 눈치를 보는지.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는 기질은 타고났나요?
저희 아빠는 일찌감치 제 성적이 별로인 걸 아셔서 성적표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대신 네가 좋아하는 걸 찾으라고. 그 말을 중학교 3학년 때 들었으니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고민해야 했어요. 해보니 재밌더라고요. 남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돈은 아니에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돈 많고 대단하다는 사람들 많이 만나봤는데 다 똑같던데요. 궁극적인 행복은 재력, 권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에 사는 게 정답이 아니에요. 그냥 에너지 넘치도록 사는 게 최고예요. 나 혼자만 그럴 게 아니라 주변 사람도 같이.

다음 주에는 강연도 하죠? 제목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질문 받고 이야기하는 자린데, 별생각 없어요. B급 코미디 느낌이지 않을까요? 올라가보고 느낌 가는 대로 하려고요. 재밌잖아요. 어떤 거든 재미없으면 안 해요. 오늘 촬영도 재밌을 것 같아요. 책 나오면 책장에 잘 꽂아둬야겠다. 으흐흐.

떠그클럽은 최근 1~2년 사이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가 됐죠. 어디까지 예상했어요?
막연하게 누군가는 분명 알아봐줄 거라는 확신은 있었어요. 이렇게까지 패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진정성 있게 해내는 브랜드는 몇 없으니까. 저희는 목표가 커요.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를 만들고 싶거든요. 그냥 스트리트 웨어는 많지만 럭셔리 느낌까지 내는 브랜드는 많지 않아요. 떠그클럽이 럭셔리하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죠. 모르겠네요. 입으로 뱉으면 그렇게 되나? 그렇게 말할게요 그럼.(웃음)

론칭 초기의 반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죠. 걱정은 없었나요?
그때도 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제 에너지를 다 뿜어냈어요. 그러다 한계가 온 거고. 보고 듣는 건 많은데 혼자서는 다 못하겠고. 벽에 부딪힌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니까 점점 지겨웠어요. 재정비하고 싶던 찰나에 디자이너인 지율이 형이 먼저 같이 브랜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수익은 5 대 5로. 늘 100퍼센트를 갖던 제 입장에서는 절반만 가져가는 데 용기가 필요했지만 뭐, 한번 해보자 했죠.

그 용기가 확신으로 바뀐 순간은요?
확신이라, 생각해보니 확신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이 같이 하자고 제안할 때 사비를 털어 소량의 샘플을 만들어 보냈더라고요. 하나하나 뜯어보니 느낌이 왔어요.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겠지만, ‘이 인간 내가 1을 말하면 적어도 2에서 3은 알 것 같은 사람이다’ 싶더라고요. 그 정도면 확신이죠.

어떤 방식으로 일하나요?
왜 만화에서 보면 스토리에 반전이 생길 때 뭐가 ‘피융’ 하고 지나가잖아요. 저도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진짜 그런 느낌이거든요? 뭐 하나에 꽂히면 디자인도 바로 떠오르고 관련 키워드가 ‘파바박’ 지나가요. 에이셉 라키도 입었던 레더 팬츠는 거의 15초 만에 틀을 잡았어요. 대충 그림 그려서 지율이 형한테 보여줬죠. ‘기가 막히지?’ 하면서. 형도 보자마자 ‘음, 기가 막히네’. 거기서 추가적인 디벨롭을 할 때는 또 형이 아이디어를 쭉쭉 던져요. 그럼 저는 또 그게 기가 막혀서 바로바로 진행.

에이셉 라키가 미국 롤링라우드에서 떠그클럽의 바지를 입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그 소식을 들었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어요. 라키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연락을 했거든요. 너희 브랜드 옷 사고 싶다고. 한 1백만원어치를 사가더라고요. 리스펙트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당장 그 친구가 머문다는 호텔로 갔죠. 오토바이에 물건 바리바리 싣고. 로비에서 만나서 직접 전달했어요. 그러고 나서 2주 뒤에 입은 거예요.

에이셉 라키도 떠그클럽 레더 팬츠를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구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군요?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떠든 말 같은데요? 전혀 아니에요. 사실 그 친구가 라키랑 그렇게 가까운사이인지는 몰랐고, 그냥 더 챙겨주고 싶었어요. 해외 나가보면 알잖아요. 그 나라 사람이 선의를 베풀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는 걸.

작년에는 여성복과 가구도 제작했어요. 다음은 뭐예요?
조명도 만들 생각이 있어요. 제가 인테리어에 진짜 관심이 많아서요. 그리고 향수? 사실 저는 자동차도 만들고 싶어요.

요즘엔 뭐에 꽂혀 있어요?
연예인보다 예쁜 몸 만들기.(웃음) 패션은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태도는 어떤지 단번에 알기가 너무 어려워요. 파악할 수 있는 건 겉모습뿐이에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니 이왕이면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요. 어느 날에는 갱처럼, 또 다른 날에는 카우보이, 중세시대 기사, 스트리트에서 노는 애. 오늘 옷도 그렇게 챙겨 온 거예요.

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쿠팡이츠로 맛있는 음식 맨날 시켜 먹을 수 있는 정도면 되겠다? 사는 데 돈은 꼭 필요해요. 떠그클럽 폼 나게 만들려면 많이 필요해요. 다만 밸런스를 잘 잡자는 거죠. 돈을 메인에 두지는 않되, 이용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생각에 움츠러들 때는 어떻게 벗어나요?
빨리 탈출해버리죠. 사람들은 환경을 바꿀 생각만 하지 피할 생각을 안 해요. 똥통에 빠지면 빨리 빠져나와서 꽃밭으로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냄새를 향기롭게 만들지?’ 하는 것처럼 보여요. 내 똥통이 어디인지를 빨리 알고 탈출하는 게 답입니다.

이번 화보의 키워드로 다시 돌아갈게요. 떠그민이 정의하는 ‘젊음(Youth)’은 뭐예요?
당연한 말이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린 놈이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요. 세상은 바뀌고 있으니 나이 구분 없이 그냥 모두가 마음을 더 열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나도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걸요. 숫자와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인생이 더 즐거워질 거예요. 이제 우리 촬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