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FOODIE / 박용인
박용인은 어반자카파의 보컬이자 미식가다. 출시하는 족족 SNS를 뜨겁게 달구는 브랜드를 이끄는 남자는 말한다. “오늘도 맛있는 거 참지 않는 하루 되세요!”

재킷과 팬츠는 언블랭크(Unblank). 셔츠는 제냐(Zegna). 실버 목걸이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재킷과 팬츠는 언블랭크(Unblank). 셔츠는 제냐(Zegna). 실버 목걸이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반지는 Etce.

재킷은 모스키노 (Moschino). 링은 벨앤누보(Bell&Nouveau).
대표와 뮤지션, 오늘은 어떻게 부를까요?
편하게 불러주세요.(웃음) 블랑제리뵈르를 운영하지만 F&B에서 제 역할은 좋은 아이템을 궁리하고 연구하고 실현하는 기획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데뷔 14년 차 어반자카파만큼 F&B분야에도 잔뼈가 굵어요. 2014년에 첫 사업을 시작했죠?
맞아요. 청담동에 연 이탤리언 레스토랑 ‘1988 일 미오 삐아또’가 시작이에요. 파스타가 너무 좋아 무작정 매장을 열었어요. 아내가 당시 런던에서 공부했는데 제가 파스타를 너무 좋아해서 만나러 갈 때마다 이탈리아에 들렀어요. 제노베제, 볼로네제, 카치오 에 페페 등 다양한 파스타가 입맛에 꼭 맞았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마땅히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 직접 만들어보자 했죠.
이후 이자카야, 버거집, 와인 바, 막걸리 포차 등 다양한 레스토랑을 운영했어요. 돌연 브랜드를 론칭한 이유는 뭐예요?
식당에서 메뉴를 개발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대로 100% 구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어느 순간 기획을 하면 그걸 가장 잘 구현해줄 수 있는 회사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소개해보자는 생각도 강렬했고요.
그 시작이 버터였죠. 왜 굳이 버터를 개발했어요?
블랑제리뵈르 전에 ‘마니에’라는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당시 프랑스 단어를 프린트해 디자인했는데, 유독 ‘뵈르(Beurre)’라는 단어가 잘 팔리는 거예요. 뵈르의 뜻이 버터예요. F&B 경험이 있다 보니 언젠가 확장할 생각이 있던 터라 ‘진짜 버터나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스테이크나 빵에 발라 먹는 익숙한 용도가 아닌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재료로 접근했어요. 들기름과 통들깨를 넣은 버터, 서울시스터즈와 협업한 김치 버터 등을 만들어 팔았어요.
참기름 감자칩, 들기름 버터 등 의외의 조합이 많은데 성공적이에요. 맛의 궁합은 어떻게 발견해요?
자꾸 시도해보는 거죠. 참기름 감자칩도 어느 날 와인을 먹다 발견한 조합이에요. 와인 안주로 감자칩을 먹고 있었는데 뭔가 심심하다 싶더라고요. 마침 선물받은 들기름이 있어서 한 방울 떨어뜨려봤어요. 꽤 괜찮더라고요. 개발 과정에서 들기름은 쉽게 산패되어 참기름으로 변경했어요.
출시 족족 메가 히트 상품이 됐어요. 이런 성공을 예상했나요?
이 정도까지는 상상도 못했죠. 하지만 잘될 거라는 확신은 있었어요.
자신감의 근거는요?
재미있었거든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남들이 안 한 걸 했을 때 화제성은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보는 조합이지만 낯설지 않으니 누구나 경험하고 싶을 것 같았고요. 무모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 장르는 음식에 유독 특화되어 있나요?
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도전해버려요.
‘내가 음식에서 큰 기쁨을 얻는구나’라는 사실은 언제 처음 깨달았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젓갈 장사를 해서 보리차에 밥 말아서 창난젓 올려 먹는 게 일상이었어요. 짜게 먹는 게 익숙했는데, 그러면서 계속 새로운 맛을 탐닉한 것도 같아요.
박용인 사전에 ‘대충 때우는 한 끼’란 없는 말이겠네요?
너무 싫어요! 스무 살경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신인이라 서러운 일도 많았거든요. 그때 집에 돌아와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 무렵부터 동네 식당을 돌면서 좋아하는 곳을 발견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다녔죠. 얼마나 힘들었든 맛있는 음식과 소주 한 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날 하루가 완벽해지는 것만 같았어요.

재킷과 팬츠는 인스턴트펑크(Instantfunk). 티셔츠는 비바스튜디오(Viva Studio). 슈즈는 나이키(Nike). 모자는 파인드 카푸어(Find Kapoor).

재킷은 모스키노. 팬츠는 트렁크 프로젝트(Trunk Project).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쁜 현대사회에서 맛있는 한 끼를 사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멤버들과 그런 부분이 잘 통한 게 큰 복이죠. 지방 공연이 잡히면 출발 전부터 맛집을 검색하고 예약해둬요. (권)순일이는 잘 따라오는 편이고, (조)현아와 저는 메뉴 정해서 역할 분담을 해요. 음악 하는 사람 중 미식가가 많아서 추천을 받기도 하죠. 밴드 형이나 선배들은 10년 전부터 다녔잖아요. 어딜 가든 꼭 가봐야 할 집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맛보다 보면 미식적 감각도 길러지나요?
자주 먹는다고 길러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 경우에는 여행의 영향이 가장 커요. 한국에서도 다양한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음식과 닮아 있는 배경지 안에 직접 들어가 먹는 경험은 대체될 수 없어요. 그 자체가 영감이 돼요.
여행지에서 맛집을 발견하는 루틴이 있나요?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도시에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있어요.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을 관찰하고 여기저기 쏘다니죠.
지금 너무 행복해 보여요. 그렇게 재미있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미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해도 ‘미쳤다’ 싶은 경험도 있어요?
최근에 만들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 메뉴를 개발하려고 일주일 동안 세 나라를 갔어요. 8월 초 공개할 예정이에요. 베르베르라는 아이스크림 브랜드인데 성수동, 더현대 서울, 신사동에 매장을 오픈해요.
이 역시 남들이 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나요?
프랑스 천연 버터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넣었어요.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가공 버터를 활용하는데, 프랑스 천연 버터를 20% 가까이 활용해요. 제조사에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고집을 부렸죠. 버터로 사고 한번 치고 싶어요.
특히 아끼는 맛집은 어디예요?
성수동에 위치한 고깃집 중 ‘외갓집’요. 메뉴에는 없는데 매운 항정살이 최고예요. 메뉴에 있는 매운 갈매기살 소스에 항정살을 좀 묻혀 달래서 먹어봤는데 대박이더라고요. 을지로 조선옥 대구탕은 제 소울 푸드예요. 도쿄 시부야에 있는 홈즈 파스타(ホ_ムズパスタ)도 정말 좋아해요. 파스타와 짬뽕 사이 어딘가에 있는 메뉴인데, 술 먹은 다음 날 무조건 가요.
최근 가장 맛있게 먹었던 한 끼는요?
도쿄에서 아내와 밤새 술을 마시다가 몬자야키를 먹으러 갔어요. 유명한 곳은 아닌데 하이볼 마시면서 철판을 박박 긁어 먹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여서인지, 그날 좋은 계약이 성사된 덕분이지 알 수 없지만 맛있었어요.
음식이 가진 힘은 뭘까요?
위로를 주죠. 절망적 순간에 가슴을 찌르는 슬픈 노래를 들으면 더 힘들어지기보다는 위로가 되잖아요. 음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회사에서 비참할 정도로 치이고 까여도 집에 와서 소울 푸드 한 숟가락 먹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잖아요.
세상에 더 맛있는 음식이 많아지길 꿈꾸나요?
‘더 재미있고 행복한 식당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커요. 맛이라는 건 지극히 취향의 영역이에요. 이미 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열심히 하는 분도 많고요. 맛있는 음식이 아닌 행복한 맛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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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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