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는 누구나 아는 얼굴을 연기하며 아무도 한 적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웃기는 이수지의 몸짓과 얼굴들.

슬리브리스 롱 드레스는 뷔미에트(Bmuette). 모자는 더 센토르(The Centaur). 스니커즈는 악셀 아리가토 (Axel Arigato).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컨템포러리 어카운츠(Contemporary Accounts). 데님 팬츠는 밀리언코르(Millionco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컨템포러리 어카운츠, 와이드 팬츠는 아르켓(Arket). 스니커즈는 악셀 아리가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문득 개그맨을 위한 호칭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그맨, 코미디언, 그리고 희극인이 있죠. 무엇으로 불리고 싶나요?
코미디 배우요. 어떤 방식으로 웃기느냐에 따라 개그맨은 몇 종류로 나뉘어요. 몸으로 웃기는 개그맨도 있고 뚱뚱해서 웃기는 개그맨도 있죠. 전 늘 연기 잘하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개그맨을 꿈꾸고 공채 시험 볼 때부터 하던 생각이에요. 공채 시험에 붙으면 무대에 오르기까지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어요. 그 기간에 선배들이 저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다른 선배 개그맨처럼 살을 좀 더 찌우든가 아예 빼라고 하셨죠. 그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난 몸으로 안 웃길 건데? 지켜보세요.’

연기로 웃길 수 있다는 확신은 어떻게 가졌어요?
고등학생 시절 축제 기간에 무대에 오른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10분을 줄 테니 한번 웃겨보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이었지만 친구들과 일단 해봤어요. 그런데 그 많은 학생이 다 웃어주니 너무 좋았어요. 남을 웃길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확신하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축복 같아요.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웃음)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극단 생활을 하다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상 멈춰야 했어요. 하지만 잠깐이었어요. 가족에게는 미안했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죠. 시간만 투자하면 개그맨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확신에 대한 근거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냥 근거 없이 확신했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안 된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작가님이 제게 자기가 알고 지낸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쩌면 저라는 사람은 ‘부정’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해도 좀 많이 긍정적이죠.

코미디의 가장 큰 즐거움은 어디에 있어요?
공연이 가장 즐거워요. 관객과 호흡하는 즐거움에 있죠. 팬데믹 때 스탠딩 코미디를 할 수 없어 가장 큰 즐거움이 사라졌어요. 그러다 <SNL>의 크루로 합류하게 되었고, 관객을 만나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SNL> 첫 무대를 앞두고 안영미 선배와 무대 뒤에서 손잡고 서 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에 울컥했어요. 다시 살아 있는 것 같았죠. 정말 행복했어요. 팬데믹 동안 <개그콘서트>(<개콘>) 무대도 사라지면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거든요. 관객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있어요. 개그를 관두고 다른 업을 가지고 살다가도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오게 할 만큼 큰 힘이죠.

개그맨의 무대가 사라지는 것으로 인한 위기감도 들 것 같아요.
물론이죠. 후배들도 힘들어했고요. <개콘>이 끝났을 때는 무대가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가족이 모두 헤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슬펐어요. 다른 무대에서,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지내던 집이 사라진 것만 같았어요. 이제는 유튜브가 새로운 무대가 되었어요. 그렇게 비대면으로 응원하는 관객을 만나게 된 거죠. 후배들이 새로운 채널에서 자리 잡는 걸 보면 기특해요. 재주가 많은 친구들이라서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며 성장하고 있어요.

유튜브는 관객과의 직접 대면이 아니어서 아쉬운 점도 있겠죠.
저는 대면으로 얻는 에너지를 무척 좋아해요. 유튜브 방송 <뻥쿠르트>를 만들고 있는데, ‘야쿠르트 아줌마’ 옷을 입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에요. 가끔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인사하거나 등짝을 칠 때가 있어요.(웃음)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정말 좋아요.

사람들과의 시간이 왜 그토록 좋은 걸까요?
누군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처음 본 사람 혹은 새로운 분야의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어요. 버릇 같은 것인데,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제 뒤 테이블 사람들 얘기에 귀를 기울여요. 그 모든 것이 개그 소재가 될 수도 있어서요. 독특하고 특색 있는 건 모두 따라 해보고 싶어요.

보통 어떤 사람을 보면 개그 소재로 삼고 싶어요?
엄마요.(웃음) 전화 통화하는 아줌마 연기도 이렇게까지 웃긴 건지 몰랐어요. 전 엄마가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거든요. 엄마는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에요. 뭔가를 발굴하고 나면 제 남편에게 보여줘요. 재미없으면 바로 커트해요. 좀 더 세게 해보라고 할 때도 있고, 더 연습하라고 할 때도 있고요. 집에서는 거의 PD죠. <SNL> 오디션 보러 갈 때도 남편에게 대본을 보여준 후 수정했어요.

오디션을 거쳐 <SNL>에 합류한 거였군요.
예전부터 <SNL>을 하고 싶었어요. 이미 활동하는 크루들을 보고 저는 감독님이 찾는 색이 아닌 것 같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던 중에 남편이 오디션을 보라고 권했어요. 오디션 정보를 모르면 주변에 물어보라면서요. 그러고 보니 개그맨이 된 후에는 제가 수동적으로만 살아왔더라고요. 캐스팅되면 연기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았죠. 그전에 가졌던 능동적 에너지를 잊고 산 거였어요. 그래서 개그맨 공채 시험 준비하듯이 오디션을 준비했어요.

 

슬리브리스 롱 셔츠는 데무(Demoo). 와이드 팬츠는 아르켓. 로퍼는 레이첼콕스.

베이지 재킷과 팬츠는 OCC. 로퍼는 레이첼콕스.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티셔츠는 OCC. 팬츠는 바잘(Varzar).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개콘>과 <코미디빅리그>(<코빅>), <SNL>은 코미디라는 장르만 같을 뿐 그 결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져요.
<개콘>은 소재는 물론 인물까지 다 창작해야 했기 때문에 가끔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어요. 뭔가 더 센 게 나와야 하는데, 마음만큼 되지 않을 때도 있었죠. <코빅>은 프로그램 성격이 달라서 제가 하는 개그 역시 달라야 했어요. 제 색깔만 유지해서 하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더니 관객에게 외면받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어요. 아무도 제 개그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1년은 힘들었던 것 같아요. <SNL>은 굉장히 긴박하게 돌아가요. 소재가 자주 변경되고, 매주 호스트가 나오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연기도 해야 하고요. 갑작스레 대본이 변경되거나 캐스팅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요즘 이슈인 것을 많이 알아야 해요. 요즘 뜨는 말투, 사람들…. 다른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주변 20대에게도 자주 물어봐요.

이게 정말 웃긴 건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요?
코미디는 무조건 관객이 있는 곳에서 한번 해봐야 해요.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그럼 빠르게 버리고 다른 걸 짜면 돼요. 그 작업 또한 과정에 있어 재미있었으니 된 거죠. 성공한 개그도 많지만 실패한 것 역시 그에 못지않아요. 다만 저는 타율이 좀 좋은 편이에요.

누군가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코미디 연기를 했을 때,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지나치게 희화화해서도 안 되고, 정치인을 따라 할 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요.
코미디에 대한 잣대가 좀 더 유연해지기를 바라요. 아쉽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잣대가 더 엄격해지는 것 같아요. 개그 소재로 사용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 당황스럽고 허탈해요. 움츠러들 때도 있고요. 가끔 개인 SNS를 통해 ‘정치인 따라 하지 말라’는 식의 다이렉트 메시지가 올 때도 있어요. 오해를 풀기 위해 답장을 쓰려고 남편한테 내용을 보여주면 보내지 말라고 해요. 그럼 다시 지우고 참죠.

다이렉트 메시지를 열어둘 필요가 있나요?
전 일단 다 들어보려고 해요. 답장은 하지 않았습니다.(웃음) 메시지를 막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힘을 얻을 때도 있기 때문이에요. 저도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더 이상 사람들을 웃기지 못하는 것 같고, 개그맨을 관둬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신기하게도 힘을 주는 메시지를 받아요. 두 분이 기억나요. <개콘>에서 ‘황해’라는 코너를 할 때였는데, 한 청년이 집이 망해서 지방에 내려와 가족끼리 순댓국집을 차렸다는 사연을 보내왔어요. 모든 가족이 웃음을 잃고 힘들게 살고 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순댓국집에서 일하시다 TV에서 ‘황해’를 보고 웃으셨다는 얘기였어요. 그 메시지를 받은 시점이 아이디어를 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맨날 울던 때였거든요. 그 메시지 덕에 제가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았죠. 그래서 연락처를 알아내 순댓국집에 전화를 했어요. ‘<개콘> 식구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니 계속 보고 웃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순댓국을 포장해 한 상자를 보내주셨어요. 또 한 분은 환아를 둔 아버지였어요. ‘김정자 선생님’이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반응이 그리 크지 않아 힘들던 때,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가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힘이 없어도 따라 하며 재미있어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제 연기를 따라 하는 영상을 보내주신 걸 보고 정말 펑펑 울었어요. 그래서 <개콘> 팀이 함께 병문안을 갔죠. 아이 나이가 8세였어요. 그 어린아이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죠. 그 인연이 계속 이어졌어요. 그러다 재작년에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죠. 제가 아이를 낳은 후 그 부모님도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너무 좋다면서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코미디를 보고 웃고 싶은 순간은, 지금의 시간이 힘들 때 찾아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탠딩 코미디를 할 때도 기억에 남는 관객이 많아요. 대구에서 공연할 때인데, 맨 앞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는 거예요. 무대와 가까우니 꽤 좋은 자리죠. 공연 중간에 관객이 들어와 앉았는데, 공연이 끝난 후 사진을 찍고 싶어 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분이었는데, 기름때 묻은 작업복 뒤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월급을 모아 공연을 보러 오신 마음이 정말 고마웠어요. 이런 일이 많아요.

늘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이수지에게도 어두웠던 시간이 있었나요?
청춘의 시간이 그랬어요.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는 정말 어두웠죠. 28세에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가족 모두가 흩어져 사는 와중에 전 돈 버는 일을 하는 대신 개그맨 준비를 했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꿈만 버리지 않았어요.

꿈을 이뤄내 코미디언이 되었어요. 이 일이 영원히 지속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인가요?
40대까지는 개그맨으로 불태우고, 50대에는 아줌마 배우가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엄마를 연기하며 울리는 엄마가 되고도 싶어요. 아마 펑펑 울게 될 거예요.

희극인에게 연기란 뭘까요?
게임을 잘 하지 않아 정확한 용어를 모르겠지만, 게임 속 칼이나 방패, 창 같은 아이템 아닐까요? 코미디언으로서 개그를 더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 연기를 하면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분이 들어요. 대본을 맛있게 살리며, 멋지게 연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