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아름다움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여름. 꾸레쥬부터 페라가모까지 이번 시즌, 옷마저 석양으로 물들었다. 몸에 밀착되는 실루엣, 깊은 염색 기법과 함께.

여름에 기대되는 것. 이국적인 여행지, 낭만이 있는 도시에서 반드시 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 중 하나는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여러 마음을 품는 것일 테다. 여행이 다시 활기를 띠던 시점부터 디자이너는 옷에 설렘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선셋이다. 광활한 풍경이 지닌 기하학적 컬러 블록부터 아주 작은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매혹적인 모든 소스를 직물이나 패턴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패션에 자연은 항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색처럼 옐로와 오렌지, 강렬한 레드를 지나 때때로 짙은 바이올렛을 거쳐 하늘의 색을 띠기도 하는 다채로운 컬러 그러데이션. 이번 시즌 유독 많은 디자이너가 저마다의 이유로 선셋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먼저, 맥시밀리언 데이비스가 이끄는 페라가모를 살펴보자. 당시는 그가 임명된 직후로 획기적 인사라고 떠들썩하던 시기다. 데이비스는 오자마자 외적 변화(브랜드명, 로고 등)를 시도한 것 외에 젊은 층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안정적 선회를 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중 레이첼 해리슨(Rachel Harrison)의 선셋 시리즈에서 영감 받은 선셋 모티프의 드레스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1970년대의 실루엣을 차용한 것이나 로맨틱한 분위기, 여름 파티에 어울리는 바이브 등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데 주효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첫 시즌을 보낸 에트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드 빈센조 역시 젠지에게 어울리는 믹스앤매치를 제안했다. 2023 봄/여름 패션위크 당시 그에게 컬렉션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은 한 달뿐이었다. 그는 페이즐리, 주름 디테일, 집시 무드 등 에트로의 대표적 재료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야 했다. 에트로인 듯 에트로가 아닌 듯 급진적 낭만주의와 비주얼이 충만했던 컬렉션의 기억. 니트 브라 톱과 니트 스커트에 강렬한 선셋 컬러 팔레트를 염색한 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반복적으로 서핑과 스쿠버를 모티프로 하는 꾸레쥬는 40개의 룩 중 단 하나의 룩이 강렬한 선셋의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슈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인체 공학적으로 몸에 최대한 피팅되게 하기 위해 실리콘 소재로 만든 드레스는 1974년 꾸레쥬 드레스를 모델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붉은 계열에 아래쪽만 짙은 보라 계열로 그러데이션되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그뿐 아니라 이탈리아 시골 지역의 하루 동안 변화하는 빛에서 착안해 강렬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한 마르니나 선셋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위트 있는 캣슈트를 선보인 JW 앤더슨도 이 여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컬렉션이다.

무엇이든 태양의 색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 그러데이션, 강렬하거나 섬세하게 오가는 톤, 실루엣과 염색 기법에 주목할 것. 이것을 즐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도 기억하자. 붉은 계열의 선셋 컬러는 곧 가을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여름 선셋이 유독 더 낭만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