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배우 김병철은 늘 진짜를 준다. 웃음도 눈물도 다 진짜다.

블랙 톱은 마틴 로즈(Martine Rose).

블랙 셔츠는 032c.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셔츠는 032c. 블랙 스터드 팬츠는 레시토(Lecyto). 슈즈는 그라운즈(Grounds).

장마가 시작됐네요.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비가 진짜 많이 오더라고요. 빗소리 들으면서 멍하니 있었어요. 인터넷도 좀 하고요. <최고의 사랑>이 재미있다고 해서 뒤늦게 보고 있어요.

이제 OTT에 다 올라와 있으니, 그런 게 좋아요. 지난 작품도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죠. 
그렇죠. 요즘 드라마도 좀 보려고 하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어요. 지금 방송하는 것들도 따라잡아야 하는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얼루어 코리아>와 같은 해 데뷔했더군요. 데뷔 동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2003년 데뷔 맞죠?
캐스팅된 건 <알포인트>가 먼저였지만, 공개된 건 2003년 <황산벌> 데뷔가 맞아요. 기자님은 얼마나 되셨어요?

저도 오래된 편이죠.(웃음) ‘화석’ 소리를 들을 만큼요.
사람이 어차피 늙는데 훌륭한 잡지와 나이 들어 가는 건 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런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부러워서 하는 말인 게 더 큰 거 같아요.

2003년엔 어떤 모습이었나요? 요즘 말로 ‘외모 성수기’였나요?
성수기는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도 제 나이보다 더 많이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땐 어떤 꿈을 꾸고 있었어요? 대학에서도 연극영화과를 전공했으니, 연기 하나만 봤다고도 할 수 있겠고요.
실기 보고 분명히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신기해요. 저 같은 사람이 붙었다는 게.  좋은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멜랑콜리하게 생겼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잘 때 꾸는 꿈 말고는 별로 생각을 안 하는 편이에요. 좋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2003년은 <알포인트> 제작이 중단된 상태라 좋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됐고, 잘 만들어보려고 해병대 캠프 가서 군사 훈련까지 받았지만 촬영이 중단되면서 의기소침한 상태였어요. 쉽지 않구나 싶었죠.

그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그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건 뭔가요?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라떼는 말이야’ 같은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때도 잘 모르고 요즘도 잘 모르고요. 현장에서도 한참 어린 친구를 만나도 그냥 동료라고 느껴져요.

데뷔 이후 계속 작품을 해오다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연기 생활을 하면서 좋은 작품과 작가를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행운이죠. 드라마나 영화라는 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다루는 거잖아요. 좋은 분들과의 작업은 다른 시각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에 제게는 특별한 인연이에요.

아직도 별명이 ‘파국이’인데, 사실 이게 거의 밈이 된 거니까요. 밈의 주인공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죠.
긍정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파국’의 의미가 너무 부정적이라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요. 김은숙 작가님의 어떤 혜안이 반영된 거겠죠. 촬영할 때 기억이 나는데 이응복 감독님과 촬영하면서 실수로 ‘파국’ 대신 ‘파멸’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딱 ‘컷’하더니 ‘파국’이라고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신스틸러로 주목받았고 자연스럽게 주연 배우가 됐죠. 악역을 할 때도 묘하게 ‘짠내’가 난다는 얘기가 있어요. 인간적인 역할에 끌리나요?
<닥터 프리즈너>가 본격적인 악역이었는데, 그 역할 같은 경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의 무능함이 드러나서 그걸 짠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SKY캐슬>의 차민혁 같은 경우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인데, 그런 모습이 대본에 너무 전형적이라 미팅 때 전형과 다른 면을 섞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어요.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약간은 좀 우스꽝스러운 면이 들어간 거라 그건 좀 의식적으로 작업한 거죠. 그런 여지가 전혀 없는 인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되게 단순하지만 순수한 그런 절대악이라든가 어처구니없는 절대선이라든가요.

보통은 입체적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다르네요?
항상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단순한 게 사실 더 어렵거든요. 그런 건 어떻게 보면 정면으로 봐야 소화가 가능한 면이 있어서요.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준 사람을 만나보자고 했는데, 코미디언을 제치고 최근 <닥터 차정숙>의 배우 김병철이 가장 웃겼다는 반응이 많았죠. 매회 개그 신이 있었잖아요? 소문으로는 대본과 김병철 캐스팅만으로 그 어렵다는 편성이 됐다고요.
하하, 대본이 너무 좋았던 거죠. 저도 재미있어서 선택한 거니까요. 그게 그 인물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거든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해보고 싶다.

생각보다 서인호, 욕을 별로 안 먹었죠?
맞아요.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귀엽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연기하다 보면 제 예상과는 다른 경우가 더 있더라고요.

 

화이트 재킷과 패턴 셔츠, 타이는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슈즈는 아디다스(Adidas). 팬츠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크 패턴 셔츠는 에곤랩(Egonlab).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라운 재킷과 팬츠는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핑크 셔츠는 프롬아를(From Arles). 벨트는 셀린느(Celine). 투톤 슈즈는 에임 레온 도르(Aime Leon Dore). 핑크 캡은 위캔더스(Wkndrs). 워치는 바쉐론 콘스탄틴 바이 빈티크(Vacheron Constantin by Beantique). 링과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할 때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뭐였어요? 주사 연기도 반응이 좋았는데요.
정말 많지만, 1부에서 승희랑 있는 장면이에요. 인호가 정숙한테 간을 준다고 하니까 승희가 나도 줘, 이것도 주고 저것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인호가 “그럼 죽어”라고 대답하는데, 이런 느낌으로 가겠구나 싶었어요. 그 장면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술 마시면서 노래하는 장면은 사실 극 장면이 구체적으로 지문이 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상상을 하면서 동료들과 재미있게 만들어간 장면이에요.

<닥터 차정숙>은 올해 시청률이 가장 좋은 드라마 중 하나죠. 이럴 때 배우는 어떤가요?
기쁘죠. 그만큼 많은 분과 소통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많은 분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 저한테는 되게 값진 경험인 거죠.

시청자 반응을 늘 체크하네요. 기사도 주로 보는 것 같고요. 이유가 있나요?
시청자분과 만나는 거잖아요. 연극의 3요소에 관객이 포함되듯, 아주 중요한 요소거든요. 안 계시면 만들 이유가 없어요. 사람들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면 제가 제 안에만 빠져 있었을 거기 때문에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거 같아요.

정숙 역의 엄정화 씨가 <닥터 차정숙> 시청률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모습이 예능에 공개되면서 배우의 부담감을 대중도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부담을 안 느끼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냥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딱히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통과하는 것밖에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보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싱글이라는 게 많이 알려졌는데, 비혼주의자인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할 마음은 있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소개받거나 하지도 않고요. 그냥 일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혼자 있을 때는 집에 있고 좀 멍하니 뒹굴뒹굴하면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가끔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술자리 가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요.

슬기롭게 비혼 생활을 이어가는 노하우도 쌓였나요?
없어요. 다 직접 해야 해서 매일매일 힘들게 살고 있어요.

요즘은 가전제품이 반려자죠.
저도 로봇 청소기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데 한 번씩 속을 뒤집어놓는 행동을 해요. 이걸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가장 힘든 건 설거지예요. 설거지하고 그냥 두면 물때가 남잖아요. 그게 별로더라고요.

물때까지 신경 쓸 정도면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네요. 욕실에 스퀴저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있습니다. 안 하면 곰팡이가 금방 생겨요. 아 그게 진짜로…. 집안일에 관심을 안 둘 수가 없는 거 같아요. 어느 누구도 뭔가를 해주지 않으니까요.

기쁘거나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집 안이 깔끔할 때?
저한테 어떤 작품 제안이 왔는데 그걸 읽으면서 재미가 있으면 좋아요. 이건 정말, 이런 작품을 만났구나, 내가.

요즘은 촬영이 1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만약 타이밍이 안 맞는다면요?
맞아요. 그러면 너무 슬플 거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버텨요. 어떻게든 메이드시켜보자. 그래서 <닥터 차정숙>도 기다린 시간이 꽤 길었어요.

20년 동안 연기를 하는 데 뭐가 가장 필요했나요?
사실 저는 20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지 않아요. 20년이 20년만큼 느껴져요. 제가 치열했으면 계속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치열하게 했는데 잘 안 되면 좀 지치잖아요. 공상도 망상도 많이 한 것 같아요. 일 없을 때는 어떻게든 연기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았고요.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려 했고 그런 것들이 또 재미있었어요.

어떤 활동을 했어요?
책을 읽거나 어떤 연기 모임에 가거나 하는 활동이었죠. 어쨌든 돌아보면 나 같은 조건에서 이 시간을 이렇게 연기를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지 않고 혼자 살고 그런 상황 속에서 계속 20년을 작업한다는 게…. 제게 다른 재주가 있었다면 그 일을 했을 수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연기가 제일 재미있었던 거죠?
그랬죠. 가르치는 일도 생각해봤는데, 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덕분에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도 오게 된 거죠. 삶에 대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연기를 선택했는데, 다행인 것 같아요.

오늘 하루가 지나기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할 거 같아요?
우선 멍하니 있어야 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 생각은 분명히 할 것 같아요. ‘내가 이 말을 왜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