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인간 광고판, 인플루언서의 몰락은 또 다른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제발 이건 사지 마세요!” 부정적 리뷰로 진정성을 내세우며 등장한 디인플루언서의 세계.

얼마 전 SNS를 둘러보다 ‘공구의 진실’이라는 자극적인 게시물에 눈길이 멈췄다. 영상 속 인플루언서는 커다란 조명 아래서 쿠션 파운데이션을 몇 번이나 덧바르다가 잠시멈춰카메라를바라보고말한다.“이쿠션,제가아까8시간전에출근하면서한번 바른건데광이랑커버력좀보세요!무너짐이하나도없어요.지금공구중이니프로필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놀랍게도 해당 콘텐츠는 인플루언서의 편집자가 회의감에 못 견뎌 폭로해버린 비하인드 컷이었고, 댓글 창은 온통 배신감을 느낀 팔로워의 분노로 가득 찬 상황. 조용히 팔로우 취소를 누르며 손절하는 걸로 허탈감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광고로 점철된 인플루언서의 위기

인플루언서는 SNS에서 일상을 공개하며 인지도를 쌓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여러 수익을 창출한다. 마치 옆집 언니처럼 친숙하고 모두와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연예인과 견줄 만큼 수백만 팔로워의 팬덤을 거느린 계정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몇몇 인플루언서는 앞서 말한 일화처럼 허위 광고로 신뢰를 잃었고, 몇몇은 팔로워가 궁금해하는 일상 게시물은 뒷전, 과도한 영업과 연이은 광고 콘텐츠로 피로감을 주는 탓에 ‘광고팔이’로 낙인 찍힐 위기에 처했다. 조금만 유명해진다 싶으면 “그래서 효소 공구는 언제 해요?”라는 식의 조롱 섞인 댓글도 피할 수 없다. 추앙하던 인플루언서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가 실패를 맛봤거나, 쉴 틈 없는 이어가기식 영업, 뒷광고 논란 등에 신물이 난 팔로워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등을 돌리고 있는 거다.

솔직한 팩폭, 디인플루언서의 등장

인플루언서 수난 시대가 계속되자 최근에는 이에 대항하는 ‘디인플루언서’가 등장했다. 디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와 반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과대 평가된 제품을 알려주고 “이건 별로니까 사지 마세요”라며 단호하고 냉철한 리뷰를 전한다. 값비싼 명품, 대기업 제품이라도 예외는 없다. 제품력이 형편없다면 실제 사용 후기에 기반한 여과 없는 평으로 사지 말라고 한다. 이런 디인플루언싱 콘텐츠는 인플루언서의 과도한 홍보에 질린 이들에게 비난이 아닌 솔직한 설득으로 와닿았고, 금세 신뢰와 지지를 얻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인플루언서의 화제성이 날로 높아져 틱톡에 #Deinfluencing을 검색하면 1억 개가 넘는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디인플루언서이자 틱토커인 얼리사 크로멜리스(@alyssastephanie)는 고가의 뷰티 아이템 중 제값을 하지 못하는 제품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해 인기를 끌었고, 레이첼 파인리(@hydrationceo)는 한 뷰티 편집숍을 돌아다니며 효과 없으니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소개해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도 점차 디인플루언싱 콘텐츠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튜버 후니언이 올리는 ‘광고 거절템(디스 폭발)’ ‘팩폭 리뷰’ 시리즈나 일하는앤지가 최근에 업로드한 ‘명품 캐리어, 진짜 좋은데 사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영상들이다. 디인플루언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에서도 이들과 협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특정 제품에 대한 홍보보다는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 고취를 위한 접근이 대다수다. 디인플루언서의 진정성과 신뢰도를 통해 또 다른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실제로 패션 디인플루언서 하이디 칼루자는 재활용 의류 회사와 손잡았고, 제스 클리프턴은 비영리 단체와 협업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결합한 마케팅을 예고하기도 했다. 개인의 영향력이 돈이자 권력인 시대다. 인플루언서의 몰락은 그 영향력을 무기 삼은 안일한 판단과 기만의 결과인 듯하다. 신뢰 없는 설득은 반발심을 끌어내고 관계에 금이가게할수밖에없다.그틈을꿰찬누군가에게는또다른기회가되겠지만,어느 쪽이든 관계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에서 중요한 건 진정성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