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코너를 돌아선 미란이가 씩 웃어 보인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가벗은 마음을 하고서.

톱과 팬츠는 닙그너스(Nibgnus). 버터플라이 링은 솔트워터(Saltwater).

픽셀 후디와 팬츠, 슈즈는 모두 로에베(Loewe).

이너로 착용한 스윔웨어는 버버리(Burberry). 재킷과 팬츠는 YCH.

재킷과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첫 정규 앨범 <The Drift>가 어제 발매됐죠. 앨범이 공개되자마자 가장 먼저 뭘 했어요?
라디오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어렵게 시간 맞춰서 인스타 업로드는 했네요.(웃음) 스케줄 끝나고는 그냥 저녁 먹고요.

주변 반응도 살펴봤나요?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원래 반응을 좀 살피는 스타일인데, 이번 앨범은 자신 있었거든요. 제가 이미 너무 만족했기 때문에, 그 누군가의 의견이 딱히 필요 없겠다 느낀 것 같아요.

두 달 전, 수록곡인 ‘아스팔트’를 먼저 공개했을 때는 어땠어요?
그때는 앨범을 한창 만들고 있었어요. 정규 앨범의 밑밥을 던진 거나 다름없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줄지 궁금했죠. 근데 사람들은 노래보다 저한테 관심이 더 많더라고요. ‘미란이가 왜 이런 음악을 했지?’ ‘이건 미란이 스타일이 아닌데’ 같은 반응이 많았어요. ‘아스팔트’가 그렇게 친절한 노래는 아니에요. 친근한 코드나 리듬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애초에 모두를 납득시키는 것보다 지금의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했거든요. 그럼에도 막상 곡에 대한 감상보다 ‘미란이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니 속상하더라고요. 제가 만든 노래인데도 그 앞에 자신 있게 바로 서지를 못했죠. 변화한 내 스타일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구나 싶어 걱정도 됐고요.

이제는 그 걱정에서 자유로워진 거고요?
트랙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확신이 생겼거든요. 머릿속으로 그리던 곡이 하나씩 제 모습을 갖추면서 드래곤볼이 완성된 거죠. 앨범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훨씬 단단해졌음을 느껴요. 옷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그때는 옷을 박음질하고 있는 상태였던 거예요. 앨범을 발매한 지금은 나한테 딱 맞게 완성한 옷을 입은 거고요. 이젠 옷과 내가 한 몸이 되었으니 일말의 의심도 없어요.

<The Drift>에서는 가난, 꿈, 희망 대신 사랑과 이별, 플렉스를 노래해요. 11곡으로 자신의 어떤 면을 보여주려 했나요?
특정한 어떤 면이 아닌 지금의 미란이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쇼미더머니9> 출연 당시 대중이 저를 사랑하고 응원한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때와 비교했을 때 경제적인 면은 물론,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손목에는 롤렉스 차고 있으면서 여전히 그때 쓴 가사와 곡의 분위기를 유지하려 한다면 거짓말하는 꼴이 되는 거잖아요. 변한 나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주되, 초심은 잃지 않으면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The Drift’라는 이름처럼 일종의 전환점으로 삼은 거네요?
맞아요! 다시 출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지금까지는 <쇼미더머니9>에서 ‘VVS’를 부르던 때의 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곡을 만들었어요.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리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사실 작년 4월에 ‘Gasoline’을 내고 앨범 두 개를 제작했다가 엎었어요. 미니 앨범이었는데, 두 번 다 도저히 만족이 안 돼서 발매하지 않았죠. 지난 1년 정도는 그렇게 시도하고 배우고 음악 밖으로 시야를 돌렸다가 뭔가를 깨닫는 시간도 가지면서 수련하듯 보낸 것 같아요. 이제는 확신이 생긴 만큼 단호하고 솔직해졌어요. <The Drift>는 그 전환점을 만들어준 앨범이에요. 열심히 달리다 방향을 확 틀어버리면 위험할 거라는 걸 알지만, 뮤지션으로서 그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쇼미더머니9> 때 받은 넘치는 사랑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사랑받은 모습만 고수하려는 건 그때 저를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빚을 지는 일 같아요.

같은 소속사인 앳 에어리어에 새롭게 합류한 블라세부터 빅나티, 수민까지. 피처링 라인업도 화려하던데요.
각 트랙의 색이 강해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바로바로 떠올랐어요. 덕분에 컨택도 수월했고요. 수민 언니는 평소 너무 좋아하던 아티스트라 제가DM으로 직접 연락했어요. ‘시험해’ ‘니가 싫어’ 두 곡의 비트를 써주셨죠. 레이 아미(Rei Ami)는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잘 다루는 한국계 미국 아티스트예요. 3번 트랙인 ‘1, 2, 3 Go Shoot’과 더없이 어울리는 아티스트라 생각해 피처링을 부탁했는데, 곡을 듣고 바로 하겠다고 연락 왔어요. 시차가 있었음에도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피드백을 보낸 건 물론, 추임새 하나까지 정교하게 녹음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뭐예요?
“좋은데?” 그리고 “이거 맞아?”

끝없는 의심과 만족의 연속이었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해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준 프로듀서 과카랑 ‘이거 맞아?’를 수없이 주고받았어요. 진심에서 우러난 ‘좋은데?’가 나올 때까지.

특히 사랑에 대한 노랫말이 많아요. 작년 이맘때에는 웹 예능 <비밀리에>에서 ‘사랑에 대한 가사’와 ‘사랑’ 둘 다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이제 그 둘과 좀 친해졌나요?
그 말을 했을 때는 사랑이 그렇게 무수한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 몰랐어요. ‘사랑’ 하면 그저 밝고 예쁜 거라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근데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는 일은 마냥 분홍색이 아니더라고요. 어느 날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제일 가는 패배자가 되기도 하니까요.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 할 정도로 낯선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저를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터득했죠. 사랑하며 겪는 불안함,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이별 후의 감정까지 다양하게 표현했어요.

제일 솔직했던 가사는 뭐예요?
‘니가 싫어’의 가사요. 다른 트랙에서는 좀 숨기거나 돌려 얘기하는 식의 장치를 넣었는데, 이 곡에서는 제가 느낀 감정의 날것 그대로를 썼어요. 그것도 하루 만에. 제목도 다분히 1차원적이죠. 훅 부분에 폰 필터 걸린 가사도 다 실화예요.

지금 데뷔 초창기에 쓴던 가사를 보면 어때요?
언제부터인가 과거를 떠올려도 전만큼 또렷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색이 옅어진 느낌. 근데 그때 쓴 가사를 보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일기 같은 거죠.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그 문장을 썼는지만큼은 선명해요. 새삼스럽게도 이런 곡들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요.

음악을 하는 미란이와 일상을 살아가는 김윤진은 많이 다른가요?
지금까지는 간극이 크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미란이와 김윤진이 하나가 되어간다는 느낌. 예전에는 미란이와 김윤진의 캐릭터 구분이 명확했다면, 이제는 ‘미란이도 나고 김윤진도 난데?’ 싶어요. 미란이로서 음악을 할 때 더 솔직해지려고 해서인 것 같아요. 이제 김윤진이 없으면 미란이도 없어요.

지금보다 솔직하지 못했던 과거의 미란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이제 착한 건 놔주자! 미란이 하면 늘 착한 사람이 떠올랐어요. 좋은 말로는 배려를 잘하는 거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남의 눈치를 봤던 거죠. 근데 또 실제로 제가 해온 말이나 행보를 돌이켜보면 마냥 착하지만은 않았거든요? 괜한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것도 같고요. 이제는 제가 생각하는 미란이의 매력을 더 짙게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지금 미란이의 매력은 어떤 건데요?
긍정적인 바이브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단단함 아닐까요? 만화에서 미란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배경음악은 엄청 시끄러울 거예요. 하지만 소음처럼 느껴지지 않는 뭔가가 있어서 계속 귀 기울이게 되죠. 예측하지 못한 재미난 사운드로 꽉 찬 음악처럼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 그게 미란이의 매력 같아요.

밝고 쾌활한 미란이에게도 문득 자신감을 잃게 되거나 이유 없이 처지는 날이 있겠죠. 그럴 때는 어떻게 이겨내나요?
가만히 흘려보내요. 성급히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 기분 또 왔네?’ 하고 지나가게 둬요. 그날 하루는 그냥 기분 안 좋은 채로 보내는 거예요. 결코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거든요. 그러니 받아들여야죠. 그 기분에 흠뻑 취해서 나를 실컷 미워해보기도 하고요. 아무리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을 때는 내가 믿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제3자의 말이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5월 13일에는 도쿄에서 앳 에어리어의 두 번째 패밀리 콘서트를 열죠. 함께하는 식구들과 무대에 서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저한테는 축제나 다름없어요. 늘 행사나 페스티벌을 가도 팀이 아닌 혼자 무대를 채워야 하니까 100% 즐기기만 할 수는 없거든요. 긴장되고 생각도 많아지는데, 이렇게 같이 서는 무대에서는 서로 의지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패밀리 콘서트 바로 다음 날은 생일이던데 계획이 있어요?
맞아요! 와, 저 까먹고 있었어요.(웃음) 생일이 그렇게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그냥 친한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고 조용하게 기념하는 편이거든요. 올해 생일은 도쿄에서 회사 식구들과 소소하게 보내겠네요.

정규 앨범이라는 큰 산을 넘었어요. 다가오는 여름과 겨울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뭔가를 꼭 이뤄야겠다기보다는 태도에 대한 목표가 있어요. 올해는 공격적으로 가보려고요. 시간이 흘러 2023년을 돌이켜봤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쏟아부은 해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재수 없어 보일 정도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마는 한 해를 보내고 싶어요.

올해 미란이의 새로운 음악을 또 들을 수 있겠군요?
새로운 곡으로 찾아 뵙는 기회를 늘리겠다는 뜻도 물론 있고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것에도 방점이 찍혀 있어요. 사실 지금 또 싱글 준비하고 있거든요! 아직 갈 길이 먼 새 앨범 활동 2일 차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