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마음이 모여 에너지 독립을 꿈꾼다. 에너지 자립 마을 ‘성대골’에서 보낸 하루. 

1 골목 곳곳에 설치된 태양관 패널. 크기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2 성대골에서 버려진 화분은 골목의 작은 정원이 된다. 3 성대골 에너지 전환 운동이 이루어지는 대륙서점. 4 대륙서점의 내부. 에너지 사랑방으로서, 관련 서적과 교육, 절약 물건을 판매한다.

이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탄소 중립을 외치는 사이 이미 10년 전부터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다양한 실천과 실험을 해온 곳이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마을 성대골은 국내 최초 에너지 절전소가 설립된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상도3동과 4동에 이르는 이곳에서는 주민에 의해, 주민에 의한 에너지 전환 운동이 뜨겁고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성대골 에너지 전환 운동은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의 김소영 대표에서 시작됐다.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사건은 2011년 3월 12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고의 직간접 피해와 원전 사고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당시 마을 도서관 관장을 하던 그는 에너지 효율 개선, 미니 태양광 설치 등 에너지 운동을 기획한다. “알고 하는 건 개인의 문제지만 몰라서 벌어지는 일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절전소 운동을 시작했죠.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편이 생산보다 값지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는 강의와 토론, 캠페인과 축제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에너지 운동에 접근했다.

“에너지 전환은 환경 파괴, 지구 생태 회복의 근원이에요. 도시 생활자는 무엇을 하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소비 문제에 대한 각성을 시작으로 공부해야 알 수 있어요. 그래야 어떤 부분에서 반감이 생기고 이럴 때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동기 부여가 가능한지 알거든요. 저 역시 회피하고 싶고 비겁해지고 싶고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어요. 불편함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해요.” 문화의 안착이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 전환이 순간의 실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오래 더 멀리 보고 나아가야 하기에 목적과 동기는 오롯이 자기 자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스로 깨닫고 인지해야 익숙한 체계에서 벗어날 용기가 생길 테니까. 

에너지 자립으로 가는 길 

성대골 곳곳에서 태양광 패널을 찾기란 전봇대를 발견하는 것만큼 쉽다. 태양광 패널이 달린 골목을 촬영하는 우리를 하교 중인 학생들은 ‘왜 저걸 찍지?’ 하는 생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집 옥상과 창가, 베란다에 설치한 반짝이는 판은 가정에서 유일하게 에너지 소비가 아닌 생산을 하는 물건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은 에너지 의존형 도시 생활자가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유일한 가전제품이다. “사실 에너지 부분에서는 지금 이대로 사는 게 가장 값싸고 편해요. 하지만 에너지 원자재의 95%를 수입하는 우리 나라는 죽을 각오로 에너지 문제를 다뤄야 해요. ‘탄소 중립’이라는 거대 담론을 놓고 대중교통 타기, 일회용품 줄이기 같은 실천을 말하는 건 오히려 이 주제를 가볍게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단열재, 태양광 충전기, LED 조명 등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높이는 제품을 판매하는 ‘에너지 슈퍼마켙’의 존재 역시 확실한 실천을 위한 노력이다. 현재 에너지 슈퍼마겥과 교육을 담당하는 ‘성대골 에너지 학교’는 비용 문제로 성대골 전환센터로 이전해 한 공간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성대골은 에너지 자립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행동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실행하고 있다. 성대전통시장 상인회와 장바구니 들기 운동을 하고 시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필환경 캠페인을 펼친다. 시장을 밝히는 가로등이 모자처럼 쓰고 있는 것 역시 태양광 패널이다.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성대골 에너지 운동은 4개의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2013년 11월 설립한 마을 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활동가가 모여 에너지와 기후변화 교육을 진행하던 국사봉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태 에너지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생태 에너지 전환 카페를 운영하고 학교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한 전기를 판매하는 ‘햇빛 발전’을 운영한다. 조합원이 된 학생과 교사는 졸업 후에도 끈끈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에는 이익 공유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목표로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이 출범했다. 건물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한 뒤 생산한 전기를 전력 중개 시장에 판매하는 형태의 가상 발전소 사업이다. 발전 수익은 주민과 나누며 전력 생산과 판매를 직접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을 사람 모두 에너지로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은 곧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인테리어와 전기, 설비 업체를 운영하는 기술자와 시장 상인을 모아 만든 조합 ‘우리 집 그린케어’ 역시 이익 창출과 문화의 안착을 목표로 꾸렸다. 기술자는 기술을 가르치고 참여자는 습득한 기술로 집과 건물의 에너지 성능 개선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성대골이 협동조합 체제를 설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에너지는 경제의 주축이 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김소영 대표는 청소년으로만 구성한 다섯 번째 협동조합을 구상 중이다. 그는 처참한 기후위기를 맞은 당사자들이 어른들에게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보란 듯이 노력하며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이라고 귀띔했다. 

성대골, 희망이 될까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공포는 전 세계가 가장 절실히 느끼는 문제다. 네덜란드 환경 단체는 지난 2015년, 세계 최초로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네덜란드 법원은 ‘국가는 위협적인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할 의무가 있기에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의 탄소를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고, 49%의 탄소를 감축할 것’을 선언했다. 이 소송을 이끈 변호사 데니스는 자비로 성대골을 방문하는 열정을 보였다. 영국에서는 기후변화 특사를 두 번이나 파견하며 성대골 성과에 주목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민으로부터 시작한 환경운동’이라는 점에서 성대골에 집중한다. 동아리나 커뮤니티에서 끝나기 쉬운 주민의 활동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외로운 싸움 속에서 거대한 운동을 이끄는 동력으로 김소영 대표는 ‘두려움’을 꼽았다. 두 딸을 둔 엄마로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를 향한 안타까움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우리 역시 마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성대골 에너지 운동의 목표를 묻자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은퇴’라고 답했다. “지구환경을 위해 너나없이 활동해 굳이 성대골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꿈꿔요. 저희는 언제쯤 은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