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맞서고자 변화하는 패션 산업. 패션위크도 예외는 아니다.

1 (DI)vision 2 Lovechild 3 Stine Goya 4 Alpha 5 Ganni

지난 2023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단연 코페르니였다. 얇은 송(Thong) 하나만 걸친 모델 벨라 하디드가 런웨이에 오르자 숙련된 전문가가 스프레이로 패브릭을 분사해 그의 몸에 딱 맞는 드레스를 완성한 것. 어깨끈을 내리고 스커트 한쪽을 길게 잘라내자 순식간에 슬릭 디테일의 오프숄더 드레스가 완성됐다. 여러 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디자인, 패턴, 봉제 작업을 건너뛰고, 단 1cm의 패브릭 낭비도 없는 스프레이 패브릭이 언뜻 지구환경을 돕는 지속가능한 패션의 한 방법으로 보일 수 있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스프레이를 제작, 사용, 폐기할 때 더 많은 물질과 에너지가 쓰이고, 패브릭을 분사할 때 더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성 소재를 피하겠다고 플라스틱을 활용해 대체재를 만들어 또 다른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경우와 마찬가지. 이렇듯 본질의 변화가 아닌 현상을 바꾸는 데 그치는 브랜드는 절대 참여할 수 없는 패션위크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대표하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패션위크’가 그것이다.

지난 2월, 코펜하겐 패션위크에 참여한 2023 가을/겨울 디비전((Di)vision) 쇼에서는 모두의 이목을 끄는 장면이 연출됐다. 둥근 탁자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숟가락으로 와인잔을 톡톡 친 후 무대로 걸어 나왔는데, 긴 드레스에 걸려 각종 집기, 음식과 함께 하얀 테이블 커버가 끌려 나온 것이다. 아니 순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테이블 커버까지 긴 드레스의 일부였다. 약간의 얼룩으로 버려지는 하얀색 테이블 커버를 패턴으로 활용해 컬렉션을 완성한 것이다. 이 영상은 단번에 조회수 수백만 회를 기록했고,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며 대중에게 코펜하겐 패션위크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코펜하겐 패션위크는 지난 2020년, “행사 진행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 전년도 대비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참여하는 모든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야 한다. 옷의 절반 이상을 기존에 있던 자재와 부품을 재활용해 만들어야 하고, 환경 영향이 적은 신소재를 사용해야 하며, 모피 같은 동물성 소재의 금지는 말할 것도 없다. 쇼장에 꾸민 모든 설치물 역시 지속가능한 프로세스 아래 넥스트 스텝이 분명해야 하고, 런웨이에 서는 모델이나 패션위크를 준비하는 직원을 구성할 때도 다양성을 생각하고 헤아려야 한다.

“패션위크를 포함해 모든 업계 관계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갖고 비즈니스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지구와 인간에게 미치는 기후변화의 파괴적 영향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어요. 우리는 오늘날 끊임없이 기후 재앙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현상 유지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코펜하겐 패션위크 CEO 세실리에 토르스마크가 힘주어 말했다. 사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부터 대단한 탄소 배출을 야기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일으키는 시너지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코펜하겐 패션위크가 가장 고심한 것도 이 부분이다. 결국 초대 손님의 전체 수를 줄이지 않는 대신, 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편집자를 바탕으로 게스트 리스트를 엄선했고, 이웃 나라에서 오는 손님에게는 비행기 대신 기차 여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안했으며, 여행 중 조금이나마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도록 쉬운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신흥 인재를 길러내는 데도 공력을 다하고 있다. 사업 경력 3년 미만의 북유럽 브랜드를 대상으로, 자금 지원, 전문가 자문, 쇼룸 활성화, 업계 네트워크 제공 등 광범위한 홍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 모두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토대로 성장함은 물론이다. 세간에는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등 주요 4개 도시에서 열리는 패션위크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코펜하겐 패션위크와 참가 브랜드 간의 유기적 소통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절대적 지지가 오늘날의 영광을 만들어냈다. 이미 노르웨이 같은 이웃 나라에서 같은 조건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도시도 당장 똑같이 전체가 변화하기는 어려워도, 이를 모델 삼아 속도를 높여볼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베스트로 꼽는 브랜드 7개를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위크를 면밀히 들여다보자.

 

A. ROEGE HOVE

아말리 뢰게 호베는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디자인과 혁신적 실루엣으로 풀어내는 콘셉추얼한 니트웨어 브랜드다. 모든 디자인은 코펜하겐에 있는 브랜드 스튜디오에서 개발하며, 협력 공장에서 공정한 작업 조건하에 세심하게 제작한다. 뜨개질 기술로 직물을 직접 짜서 만들어 폐기물은 제로에 가깝고, 다각도로 인증한 ‘에밀코토니’와 ‘이알필’의 유기농 면만 엄선해 사용한다.

GANNI

가니는그들의옷을입는사람들을위해매일더잘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믿는다. 2020년, 지속가능한 2023년을 목표로 사람과 지구, 제품 등에 걸쳐 상세 목표 44가지를 설정했고, 매년 보고서 형식을 통해 내용을 공유한다. 물량의 92%는 책임 있는 공정으로 생산하며, 이중최소50%이상이재활용또는유기농을활용한다. 또 100% 추적이 가능한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AERON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기반을 둔 에어론은 탄소 발자국을줄이기위해오래입을수있는디자인을 제안한다. 또 지속가능성, 사회적 인식과 100% 지역 장인정신에 기반한 럭셔리를 소개하며, 직원과 파트너가일상업무에서책임감있는선택을할수 있도록 권한을 지속적으로 부여한다.

SKALL STUDIO

스칼 스튜디오는 2014년 줄리 & 마리 스칼 자매가 설립한 브랜드다. 자매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자랐고, 그 영향으로 덴마크 울이나 리넨, 유기농 코튼, 재활용한 캐시미어 등 자연친화적 소재에 익숙하다. 일상에서도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며 동물의 가죽과 털을 사용하지 않음은 물론 이번 컬렉션의 98%를 모노 섬유로 제작했다.

HELMSTEDT

헬름스테드는 2018년, 패션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디자이너 에멜리에 헬름스테드가 설립했다. 그는 높은 품질과 다양한 색채, 편안한 실루엣을 기본으로 예술성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 계획 아래 소싱과 공급망을 개선,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매진하고 있다.

SAKS POTTS

“비즈니스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 영향을 해결하고 방지하겠다”고 선언한 삭스 포츠는 회사를 위한완벽한지속가능성전략을세우고자지난한해 동안 전문가와 협력했다. 그 결과 보다 체계적인 3개년 계획을 개발했는데, 이는 제품과 재료 정책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브랜드는 물론 공급업체까지 까다로운 요구사항을따라운영하는것이그골자다.

THE GARMENT

더 가먼트는 품질과 지속가능한 천연 소스와 재활용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관리하는 브랜드다. 생산 공정 전반에 걸쳐 각 의류가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며, 이에 상응하는 양을 상쇄함으로써 탄소 중립을 실천한다. 그리고 해마다 지구와 생태계,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는 비영리 단체에 연간 수익의 1%를 기부해 지구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DI)VISION

디비전은 2018년 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창조한다’는 이념 아래 설립됐다. DNA의 핵심 자체가 업사이클과 빈티지의 재생산인 셈이다. 빈티지 작업복, 반다나, 플란넬 셔츠 같은 재료를 이용해 생산 방법을 확장하고 탐구해왔으며, 지난 시즌에는 주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버려진 직물로 만든 데님 라인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