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이 낳은 슈퍼스타’는 없다.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뮤지션 타이 베르데스의 가늠할 수 없는 음악 세계. 

링은 구찌(Gucci).

오버사이즈 데님 재킷과 이너로 입은 데님 블레이저 재킷은 디젤(Diesel). 데님 팬츠와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바스켓 재킷과 슬리브리스 톱, 코듀로이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터드 로퍼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롱 슬리브 톱과 팬츠, 스커트는 모두 디올맨(Dior Men). 부츠는 보스(Both).

 

카메라 앞에서 굉장히 자유로워 보여요.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오늘처럼 재미있게 촬영한 건 오랜만인 것 같아요. 패션계를 씹어 먹을 것 같은 스타일링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웃음)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했어요.

농구 선수부터 통신사 직원, 모델까지 경험이 풍부해요. 이 모든 여정에도 음악을 놓지 않았죠?
그럼요.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끼고 살았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음악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줬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즐기는 것 이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고요. 음악의 도시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도 행운이었죠.

‘틱톡이 낳은 슈퍼스타’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녀요. 음악성이 묻히는 것 같아 걱정되지는 않아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저스틴 비버도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됐고, 숀 멘데스도 숏폼 플랫폼 바인(Vine)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지금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음악은 음악이고 인터넷은 영원히 진화해요. 사실 저는 제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상관없어요.

정말 어떤 수식어도 괜찮아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떤 이미지 속에 저를 가두려 하고 라벨을 붙일 거예요. 그 안에서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성실히 음악을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람들이 저를 ‘SandMan’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6월 발매를 앞둔 신곡이죠.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웃음) 노래를 듣고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면 좋겠어요. ‘어떤 메시지를 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작품의 결말을 망치는 꼴이거든요. 일단 들어보세요!

꼭 들어봐야 할 이유를 하나 꼽자면요?
지금까지 발매한 곡 중 완주까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어요. ‘Stuck In The Middle’은 일주일 만에 완성한 반면 이 곡은 8개월이나 걸렸죠. 저보다 열심히 작업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해요. 발매한 곡 중 가장 마음에 들어요.

왜 그렇게까지 오래 걸렸어요?
소리, 가사 등 노래의 모든 요소에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동일한 파트를 30개 버전으로 만들어 비교하고 최상의 것을 찾으려고 집요하게 작업했어요.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어떻게 말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모든 걸 뛰어넘는 곡을 만들고 싶었죠. 데뷔 이후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스스로 완전히 만족스러운 감동이나 경험은 아직 없었거든요.

취미가 일이 됐는데 여전히 그렇게 좋아요? 한국에는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는데, 꼭 행복한 일은 아닐 것 같거든요.
그럴 수 있죠. 결국은 좋아하는 마음이 진짜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노래를 만든다고 해도 원하는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묻힐 수도 있어요. 그러면 부담이 생기죠. 관심과 유명세를 바라는 건지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건지는 달라요. 저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공유하고 나누는 것도 행복해요. 꼭 누군가 듣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공유하기로 했다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고 싶어요. 어물쩍 넘어가는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콘서트, 음악, 뮤직비디오 등 어떤 형태든 세상과 공유하려는 것은 저 자신에게 우선시되어야 해요. 인생은 유한하잖아요.

데뷔 전과 후 음악을 만들 때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데뷔 전후를 굳이 구분하지 않아요. 저는 항상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포인트는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성장한 ‘타이 베르데스’라는 사람뿐이에요.

음악은 곧 타이 베르데스라는 사람 자체인가요?
맞아요. 제게 음악은 일종의 타임캡슐과 같아요.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시절의 제가 떠오른다는 점에서 이 직업이 참 좋아요. 네 안에서 나름의 시대가 생기죠. 24세에 만든 ‘Stuck In The Middle’이라는 곡에는 당시 제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아요. 지금도 새로운 음악을 쓰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모든 과정에 그날의 제 감정과 기분, 시간이 요약되어 있어요.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너로 입은 스커트 형태의 슬리브리스 톱과 쇼츠, 네크리스는 모두 릭 오웬스(Rick Owens).

오버사이즈 베이스볼 재킷은 MM6 메종 마르지엘라 바이 아데쿠베(MM6 Maison Margiela by Adekuver). 데님 팬츠는 베트멍(Vetements). 니트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일종의 일기장인 셈이네요.
그렇죠. 일기는 일기인데 모두가 읽기를 원하는 오픈된 일기장이죠.

그 일기에는 100% 솔직한가요?
처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개될지 몰랐고 저 역시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중이 곡을 해석하고 생각이 더해지는 과정을 목격하며 스스로 솔직한 모습을 인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약한 모습까지 모두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두려울 때는 없어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걸요.(웃음) 예술가에게 멈추고 후회하는 건 죽음과 다름없으니까요.

한국에서 첫 공연을 마친 어제는 어땠어요?
단언컨대 지금까지 한 공연 중 최고였어요. 내한을 고민하는 가수가 있다면 100% 추천해요. 기회만 있다면 꼭 와서 그 분위기를 느껴봐야 해요.

열기가 대단했죠. 인기를 실감했나요?
저는 늘 유명했어요.(웃음) 14세에 농구를 할 때도 동네에서는 꽤 유명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도 나름대로 유명세를 치렀고요.

처음 선 무대는 어디였어요?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페스티벌이었어요. 관객이 3만5천 명 정도 있었죠.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린 페스티벌이라 부담이 컸어요. 무대에 올랐는데 순식간에 압도당해버렸어요.

450만에 달하는 조회수, 6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은 틱톡 영상에 비하면 3만5천이라는 숫자는 소박해요. 많이 떨렸어요?
사람들 앞에서 실제로 공연하는 건 너무 다르죠. 이건 절대 대체될 수 없어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SNS도 중요하지만, 공연을 통해 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는 진정성이 전달되죠.

그래도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냈잖아요.
음악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무대만 봤을 때는 너무 즐기는 것 같았어요. 무대 위에서도 전략가인가요? 본능적인가요?
첫 무대를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모든 무대가 완벽하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공연을 할 때 저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려고 해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다, 어떤 걸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관객이 현실을 잊고 지금 이 공연을 즐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연장에서 음악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요. 공연의 처음과 끝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곳에서 느낀 감각만큼은 남는다고 믿어요. 그걸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어떤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제 음악을 듣고 추억을 떠올리거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가 있었어요. 이렇게 음악을 매개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순간을 목격할 때면 이보다 멋진 일은 없다고 느껴요. 그게 바로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에요?
칸예 웨스트, 키드 커디 같은 뮤지션요. 음악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 혁신을 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좋아한다고요. 서울은 어떤 도시인 것 같아요?
낯선 곳에 가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거든요. 서울에 도착해서는 몇 가지 풍경이 기억에 남아요. 공항에서 팬분들이 저를 맞아주신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일말의 기대도 없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보통 공항에 도착하면 지체할 틈 없이 호텔로 출발하거든요. LA와는 다른 형태의 건축물도 흥미로웠어요.

바쁜 투어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려고 지키는 루틴이 있나요?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하나씩 하려고 해요. 요가를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요. 머릿속에 있는 시끄러운 생각이 잠잠해지도록 하는 과정이죠.

시간 이동 능력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 머물고 싶어요. 과거나 미래는 통제할 수 없잖아요. 제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애덤 샌들러가 출연한 영화 <클릭>처럼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해도 보지 않을 거예요. 더 이상 놀라운 일은 없을 거잖아요. 새로운 기대와 설렘, 그 긴장감이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부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