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 속에 등장한 녹색 채권. 푸른 숲을 연상시키는 이 초록 카드가 수익성을 넘어 패션 산업의 목적성까지 고려한 환경 보호막이 될 수 있을까. 

“이건 또 언제 샀지?”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하던 중에 비좁은 옷장의 한쪽을 차지하는 한 번도 입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지 않을 옷 무덤을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났다. 중고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을, 철 지난 것들을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눌러 담다 이내 충동적 소비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그리고 문득 ‘과연 이것들이 썩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흰 티셔츠 하나를 사려고 해도 몇 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가 넘는 선택지가 있는 옵션 과잉의 시대. 대량생산은 불필요한 구매를 이끌고 

그 사이에는 생각지 못한 자원의 낭비가 있다. 사실 패션 산업은 태생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맞춰 트렌드에 예민한 이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소비를 통해 성장한다. 봄/여름, 가을/겨울, 프리(Pre)와 리조트 그리고 각각의 컬렉션의 틈새에 낀 팝업 라인까지, 소비자의 이목을 끌려고 쉼없이 새로운 것을 쏟아내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고 임무다. 그 때문에 이들의 신제품 출시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유엔 유럽경제위원회의에서는 지구온난화의 큰 원인 중 하나로 섬유 산업을 꼽는다. 패션 산업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실제 섬유의 제조와 소각 과정에서 매년 온실가스 12억 톤이 배출된다. 이는 모든 국제선과 해상 운송의 가스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들려면 물 2700L가 필요한데, 이는 한 사람이 2.5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심지어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의 생산에는 화석연료가 쓰이고, 유해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리함 이면에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의 자연 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거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듯, 많은 패션 기업은 환경 전문가를 비롯해 거시적 경제학자와 함께 사람도 챙기고 자연을 존중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코로나19 이후 환경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증가했다는 점! 매킨지&컴퍼니에서 발행한 보고서에서는 “밀레니엄 세대의 67%와 Z세대의 68%가 지속가능한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환경을 보존하는 착한 패션 기업이 미래 마켓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쉽게 오염되지만, 이를 잘 보존하고 회생하는 것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로벌 패션 기업은 최근 몇 년간 녹색 채권(Green Bond)을 발행하며 친환경적 기업 이미지를 쌓으려고 노력 중이다. 

청량한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을 떠올리게 하는 녹색 채권은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사회적 책임 투자를 위해 발행하는 금융 상품인 ESG 펀드의 한 유형이다. 형태는 기업이 사업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언제까지 갚겠다고 약속한 것을 증권화한 전통적 채권과 같지만 수익금을 재생 가능 에너지, 에너지 효율성, 깨끗한 교통과 수질 관리 같은 프로젝트에 ‘반드시’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도 은행과 증권사에서 성장지수펀드(ETF) 또는 녹색 채권에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를 통해 쉽게 투자할 수 있다. 패션계에 녹색 채권이 등장한 것은 2014년 스텔라 매카트니로부터다. “패션 산업은 연료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공해를 야기한다”며 평소 환경보호에 힘쓰던 그는 일찍이 유기농 면, 재활용 폴리에스터,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비스코티, 버섯으로 만든 비건 가죽 같은 혁신적 소재를 사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윤리적 소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던 이답게 지속가능한 재료 소싱과 공급망 추적 및 운영 중 재생에너지 솔루션 구현을 목표로 채권 5000만 달러(약 663억원)를 발행했다. 패션 회사로서 지속가능한 이니셔티브를 위한 첫 행보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을 뿐 아니라 국제기후채권기구의 인증을 받아 초과 청약까지 달성했다.

이는 패션 투자자의 지속가능한 금융 솔루션에 대한 강한 수요를 공식적으로 입증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많은 패션 기업이 그와의 동행을 선언했다. 나이키는 지속가능한 재료 수급과 제조 공정 개발, 온실가스 배출 감소, 보다 친환경적인 물류 및 공급망을 구축해 10억 달러(약 1조3100억원), 버버리는 탄소 중립화를 위해 3억 파운드(약 4700억원), 샤넬은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50% 줄이고, 2025년까지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100% 에너지를 조달하는 야심 찬 목표를 위해 6억 유로(약 8360억원), 스텔라 매카트니가 속한 케어링 그룹은 매장과 사무실의 에너지 효율성 개선을 포함한 공급망 전반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려고 5억 유로(약 7000억원), H&M은 재생에너지와 효율성 및 친환경 소재 개발을 위해 5억 유로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했다. 특히 리바이스는 2019년 3억 달러(약 39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2020년 채권을 발행한 지 1년 만에 2016년 기준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38% 줄였고, 친환경 면의 사용을 71% 늘리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자자에게 이자율 3.625%의 수익까지 안겼다. 

이처럼 기업의 초록 정책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전한다. 선행이 선행을 이끈다고 할까.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ESG와 관련한 녹색 채권은 일반 회사채보다 더 많은 투자 수요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기업은 투자자에게 지속가능성을 약속하고 경제적 이윤으로 돌려준다. 모두가 만족하는 선순환 벨트가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녹색 채권은 2007년 스웨덴 은행에서 최초 발행한 이후 빠르게 상승세를 타며, 2020년 2695억 달러(약 353조80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가치는 쉼없이 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초록색 꿈을 담은 녹색 채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필요조건이 있다. 신뢰성, 품질, 투명성과 책임을 보장하는 모든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어려움과 고난을 헤쳐가야 더 찬란한 장밋빛 정원이 펼쳐지듯, 아름다운 여정을 위한 과정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 바로 그린워싱(Green Washing). 언뜻 보면 착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 그린워싱은 본래 더러운 곳을 흰색 페인트로 덧칠하거나 결점을 숨긴다는 눈가림의 뜻을 지닌 화이트워싱(White Washing)과 자연을 상징하는 그린(Green)의 합성어다. 친환경적이지는 않지만 마치 그런 척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칭한다. 제품 생산 전 과정에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사용이라는 일부 과정만 부각해 전 제조 공정이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밖에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친환경적이라는 주장, 애매모호한 용어의 사용, 타 제품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과장하는 광고 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사실 시장에서는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을 언급하지 않는,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닌 달콤한 마케팅 기법이 만연했다. 그 때문에 관점에 따른 여러 논쟁의 여지를 두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부주의로 인해 오해를 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샤넬은 자연에서 영감 받은 컬렉션을 위해 2018/2019 가을/겨울 쇼를 위해 파리 그랑팔레를 숲으로 꾸미기로 하고, 이를 위해 파리 근교의 페르슈(Le Perche) 숲에서 나무 수십여 그루를 가져왔다. 쇼가 끝난 후 나무는 트럭에 실려 그대로 버려졌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쇼장 풍경과는 반대로 몇 분간의 쇼를 위해 숲 하나를 통째로 파괴한 ‘패션 업계의 환경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디자이너 하우스보다 신제품 론칭 주기가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H&M과 자라 역시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컨셔스 컬렉션과 조인라이프 컬렉션을 통해 친환경 의류 라인을 선보이지만, 일부 제품에 폴리에스터와 레이온 같은 인공섬유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패션 제품의 생산과 제조 공정의 시작과 끝에는 무수히 많은 공정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보니 그린워싱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롯이 착함만을 이행하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노력과 의식의 변화 그리고 세심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 지속가능한 의류연합, 유럽은행감독청, 우리나라의 환경부 등과 같은 각국의 환경 단체와 정부 부처에서는 종종 논쟁을 야기하는 그린워싱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규제할 제재를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한다. 전문가가 꼽는 그린워싱이 발생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정보 비대칭성인데, 위의 기관들은 기업이 환경에 끼친 영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할 것을 권고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한 목표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더불어 국제기후채권기구 같은 독립적인 전문 기관을 통한 제3자 검증을 요구해 기업이 녹색 채권의 자금을 책임감을 갖고 투명하게 사용하는지 끊임없이 감독한다. “지속가능성은 단지 재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의류 재활용 캠페인을 진행하는 디자이너 에일린 피셔(Eileen Fisher)는 말한다. 녹색 채권은 패션 기업이 투자자와 고객에게 헌신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환경과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옷장 속에 태그도 떼지 않은 옷이 잔뜩이고, 

유행에 따라 쉽게 입고 버리는 시대에 녹색 채권만이 환경 파괴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개인 스스로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가능한 이니셔티브에 대해 숙고하는 생활 속 윤리 의식을 갖춰야 한다. 풍요의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적게 사고, 잘 선택하고, 오래 입어라”라는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을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서재희는 프리랜스 에디터 겸 이화여자대학교 MBA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