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와 90년대는 잠시 잊자. 지금은 풍요와 침체를 모두 껴안았던 80년대 스타일에 주목할 때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디바, 김완선의 그때 그 시절 무대로 나를 이끌었다. 유튜브가 안내하는 랜덤한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던 중 “나 오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라는 노랫말로 잘 알려진 ‘오늘밤’이란 곡에 멈췄는데, 사실은 그 노래보다 무대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즘 인기 아이돌 위주로 만들어지는, 한 곡에 여러 무대를 교차 편집해 만드는 ‘오늘밤’ 편집본이었다. 과거의 콘텐츠를 요즘 방식으로 소비하는 MZ들이 있어 가능한 일. 흥미로웠던 건 김완선, 그리고 그와 무대를 함께 하는 댄스팀이 입은 의상이었다. 그들의 의상에 요즘 유행하는 1980년대 패션 코드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패드로 어깨를 과장한 드레스, 비슷한 실루엣의 파워 슈트, 레이스 디테일의 의상, 네온 컬러 팔레트의 레깅스, 더블 데님 룩은 물론 펑키한 가죽 옷과 프레피 룩에 이르기까지! 김완선이 그 시절 패션과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자체로 1980년대 패션의 바이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국에 김완선이 있다면 외국에는 다이애나 비가 있다. 1980년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한국과 다르게 세계 경제는 침체를 거듭했다. 여성들도 산업 전선에서 가열차게 일해야 했기에 남성들과 어깨를 동등하게 만드는 파워 슈트를 찾았고, 남녀를 구분하지 않은 유니섹스 패션이 인기를 끌었으며, 실용과 트렌드가 접목되었다. 오버사이즈 스웨트 셔츠에 바이커 쇼츠, 스니커즈를 신은 다이애나 비의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몇 년간 Y2K와 90년대가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는 여전하지만 2023년에는 1980년대 룩이 특히 유행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패션은 20년 주기로 반복된다고 하는데, 두 바퀴를 돌았으니 다시 유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하학 패턴, 오버사이즈, 레더 디테일 등 1980년대의 재료들은 다채로운 2023년과 만나 보다 대담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먼저,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어깨에 패드 없이 오버사이즈로 디자인한 재킷이나 드레스가 인기를 끈다. 1980년대라면 배기 스타일 팬츠나 와이드 팬츠를 매치했겠지만, 2023년에는 미니스커트 또는 오버사이즈 재킷 하나만으로 ‘하의 실종’을 연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 로랑, 구찌, 데이비드 코마 등에서 선보인 것처럼 가죽 재킷 역시 낙낙한 품으로. 시어한 맥시스커트에 매치해도, 란제리 룩의 미디스커트와 연출해도, 비슷한 가죽 소재로 셋업 스타일을 만들어도 각각의 멋이 살아난다. 더블 데님 스타일은 블루마린이나 디젤처럼 빈티지 워싱과 스터드, 술 장식 등 디테일을 결합한 것이 인기. 돌체앤가바나와 할펀의 애니멀 프린트, 타미 힐피거의 프레피 룩, JW 앤더슨의 디스코풍 레저 웨어, 프로엔자 스쿨러의 도트 패턴 등도 눈길을 끄는 아이템이다. 여기에 루이 비통이나 사카이, 록산다처럼 개성 있는 실루엣에 위트를 살짝 더한 룩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바. 다시 정리해, 밝은 컬러, 오버사이즈, 레더와 레저, 프린트, 데님 더하기 같은 위트만 기억하자. 스타일링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김완선의 무대를 참고하길. ‘리듬 속의 그 춤을’, ‘기분 좋은 날’ 등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줄 것. 콧노래가 나오고 어깨춤이 들썩이는 건 기분 좋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