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다양한 여행 콘텐츠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콘텐츠 제작자를 만났다. 여행의 면면을 짜릿하게 보여주는 크리에이터의 전략. 

PD | 류호진&윤인회

익숙한 여행이 이들의 손에서 단 하나뿐인 이야기로 진화한다. tvN 예능 <어쩌다 사장>과 <서울촌놈> 그리고 <부산촌놈 in 시드니>는 류호진&윤인회 PD의 집요한 관찰과 애정의 결과물이다. 

절찬 방영 중인 <부산촌놈 in 시드니>(이하 <부산촌놈>)의 시작이 궁금하다.
류호진(이하 류) 스타가 자신의 고향을 소개하는 예능 <서울촌놈>의 첫 편 배경이 부산이었다. 이시언, 쌈디, 장혁이 출연했는데, 당시 장혁 씨는 두 사람과 안면이 없었음에도 하룻밤 사이 엄청 친해졌더라. 스튜디오 토크쇼였다면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도 하며 사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고향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사람들은 금방 사적인 관계가 되는구나’라는 걸 발견한 이후 새 프로그램 준비를 하면서 이 요소를 녹이면 어떨까 했다. 

<부산촌놈>에는 부산 출신이 시드니에 모여 워킹 홀리데이를 한다. <서울촌놈>의 중심이었던 고향, 여행에 워킹 홀리데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인이 되어 서울에 온 사람은 사투리를 쓰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언어를 바꿈으로써 태도와 사고가 어려지는 셈이다. ‘스무 살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 뭘까?’ 상상하다 보니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활동에 도달했다.
윤인회(이하 윤) 해외를 새롭게 경험하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터라 현지인과 어울릴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낯선 곳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그들의 삶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해 ‘노동’이라는 요소를 녹이게 됐다. 

호주 시드니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호주의 아웃백과 같은 곳을 생각했다. 워홀에는 극단성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후배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에게 워홀이란 열심히 일해서 돈만 모으러 가는 건 아니더라. 내가 그리던 낭만적인 풍경에 들어가 있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에 설득당했다.
여행자와 노동자로서의 온오프가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일 끝나고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맥주 한잔하자”라는 말은 일상인 동시에 여행지의 낯선 설렘을 채운다. 

숱한 여행 프로그램 틈에서 <어쩌다 사장> <서울촌놈> <부산촌놈>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여행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해외 풍경은 한계가 있고 이미 너무 많다. 다른 방법은 결국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회를 거듭하다 보니 <부산촌놈>에서 작은 하숙집 풍경이 펼쳐진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꿈꿨던 장면이다. 

낯선 상황에서 사람 간의 감정, 연대를 포착하는 비결은?
상상할 뿐이다. 감정은 보편적일 때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웃음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의미와 감동을 의도한 프로그램에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만드는 사람으로서 꽤 창피하다. 나만 너무 취해 있는 느낌이 들거든. 그렇기 때문에 감동 코드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그걸 발견하는 게 까다로운 작업 아닌가?
그래서 상상했을 때 ‘이건 누구나 그렇겠다’고 느끼는 지점만 건드린다. <어쩌다 사장>의 경우 생업의 고단함, <서울촌놈>은 유년기와 학창 시절의 의미를 다루게 된 거다. 누구나 생각했을 때 뭉클함이 솟는 지점은 분명 있다.
옆에서 작업 과정을 관찰해보면 형(류호진)은 늘 어떤 상황이든 직접 경험해보려 한다. 출연자 역할을 대신 수행하며 감정과 상황을 흡수하고 그걸 바탕으로 상상을 더하는 것 같더라. 머리로 짜낸 상황을 던지는 게 아닌 실존하는 ‘진짜’만 다루는 거다. 그 일련의 감정이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그 ‘진짜’를 발견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나?
여행지를 소개한다면 지역의 명소를 여러 곳 간 뒤에 최고의 것만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중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조건을 더해야 한다. 끊임없는 관찰, 지난한 시간을 통과한다.
시간을 들여야 현지 사람도 속내를 보여준다. <부산촌놈>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있으니 100% 진심을 알 수 없어 힘들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 현지분들에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의 작은 이벤트로 기억된다면 기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시청자의 시간을 붙잡을 수 있을까?
너무 어렵다. 여행이라는 익숙한 주제 속에서 내가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게 PD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진실됨을 잘 서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맥락이 있어야 한다.
잊히지 않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TV 프로그램은 제한된 시간 안에 시청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해야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는 경험을 재생산하는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밀집해 촬영할 때 비로소 재미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최상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건 대체로 감정의 극단에 닿는 강렬한 것 혹은 반복적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피크를 만들고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작법 싸움이다. 

결국 모든 답은 보편성에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그 보편성에 대한 타협이 언제나 어렵다. 편집실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극점이며, 지나치게 과장되고 표현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 일은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니까. 

가장 뿌듯한 반응은 무엇이었나?
‘여행 예능의 편안함을 너머 포근함과 깊이가 있다’는 댓글을 보면 원하는 방향에 근접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경험을 추억하는 댓글을 볼 때 좋았다. 기대했던 건 ‘우리도 가고 싶다’였는데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나 보더라.(웃음) 앞으로 더 즐거운 얘기가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 

물리적·재정적 제약이 없다면 만들고 싶은 여행 콘텐츠는?
땅따먹기 예능. 게임 언어 중 ‘맵을 확장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출연자들이 스스로 개척해 자신의 땅을 확장하는 형태다. 심리적 요소를 곁들인 게임과 여행을 접목하는 거다.
극도로 위험한 곳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든든한 형제들’이라고 제목도 벌써 정했다. 몸 좋고 싸움 잘하는 사람을 모아 뒷골목을 여행하는 거다. 출연자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도 특수부대 출신으로 꾸리는 거 어떨까? 

 

YOUTUBER | 그래쓰

여자 둘의 우당탕탕 해외여행기를 담은 유튜브 채널 ‘여락이들’을 만들었고 여행과 일상을 담은 채널 ‘It’s me GRASS’를 운영 중이다. 여행을 주제로 웹 예능, 브이로그, 음악, 뮤직비디오 등 다채로운 형태로 콘텐츠를 확장했다. 

유튜브 채널 ‘여락이들’은 전에 없던 웹 예능 형태의 여행 콘텐츠다. 채널의 시작이 궁금하다.
영상 콘텐츠는 자신이 있었다. 여러 공모전에서 ‘상금 헌터’로 활약했고 영상 기록도 좋아했다. 영상 촬영과 기획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캐릭터로서 화면에 나오는 것은 자신이 없어 더티를 카메라 앞에 세워 첫 콘텐츠를 촬영했다. 첫 콘텐츠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조회수가 터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영상 콘텐츠가 익숙했던 이유가 있었나?
부모님의 영향이 있다. 아버지가 방송계에 꿈이 있으셔서 집에 늘 카메라가 많았다. 중국에 거주할 때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현지 코디를 하셨다. 영상으로 뭔가를 찍고 기록하는 게 자연스레 습득된 것 같다. 안 본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TV를 끼고 살아 영상 문법이 익숙했다. 

‘여락이들’을 함께한 더티에게서는 어떤 캐릭터를 봤나?
나는 어디를 가도 새로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어린 시절 외국에 살면서 다사다난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2008년, 쓰촨성에 살고 있을 때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한 달 동안 대사관에서 보내주는 비상식량으로 버티고 텅 빈 마트에 카트를 끌고 들어가 무작정 음식을 쓸어 담기도 했다. 다사다난한 상황을 겪었으니 어떤 상황에도 담담한 편이다. 유튜브는 ‘리액션’이 중요한 플랫폼이다. 표정과 감정이 영상을 통해 전달되다 보니 생생함이 필수다. 나보다는 더티가 그 역할에 적합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콘텐츠 기획은 어디까지 이루어지나?
4~5개 정도의 신을 기획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스토리보드를 촘촘하게 짠다. 현장에서 이를 뛰어넘는 장면이 나오면 버리지만 무조건 지키는 루틴이다. 혼자 여행을 갈 때면 일부러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 같은 사람이 많은 숙소를 정한다. 왁자지껄한 현장감,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상황을 설정해놓는 거다. 

그렇게 ‘설정’해놓은 상황이 콘텐츠로 발전하기도 하나?
물론이다. ‘It’s me Grass(이하 그래쓰)’ 채널에 치앙마이 에피소드가 그랬다. 호스텔에 묵었는데 공용 공간 앞 테이블에 굉장히 잘생긴 친구가 앉아 있는 거다. ‘저 친구랑 무조건 뭐라도 해야 한다. 유튜브 각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심히 관찰했다. 반짝이는 얼굴 말고 눈에 띄는 게 매니큐어였다. 화장품에 관심이 있겠다는 추측을 했고, 먹을 걸 주며 친해지다가 나를 소개하고 겟레디윗미 콘텐츠 촬영을 제안했다. 너무 좋다면서 신나게 찍었다. 만약 그에게 저녁 식사나 야시장 투어를 제안했다면, 그렇게 재미있는 영상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머릿속에 콘텐츠 생각밖에 없다. 사람들을 캐릭터화하는 게 재미있다. 

콘텐츠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영상을 잘 찍는 사람은 너무 많다. 나는 청각에 예민해서, 그걸 차별성으로 삼았다. 그래서 여행 중간중간 찍는 클립에 어울리는 음악을 무조건 찾아낸다. 돌아오면 잘 생각이 나지 않더라. 그렇게 매일 밤 폴더 정리를 하고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여행지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두 채널이 다르다. ‘여락이들’은 생경한 여행지에 흔한 키워드를 사용한다. 튀니지에서 빵 투어하기, 이집트에서 월세 살기를 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인도에서는 헬스장 투어를 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반대로 ‘그래쓰’ 채널은 익숙한 나라에 생소한 키워드를 접목한다. 

여행 유튜브에서 반드시 담아야 할 것과 배제할 것은?
‘나’라는 사람을 앞세우는 건 금물이다. 소재의 창작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쉬운 길이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 키워드 안에 ‘나’를 대입하려 한다. 여행지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에 ‘나’라는 사람은 그저 거들 뿐이다. 키워드가 곧 내 시선을 담고 있으니 그림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두 채널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여락이들’의 경우 ‘친구처럼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타깃이다. 채널이 유명해질수록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지양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친구처럼 공감할 수 있도록 친근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반대로 ‘그래쓰’ 채널은 닮고 싶은 언니가 핵심이다. 

편집도 굉장히 힘들 것 같다.
한 사람이 편집하면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야 하는 부분이 어렵다. ‘여락이들’은 TV 예능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안 본 예능이 없다. ‘망한 예능은 왜 망했을까’ ‘잘되는 예능은 왜 잘될까’를 집요하게 분석했다. 예능에서 유튜브 콘텐츠로 편집한 영상도 보면서 ‘어떤 기준으로 왜 그 장면을 넣었을까’생각해본 것도 도움이 됐다. 반대로 ‘그래쓰’는 넷플릭스 웹 다큐, 외국인의 감성이 담긴 브이로그, 매거진의 브랜드 필름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아카이빙한 영상만 1천 개가 넘는다. 

기획부터 편집까지 혼자 감당하는 게 대단하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은?
좋은 성과다. 의도를 읽어주는 댓글, 조회수를 보면 짜릿하다. 시상식에서 상 받은 것보다 더 좋다. 

‘여락이들’ 채널에서 ‘그래쓰’ 개인 채널을 분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작사와 작곡을 하면서 내 노래를 홍보할 공간도 필요했고. 팀이 아닌 혼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도 필요했다. 

일과가 어떻게 되나?
7~8시쯤 일어나 운동하면서 인기 급상승 등 인기 영상을 찾아본다. 최근에 잘 나오는 키워드를 분석하고 카페에 가서 편집한다. 해 질 때까지 편집하고 저녁에 음악 작업을 한다. 너무 안전하고 좋아하는 루틴이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에게 평등한 시간처럼 넓은 세상 역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이 넓은 세상을 누리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을 듣다 보면 생각이 확장된다. 사람은 본 만큼 그릇이 넓어진다는 말이 진짜다. 

여행을 주제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
‘기갈나는’ 웹 다큐를 찍고 싶다. 못다 한 꿈에는 웹 드라마도 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빌드업 중이다. 

 

WRITER | 유지혜

<조용한 흥분> <쉬운 천국>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에 이어 <우정 도둑>을 펴냈다. 2018년 여행지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메일 구독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는 최근 15시즌을 마무리했다. 여행을 통해 오롯해지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7월에는 런던에서 1주, 뉴욕에서 3주간 머문다. 그리고 9월 중순 다시 뉴욕에 가 두 달 정도 있을 예정이다. 뉴욕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흠뻑 빠져 있는 도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최근 다음 에세이 출간 계약도 마쳤다.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여행은 양치질 같은 거다. ‘해야겠다’는 자각이 없어도 매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다면 내 이야기가 진실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를 벗어나려 한다. 여행이 곧 일상이고 삶이기에 굳이 그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여행 중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
여행을 하면서 일기나 메모로 늘 기록은 해왔다. 하지만 작가로서 사명감이 생긴 건 <쉬운 천국> 이후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영향을 끼친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때부터 여행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겪는 관계와 감정, 인생의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짙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늘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책과 ‘유지혜 페이퍼’의 콘텐츠는 어떻게 다른가?
‘유지혜 페이퍼’는 구독 서비스 형태다. 한번 시작하면 일주일에 3번, 19회 정도 메일을 발송한다. 또한 해외에 있을 때 실시간으로 발송되니 생생함이 담겨야 한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바로 써서 보낼 때도 있다. 공항, 호텔 로비, 길바닥, 카페 등 쓰는 장소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있는 공간의 공기와 냄새가 전달되어야 해서 동물적으로 쓴다. 책에는 페이퍼의 글을 정제해 담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럴 일은 없다. 내면의 크고 작은 변화는 반드시 생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그것에 대해 쓰면 된다. 

책을 쓰는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다. 일상이 있는 서울에서는 사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어렵다. 나 역시 낯선 도시에서 기대하는 마음을 충전시켜 소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같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기대감을 주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가장 뿌듯한 피드백은 무엇인가?
안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새로운 경험, 낯선 상황을 마주하는 일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근사한 일이라는 사실이 전달되면 좋겠다. 내 책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내 글을 읽으며 여행하듯 다양한 감정을 얻고 더 나아가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무엇인가?
거짓말하지 않을 것. 느끼지 않은 것에 대해 포장이나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생각한 것과 느낀 것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리듬감이 생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생한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현장감만 담는다고 좋은 글이 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정제하지 않는 용기, 때로는 확실하고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여행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동을 동반한 하나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도시를 마주했을 때 독자와 그 도시의 교집합이 내가 될 수 있다. 그곳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내가 마련해주고 싶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어떤 것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산책자로서의 여행가가 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 

 

EDITOR | 매거진 <고을>의 신유미 (편집장/대표),
배단비(콘텐츠 디렉터), 조지현(에디터), 정기훈(디자이너)

‘식문화로 지역을 여행한다’는 슬로건 아래 대한민국 방방곡곡 여러 도시를 샅샅이 훑어보는 단행본 시리즈다. 경주, 담양, 강릉, 대구, 순천을 탐험하며 도시의 다채로운 미식 문화를 소개했다. 생생하고 깊이 있는 취재와 다정한 시선이 담긴 사진으로 이웃의 부엌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고을’이라는 이름은 순우리말인가?
옛 지역 단위를 이르는 그 ‘ 고을(Goeul)’이다. 한글을 소리 나 는 대로 영어로 표기했다. 

2019년 11월 창간했다. 여타 여행 가이드북과의 다른 정체성은 무엇인가?
식문화에 집중한다. 음식을 매개로 여행하는 셈이다. 해당 지 역 식문화의 탄생과 배경을 소개할 때는 장인, 식문화에 기여 한 농부, 음식과 관련한 아티스트 등 다채로운 콘텐츠로 확장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팀의 구성과 역할은 어떻게 되나?
편집장을 포함해 콘텐츠 디렉터와 에디터, 디자이너와 사진 가가 책을 완성한다. 기획부터 발행까지 3~4개월 걸린다. 도 시가 선정되면 자료를 모은다. 이때부터 취재가 시작된다. 흩 어진 자료를 수집하고 고향민을 찾아 인터뷰하며 모은 자료 를 바탕으로 취재할 곳을 엄선한다. 이후 모든 팀원이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최대 일주일가량 현지 취재를 한다. 

지역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관광지로 알려진 유명한 도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력적 인 도시. 이렇게 2개의 기준으로 나뉜다. 식문화를 다루다 보 니 행정구역에 따라 비슷한 경우도 더러 있다. 최대한 겹치지 않는 선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곳을 찾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지역이 있나?
‘순천편’이 기억에 남는다. 순천문화재단에서 <고을>의 콘텐 츠로 순천을 소개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성사된 첫 번째 사례 였다. 우리 콘텐츠가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지역을 취재하다 보면 뭉클한 순간도 많을 것 같다.
취재 후에는 늘 그 도시에 깊은 애정이 생긴다. 취재원에게도 우리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우리가 느끼 는 만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다면 성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룬 여러 콘텐츠에서 <고을>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비주얼과 큐레이션이다. 여행 가이드 코너에 서면 가장 예쁜 책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이 책 자체로 도시를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여행 사진이 아닌 도형을 활용한 표지, 사진 역시 꼼꼼하게 신경 쓴다.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는 작업일 것 같다. 의외의 순기능도 있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더라. 여행지 하면 몇몇 도시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평생 살던 고향 역시 가까이 들여다보면 숨어 있는 매력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여행지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걸 느낀다.

콘텐츠로서 <고을>의 유의미한 성과를 돌아보자면?
진정성이다. 여행지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우리는 사진과 글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이라는 형태를 접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 수고로움이 지역을 향한 진정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지역을 발로 뛰지 않아도 진정성 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콘텐츠로서 여행의 매력은 무엇일까?여행만큼 무궁무진하고 끊임없이 태동하는 주제는 없다. 첫 호인 경주편도 현재 개정판을 낼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여행은 늘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는 활동인 만큼 이 콘텐츠는 늘 관심 있고 마르지 않는 호감도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고을>에서 더 펼쳐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우리나라를 넘어 해외 도시를 다루고 싶다. 2019년 창간할 당시만 해도 팬데믹으로 해외길이 막혔다. 당시에는 국내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콘텐츠의 색이 확고해지며 해외를 다루는 것에도 기대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