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열차에 올랐다. 다낭에서 호이안, 퀴논까지 기차의 느긋한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낯선 시선으로 마주한 베트남의 면면.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자니에르 바이 산 호 호텔의 모래사장.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향긋한 반세오(Banh Xeo) 팬케이크. 바이 산 호 호텔의 수영장. 바이 산 호 호텔의 전통 찻잔과 어우러진 그림자.

자니에르 바이 산 호 호텔에서 1.6km가량 이어지는 긴 모래사장.

다낭의 기차역을 걸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공기는 습했다. 베트남의 한적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전투기 2대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역 앞의 노점 상인은 영어로 “칩스, 쿠키, 스낵!”을 외치며 나를 불러댔다. 울퉁불퉁한 길 위로 대가족이 캐리어를 끌고 가는 동안 나는 그의 외침을 단호히 외면하며 탑승장으로 향했다. 기차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백패커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 시절의 해방감이 몰려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최근 관광객 사이에서는 이 종단 열차가 베트남을 둘러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철로는 베트남의 남북을 오간다. 선로는 1936년 베트남이 프랑스 통치를 받을 당시 완공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쪽 사람에게 이 철로는 중국과 소련 같은 동맹국으로부터 군수 지원을 받는 주요 보급로 역할을 했다. 1975년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시작된 복원 사업은 자국 경제 부흥과 우수한 공학 기술을 선보일 기회인 동시에 치유의 시작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그 의의가 더 컸다. 1976년 말 베트남은 터널 수십 개와 다리 수백 개 건설을 기점으로 기차역 150여 곳을 복원했다. 북쪽의 하노이부터 남쪽의 호찌민을 연결하는 열차는 이후 ‘통일 특급 열차’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 철로는 전쟁의 폐허에서 일군 베트남의 ‘승리’였다. 

특파원으로 베트남에 수년간 머물며 이 기차를 여러 번 탔다. 안락한 침실 칸부터 저렴한 표를 구입했을 때는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불편한 여행도 감수했다. 예전에는 성능 좋은 에어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구식 열차였지만 창문을 자유롭게 열 수 있었다. 창문을 열면 열차 안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를 음미하며 객차 사이에서 주전자 속 물이 끓는 광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열차가 출발하면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역무원이 밖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이번에는 전과 다른 특별한 열차에 탑승했다. 럭셔리 호텔 브랜드 아난타라에서 론칭한 열차 ‘비에티지(The Vietage)’가 주인공이다. 하나의 객차를 일반 기차 맨 끝에 연결해 운행하는데, 다낭부터 퀴논까지 약 300km를 종단한다. 비에티지는 아난타라 호이안 리조트와 아난타라 퀴논 빌라와 연결되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아난타라는 철도 개설을 위해 각종 허가를 받는 등 무려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열차를 타기 전 이틀 정도 여유가 있어 동남아시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호이안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지낸 곳은 녹음이 우거진 강가 마을로 커피숍과 아트 갤러리가 즐비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첫날에는 지인의 소개로 일본 아티스트 사에코 안도(Saeko Ando)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고대 베트남 기법에 착안해 천연 광택제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다. 안도와 나는 금방 친해졌고 내게 자신의 소설가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삼륜 오토바이 뚝뚝(Tuk Tuk)도 간신히 지나갈 듯 비좁은 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더니 이내 해안가에 위치한 캐나다 출신 소설가 엘카 레이(Elka Ray)의 집이 나타났다. 안도와 레이는 베트남 특유의 느리고 여유로운 삶의 방식에 매료되어 20년 동안 베트남에서 지냈다.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이 바빠지고 시끄러워진다면 더 이상 머물기는 힘들 거예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레이에게 베트남은 제2의 고향과 같았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12세기 말 지은 탑 도이 짬 타워(Thap Doi Cham Towers). 다낭 기차역에서 승객을 맞이하는 비에티지 열차의 승무원. 바이 산 호 호텔에서의 조식 준비 모습. 바이 산 호 호텔 메인 수영장의 청아한 아침 햇살.

다음 날 아침에는 프랑스 순수 미술 사진작가 레한(Rehahn)의 갤러리를 구경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베트남 소수민족을 촬영해왔다. 베트남에는 다오(Dao), 눙(Nung), 몽(Hmong), 라찌(La Chi) 등 50여 민족이 있다. 레한은 호이안에 갤러리를 열고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한다. 요즘은 베트남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장인의 작업 모습 촬영에 한창이다. 대가 끊어지면 그들의 기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업이라고. 레한은 내게 90세의 등불 장인 후인 반 바(Huynh Van Ba)를 소개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지만, 그는 아직도 매일 밤 꿈에서 새로운 등불 디자인을 생각할 만큼 열정이 넘친다. ‘기술을 전수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자식들은 큰 관심이 없다’며 뿌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는 묘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레한 덕분에 80대 어부 할머니 부이 티 쏭(Bui Thi Xong)도 만났다. 할머니는 뱃머리에 서서 씩씩하게 노를 저으며 강을 건넜다. 눈과 귀가 멀고 치아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까지 배 젓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다음 날 짐을 싸고 나니 아난타라 직원 2명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들은 나를 다낭역까지 태워다 줬다. 다낭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하던 시기 경계선을 표시한 북위 17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겉에서 본 열차 비에티지는 빨강, 하양, 파랑 줄무늬가 그려진 다른 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양쪽으로 정렬된 부스 6개에는 정갈하고 푹신한 좌석이 자리했고, 각 부스를 구분하는 라탄 칸막이 틈새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졌다. 열차 매니저 쿠엉(Quang)이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그는 따뜻한 크루아상과 프랑스식 건포도 빵 팽 오 레쟁(Pain aux Raisins)을 내주며 곁들일 웰컴 드링크로 시원한 냉커피를 추천했다. 열차에서는 포근한 담요와 목 베개,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와이파이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자 철도 승무원이 깃발을 세차게 흔들었고 이 신호에 노점 상인은 일제히 손수레를 끌고 떠났다. 낡은 기차 안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높이 솟은 굴뚝과 국기가 바람에 날리는 찰나의 순간을 눈에 담았다. 도시의 풍경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어느새 푸른 논밭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 너머 수직으로 펼쳐진 질서 정연한 벼의 모습은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베트남의 상징인 원뿔 모양의 삿갓 넌라(Non La)를 쓴 농부들이 허리를 굽히고 모내기에 한창인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른쪽에는 숲으로 뒤덮인 산과 채굴로 벌거숭이가 된 민둥산이 듬성듬성 보이고, 왼쪽에는 푸른 바다가 자리했다. 과거 참파 왕국이 지배했던 지역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전성기의 참파 왕국은 크메르 제국과 겨룰 만큼 국력이 막강했던 나라다. 캄보디아 앙코르 사원에는 12세기 두 왕국의 해상전을 묘사하는 벽면 부조문도 있다고 전해진다. 바다를 지배한 참파 왕국은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사이의 해상무역을 관장하기도 했다. 고고학자가 베트남 해안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 산악지대 곳곳에서 발견한 참파 왕국의 사원과 성채는 엄청난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이후 몇 시간 동안 열차는 쌀을 운반하는 전통 바지선과 작은 돛단배를 닮은 삼판이 서로 밀리고 밀치며 이동하는 강과 함께 달렸다.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오리 무리가 서늘한 그늘을 찾아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인 풍경이 펼쳐졌다. 철도 건널목에 잠시 멈춰 섰을 때는 지나가는 차를 훑었다. 짐을 산더미로 쌓은 오토바이부터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 이층 버스 등 각양각색의 차가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 열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45마일 정도. 이를 두고 한 탑승객은 “‘통일’ 열차는 맞지만 ‘급행’ 열차는 아니죠”라며 농담을 던졌다. 코스로 나오는 점심 식사를 앞두고 승무원이 어깨 마사지를 제안했다. 뭉친 목과 어깨를 풀고 말굽처럼 생긴 바(Bar)의 높은 스툴에 앉아 창문 너머 시골 풍경을 감상했다. 중간중간 공동묘지도 많았는데, 논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는 퀴논(Quy Nhon) 항구에 정차했다. 이곳이 바로 비에티지의 종착역이다.

 

호이안 강가 마을의 아침 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자전거를 탄 여인의 모습.

바이 산 호 호텔 내에 지은 전통 목조 빌라 내부.

해변에 위치한 아난타라 퀴논 빌라까지는 자동차로 순식간에 도착했다. 프랑스 호텔 그룹인 자니에르(Zannier)가 약 2년 전 1.6km 정도의 긴 백사장에 세운 바이 산 호(Bai San Ho) 호텔 역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두 호텔 그룹 모두 급부상 중인 이 지역의 가치에 기대감을 품고 진출한 셈이다. 지역 주민도 인정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해변이니 그 가치가 충분하다. 퀴논의 호텔 두 곳을 모두 경험하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지역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호텔 컨시어지의 도움을 받았다. 아난타라 리조트에서 소개한 가이드와 참파 왕국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일정에는 두옹 롱(Duong Long)이라는 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유적지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두옹 롱은 연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타워 3개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 탑의 높이는 24m를 훌쩍 넘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텅 빈 실내를 바라보며 이끼로 뒤덮인 빨간 벽돌 벽과 벽돌 틈새에서 자란 나뭇가지를 관찰했다. 유적지 탐험 후에는 베트남 전통 장인을 만났다. 4대째 수작업으로 모자를 만드는 모자 장인과 라탄으로 그물을 만드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날에는 바이 산 호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고 산호초를 보며 한참을 스노클링하며 시간을 보냈다. 배를 타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석호에서는 어부들이 폰툰 위에서 타이거새우를 잡는 모습을 구경했다. 

퀴논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용한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는 오늘 방문객 중 10번째 손님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렴해 보이는 조각상과 텔레비전 2대, 하이네켄 캔이 놓인 재단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점쟁이는 내게 오레오 쿠키를 건넸다. 그는 내가 뽑은 카드로 점을 치기 전 손금부터 봐줬다. 장수할 것이나 올해는 악재로 힘들었을 거라며 점사를 풀었다. “이제 곧 상황이 호전될 것이다”라고 재빨리 덧붙이기는 했지만, 당장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미루라고 경고했다. 점괘를 다 듣고 문밖으로 나서려는데, 점쟁이는 “여행은 멈추지 말기를. 여행할 동안은 항상 안전할 것이니”라며 마지막 조언을 남겼다. 

 

WHERE TO STAY

아난타라 호이안 리조트
투본강을 바라보는 94채의 리조트는 아름답게 꾸민 넓은 잔디밭과 수영장을 품었다. 매일 아침 요가 레슨을 받고, 강 크루즈를 원할 때는 리조트 개인 부두에서 출발할 수 있다. 호텔이 위치한 거리는 작은 카페와 아트 갤러리가 밀집해 지역 주민이 붐비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으면 호이안 시내 중심부에 도착하는데, 좁은 골목에는 각종 가게, 식당, 찻집이 즐비하다. 270달러부터. anantara.com

아난타라 퀴논 빌라
참파 왕국 때 세운 사원을 비롯한 여러 유적지를 관광하기에 제격이다. 컨시어지에 문의해 투어를 예약하면 개인 가이드가 역사적 명소 소개는 물론, 지역 장인과의 만남도 주선해준다. 지역 해산물 맛집도 추천해주니 꼭 물어보기를. 언덕에 위치한 스파를 즐기거나 호텔 최고 보안 요원이 진행하는 일일 무술 수업도 들을 수 있다. 조식 포함 700달러부터. anantara.com 

자니에르 바이 산 호 호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숙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비탈에 펼쳐진 개인 빌라 73채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인테리어는 흠잡을 데 없으며 호텔 내 식당이 3곳이나 있어 맛있는 음식으로 정평이 났다. 첫 번째 식당은 아치형 초가지붕이 특징적이고, 다른 2곳은 각각 바닷가, 수영장 옆에 자리한다. 415달러부터. zannierhotels.com 

 

ALL ABROAD 

아난타라의 비에티지는 하루 두 번 운행한다. 다낭 기차역에서 첫 차는 매일 아침 8시에 출발해 2시 30분경 항구 마을인 퀴논과 인접한 디우 트리 역(Dieu Tri Station)에 도착한다. 오후 열차는 6시 30분에 디우 트리 역에서 출발해 자정쯤 다낭에 정차한다. 밝은 목재와 아름다운 라탄 파티션으로 장식한 내부에는 부스가 6개 있고, 한 부스에는 2명에서 최대 12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부스 내 좌석은 크기가 넉넉해 편안한 여행을 보장하며, 매끈한 대리석으로 마감한 바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오후 열차에 탑승할 경우 부스 내 좌석은 침대로 바꿀 수 있다. 6시간가량 소요되는 여정의 비용은 편도 400달러다. 3코스 요리, 음료, 목과 어깨 마사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비에티지는 아난타라 호이안이나 퀴논 숙소에 오가기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