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짐을 꾸린 후 책 몇 권을 넣는다. 그것만으로도 든든해진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퀴어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대만달러 1억 위안, 우리 돈으로 43억원을 돌파하며 대만에서 가장 성공한 퀴어 영화가 된다. 넷플릭스로도 공개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2019년 대만은 동성 결혼을 법제화했지만, 1987년의 가톨릭계 남고를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과 영화는 이것이 단숨에 이뤄진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디 퍼 지음, 문학동네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새로운 도시는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지돈의 이 길고 긴 이름의 연작 소설집은, 장소와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는 ‘나’와 파트너 엠의 흥미로운 시선과 발견.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다가 갈수록 빠져든다. 정지돈 지음, 작가정신

<소설 보다: 봄 2023>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고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가 된다. 이 책에는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김나현의 ‘오늘 할 일’,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 총 3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3500원이라는 가격은 요즘 서점에서는 보기 힘들다.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동안 읽으면 딱 좋다. 강보라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읽는 사람>
박은빈, 진영, 박정민, 장기하, 문가영, 김신록, 리처드 용재 오닐, 김초희 등 동시대 아티스트 34명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얼루어> 피처 디렉터인 작가와 애서가로 이름난 아티스트가 ‘독서가와 독서가’로 나누는 대화는 도서관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책 한 권으로 충만해지는 독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고, 우리가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답이다. 허윤선 지음, 민음사

 

<짧은 휴가>
‘짧은 휴가’란 한국인의 숙명과도 같다. 유럽인처럼 한두 달의 휴가는 꿈도 못 꾸는 우리는 항상 여행을 갈구하고, 그 여행에 단숨에 몰입한다. 전 <론리 플래닛> 에디터이자 현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오성윤의 여행 에세이는, 에세이라기보다는 단상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더욱 여행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작가가 직접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오성윤 지음, 어떤책

<요가 숲 차>
여행은 나를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그렇다고 1년 내내 여행만 다닐 수는 없다.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두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경험한 후 산다는 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임을 알게 된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지켜주는 3가지가 요가, 숲, 차라는 걸 깨닫는다. 스스로 충만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 후, 삶은 더욱 단단해진다. 신미경 지음, 위즈덤하우스

<유령 이야기>
해변가에서 읽는 으슬으슬한 이야기. 세계 문학 거장들이 쓴 고딕 단편 8편을 묶었다. 오스카 와일드와 고딕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조셉 셰리든 르 파뉴, 기 드 모파상, 스페인 시인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 에드거 앨런 포와 로버트 E. 하워드 그리고 중국의 천지퉁까지. <캔터베리의 유령>처럼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오스카 와일드 외 7인 지음, 미메시스

<아니 에르노: 이브토로 돌아가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회고록이다. 자전적 소설로 이름난 작가지만, 성공을 거둔 후 이브토로 돌아가 쓴 회고록에는 좀 더 내밀한 기억이 담겼다. ‘다섯 살부터 열 살까지 쭉, 그리고 루앙에서 공부하던 시기에는 들쑥날쑥, 그러고도 스물네 살까지 살았던 노르망디 지방의 소도시 이브토’라고 말할 정도로 이브토는 작가의 정신적 고향이다. 아니 에르노 지음, 사람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