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불안의 이유가, 뇌 질환의 원인이 사실 장 속에 있었다면? 건강의 주역으로 떠오른 뇌와 장의 긴밀한 연결에 대하여. 

행복의 첫 번째 조건 

슬픈 일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문득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특별한 이유 없이 신경이 예민해지고, 불쑥불쑥 짜증이 솟구친다면 장 건강을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의 뇌와 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 과정을 살펴보자.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항우울제 대부분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원리를 이용한다. 그런데 사실 뇌에서 생성되는 세로토닌은 단 5%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5%는 모두 장에서 만들어진다. 심지어 도파민의 50%도 위장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이는 장이 안정되고 건강해지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과민성대장증후군도 뇌와 장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명확한 증거 중 하나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뇌에서 장으로 신호를 전달해 장 운동 기능에 영향을 주어 설사나 변비를 유발한다. 반대의 경우로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가 우울증, 불안증 같은 정신 질환 유병률이 높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어쩌면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건강한 장’이 아닐까? 

 

인간의 두 번째 뇌, 장 

뇌와 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경으로 이어져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 연결, 호르몬과 영양분, 사이토카인 등의 물질을 주고받는 물질 연결, 장신경계로 인한 상호 작용까지. 이 모든 연결을 통틀어 ‘장뇌축’이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뇌에서 장으로 신경 연결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곧 먹을 거라고 전달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음식을 섭취하기 전부터 음식을 먹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장 운동이 활성화한다. 이후 음식이 장 속에 들어오면, 음식이 도착했다는 정보와 더불어 어떤 종류의 음식인지, 탄수화물과 당분은 충분한지 등의 각종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이때 장에서 뇌로 보내는 것은 GLP-1이라는 장호르몬으로, 강력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물질이다.

이런 GLP-1과 유사한 성분으로 약을 만들어 투약하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삭센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의 비만 치료제인 것. 뇌는 이 신호를 받아들여 그만 먹어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식사를 중단한다. 장신경계는 장 내부에 존재하는 신경계로, 식도부터 항문까지 전체 소화기관을 덮은 수많은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장신경계는 뇌로부터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서로 많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협업하기에 제2의 뇌라고도 한다. 

장 운동부터 음식물 감지, 면역 활동, 미생물군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최근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장뇌축은 면역계와 내분비계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도 연결된다. 장내 미생물군이 만들어낸 호르몬, 콜레스테롤 등의 각종 대사산물이 개인의 감정 패턴을 생성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뇌에 기반을 둔 감정회로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고, 대부분의 인간은 유전자의 90%가량이 유사하다. 하지만 장내 미생물 유전자의 유사성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장내 미생물군이 감정 생성 기전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 건강이 기분이나 인지 능력, 수면, 사회적 행동 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더불어 장 건강이 안 좋아지면 뇌 질환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걸까?
“아직 교과서적으로 확립된 기능이나 기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뇌축이 기분, 인지 능력, 수면,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여러 연구가 산발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뇌 질환도 마찬가지예요. 최근에는 뇌에서 시작되는 줄 알았던 파킨슨병 유발 물질이 장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밝혀졌어요. 장에서 시작된 파킨슨병 유발 물질이 장뇌축을 따라 뇌로 올라오는 것이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과학과 최형진 부교수의 설명이다. 일부 과학자는 이를 우연의 일치라고도 하지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계속 쏟아져 나오며 그 연관성을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

 

채우고 비우기

잘못된 현대인의 식단은 장내 환경을 위협하고, 이는 장뇌축 연결에 따라 건강 전반을 해치게 된다. 설탕 대신 사용하는 인공감미료, 마요네즈와 소스, 사탕 같은 제품의 농도를 맞춰주는 식품 유화제와 먹거리 대부분에 들어 있는 활성글루텐 등이 주원인. 이로 인해 무너진 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프로바이오틱스, 프리바이오틱스 같은 유산균 제품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을 준다. 혹은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해도 좋다. 장내 환경을 정돈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하고, 이는 ‘수면 호르몬’으로 불리는 멜라토닌 생성도 도와 정신적 안정과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영국의 영양학자 쇼나 윌킨슨은 “고기와 생선, 콩, 씨앗, 견과류 등의 고단백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숙면을 돕는다”고 말한다. 단백질에 풍부한 트립토판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호르몬을 증가시키기 때문. 좋은 것을 채우는 만큼 나쁜 것을 비워내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영양가가 높고 장에 유익한 음식을 먹더라도, 제대로 흡수와 소화가 되지 않으면 장에 쌓인 채로 내부 환경을 더럽힐 뿐이니.

<장이 깨끗하면 뇌도 건강해진다>의 저자 나가누마 타카노리는 ‘아침단식법’을 추천하며 장 디톡스의 중요성을 일렀다. 전날 밤 8시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16시간 단식을 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장이 쉬는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상온의 생수 500~750ml를 몇 번에 나눠 마시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제철 과일을 챙겨 먹으면 세포 속 노폐물을 처리해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장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규칙적이고 건강한 식습관, 운동, 생활 습관을 곁들이면 어느새 건강한 장과 행복한 뇌에 한발 더 가까워져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