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와 에코백을 애용하지만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면? 친환경, 지속가능성, ESG 경영까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소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쇼핑 앱을 켜서 나의 장바구니 리스트를 한번 살펴보자.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담았는가? 만약 화장품을 담았다면 제품력과 패키지, 브랜드, 모델 등 다양한 기준을 고려해 선택했을 것이다. 그중 ‘친환경성’도 있었는지 되돌아보자. 만약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환경보호 의식은 있지만 소비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의식 있는 비소비자’에 해당된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매거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기후변화 관심도를 기준으로 미국 소비자를 다음의 5가지 집단으로 분류했다.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 사람(4%), 자신의 취향대로 구매하는 습관형 소비자(30%), 환경보호를 실천하지만 ESG 제품은 사지 않는 의식 있는 비소비자(32%), 주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11%),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ESG 인증까지 고려하는 의식 있는 소비자(24%).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의식 있는 비소비자’가 3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에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 사람과 습관형 소비자까지 더하면 약 66%의 사람이 소비할 때 친환경 요소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도 마찬가지. 한화투자증권 리서치 보고서 ‘ESG·임팩트 투자편’에 따르면 MZ세대의 60%는 ESG 경영이 기업과 브랜드 호감도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품 구매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이들은 30%에 불과했다. 브랜드 호감도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약한 편인 것. KB트렌드보고서 ‘소비자가 본 ESG와 친환경 소비 행동’ 설문 조사를 보면 친환경 소비에 대한 소극적 자세를 더욱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폐기물 분리수거, 장바구니 이용하기, 콘센트 뽑기, 일회용품 대신 개인 컵 사용하기 등의 생활 습관 실천율은 과반수를 웃도는 반면, 환경 마크가 부착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13.6%에 그친다. 환경보호 의식과 소비 생활이 동떨어진 양상을 보이는 것은 친환경을 외치는 소비자가 정녕 ‘방구석 그린슈머’였다는 의미일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의식 있는 비소비자’의 원인으로 쇼핑 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점을 꼬집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상에서 친환경 습관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하지만, 소비하는 제품이 친환경적인지는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는 소비와 환경의 상관관계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없기에 생긴 결과다. 예를 들어 제품을 구매할 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한 청바지를 선택하면 5000L의 물을 아낄 수 있고, 특정 뷰티 제품을 사면 황폐화된 산림에 나무 한 그루가 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의 지갑은 이런 제품에 훨씬 쉽게 열린다.

오늘 당장의 소비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고, 판매자에게는 이런 지점을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높은 비용도 가치 소비의 허들이 된다. ‘의식 있는 비소비자’ 중 34%는 ESG 제품이 비싸서 사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제품은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되고, 선택의 폭도 좁아 제품력, 디자인, 편의성 등 다른 의사 결정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희망적인 사실은 소비자 10명 가운데 9명이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것. 그렇다면 친환경성과 가성비를 절충하는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10% 이내의 차이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소비자가 친환경 소비를 하려고 해도, 제품에 대한 친환경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정 제품을 친환경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기업의 광고, 상세 설명 문구, 패키지 디자인 정도에 그친다. 원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얻어지고 가공되는지, 전성분 중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것이 있는지, 제품 생애 주기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많은지를 직접 따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소비자의 판단은 전적으로 기업의 정보 제공에 달린 거다.

한국소비자원 ‘친환경 표시·광고 실태 조사’를 보면,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준은 ‘친환경 인증 마크 확인’이다. 그러나 친환경 관련 제품 광고를 조사한 결과, 법정 인증을 사용한 60개 제품 중 19개가 소비자가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거나 인증 번호를 게시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친환경 콘셉트를 내세우며 급성장한 뷰티 브랜드가 국제 엠블럼을 상업 용도로 무단 사용한 것이 밝혀지며 논란이 됐다. 이는 정보의 부재를 뛰어넘은 명백한 그린 워싱이다. 친환경 마크만 믿고 구매한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가 제기되자 해당 브랜드는 곧바로 홈페이지와 제품에서 마크를 삭제한 후 계속 판매했다. 이런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소비자는 물론, 진정성 있는 친환경 기업도 피해를 입는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친환경 소비 의지까지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 할 테니까. 

의식 있는 소비는 환경과 기업, 사회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우리가 구매하고 사용하는 물건은 지구에 짙은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소비 생활을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의 제품 개발과 제조,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소비자의 니즈다. 유수의 기업이 ESG 경영을 부르짖으며 변화를 꾀한 것도, 비건, 클린 콘셉트의 친환경 기업이 우수수 등장한 것도 소비자가 원했기 때문이다. 이제 친환경 여부는 윤리가 아닌 생존 전략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고, 비로소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도래했다. 소비자는 친환경 의식과 소비 습관을 연결하고, 판매자는 이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선별해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한다. 기업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경영을 실현하고, 의미 없는 그린 워싱을 멈춰야 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이뤄내는 것은 누구 한 명의 몫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반은 왔다. 이제 나머지 반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한 때.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쇼핑 리스트를 다시 점검해보자. 저탄소 식재료부터 리필 뷰티 아이템, 비건 레더까지 친환경 소비를 실천할 항목은 무궁무진하다. 소비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사소한 불편을 감수한다면 희망찬 내일이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