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보디 포지티브는 응원일까? 위로일까? 핑계일까? 

야심한 시각, 알코올을 삼킬 때 나는 행복하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탄산은 온종일 응축된 스트레스를 터트린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술의 온도는 열기가 앗아간 에너지를 채운다.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건 풍류를 아는 현대인이라면 여름철 응당 누려야 할 호사라 믿었다. 손쉽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 행위로 독립 후 첫해의 여름을 누렸다. 혼자 사는 내게 매일 밤 술을 마신다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었다. 청량함으로 가득한 한 계절이 지난 뒤 내게 남은 건 도톰한 아랫배와 고작 준비운동만으로 헉헉대는 체력. 몇 달 전까지 즐겨 입던 바지는 맞지 않았고, 필라테스로 다진 작고 소중한 근육은 홀라당 사라졌다. 우리 몸은 거짓말을 참 못한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살이 쪘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위축됐지만, 이내 전 세계 여성을 향한 보디 포지티브 운동의 정의를 설명하며 방어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에 이 귀여운 뱃살을 사랑한다’고 말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의 메시지는 어쩌다 보니 게으름과 안락함을 모면할 핑계가 됐다. 

타인이 만든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은 보디 포지티브의 가장 큰 수확이다. 미의 기준이 까다로운 할리우드에서도 ‘나’로 돌아가기 위한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카일리 제너는 입술 필러를 녹이고, 카디 비 역시 건강을 해친 엉덩이 필러를 버렸다. 보형물의 부작용과 불편함을 토로하며 제거 수술을 고백한 셀러브리티도 있다고 한다. 매끈한 다리, 팽팽한 피부, 봉긋한 가슴, 사과를 닮은 엉덩이처럼 획일화된 기준 몇 가지로 정의되어 온몸의 기준은 무너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배우가 노 메이크업 셀카를 올리거나 영화와 화보를 촬영하는 일, 후보정을 거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타인의 기준에 따라 치장한 모습이 아닌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 개인의 의지로 택한 곳에 에너지를 쏟아 원하는 성취를 얻는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 여성의 삶은 전과 다른 무한한 가능성을 품게 됐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유가 주는 달콤함에 나태해지기도 한다. 다양한 미의 기준, 삶의 방식이 특정 기준에서 벗어나 ‘나’로 옮겨진 덕이다. 혹독한 식단 관리 대신 고칼로리, 불량한 음식이 주는 미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되니 운동은 미루는 식이다. 보디 포지티브의 긍정을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몸과 마음 모두 바쁜 현대사회에서 본능에 충실한 행동은 무엇보다 큰 기쁨을 몰고 온다. 이 기쁨은 한번 맛보면 끊어내기 힘들다. 보디 포지티브를 합리화의 수단으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일에 흠뻑 취해 있을 때 내게 충격을 안긴 말이 있다. “우리 몸은 일회용품이에요. 그래서 수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잘 관리해야 해요.” 한 인터뷰에서 만난 트레이너가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 말은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게 입을 막아버렸다. 그는 “불필요한 고통 없이 거뜬히 생활할 수 있는 몸, 신체와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몸을 긍정하는 지속가능한 방법”이라 덧붙였다.

몸의 서사를 기준으로 바라본 보디 포지티브는 ‘몸을 긍정한다’는 메시지에 새로운 시선을 장착하게 했다. 나이테처럼 우리 몸은 지나온 시간을 기록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통과한 모든 시간이 축적된다. 무게가 똑같은 사람이라도 삶의 방식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와 형태, 건강 상태가 각기 다르다. ‘저 사람은 건강한 것 같아’ ‘분위기 있는 사람이야’ ‘인상이 좋아’라는 평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로 향한다.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영향을 끼치는 곧은 자세와 밝은 미소, 핑크빛으로 채워진 생기 가득한 혈색, 건강한 머릿결은 하루이틀 노력으로 얻어진 게 아니다. 운동과 식습관, 평온한 심리 등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건강하게 운용해온 사람만이 품어낼 수 있는 훈장이다.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보디 포지티브는 웰빙(Well-being) 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가치를 포용하는 단어 웰니스(Wellness)와 맞닿은 부분이 많다.

생에 단 한 번 주어지는 몸으로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신체를 챙기는 게 중요하다. 평생의 짝이 되는 동무처럼 운동과 행복을 반려의 자리에 놓는 건 긍정적인 신체를 향한 첫걸음이다. 내가 다시 생각해야 할 보디 포지티브는 확실한 주관과 타당한 이유로 설정한 몸에 다가가는 평생의 수련 과정이다. 미우나 고우나 평생을 함께할 이 몸을 사랑하며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하는 일부터 시작이다. 반려 운동, 반려 식단, 반려 루틴처럼 형태가 아닌 꾸준함으로 빚어낸 결과 말이다. 일단 오늘은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는 이유로 적당히 채워 넣던 위에 조금이라도 편안한 한 끼를 넣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