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서울로 모이는 까닭은?
K-팝 스타를 필두로 한 문화 콘텐츠로 서울의 위상이 높아지는 요즘, 서울은 몰려드는 이들을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들까?
지난 1월 구찌가 ‘서울영상광고제’에서 서울시장 특별상인 ‘아름다운 서울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상의 이름은 ‘구찌 가든 피렌체 투 서울’로 내용은 이랬다. 구찌 가든을 상징하는 ‘눈’ 심벌의 열기구가 본토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떠올라 광화문, 남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태원의 구찌 가옥, 청담 플래그십 등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곳곳을 유랑하는 것. 이는 지난해 3월 서울 DDP 디자인박물관에서 개최한 전시의 시작을 알린 티저 영상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전시의 정통성을 한국의 서울로 오롯히 옮겨온다는 의미를 담은 동시에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구찌의 한국 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태원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이 좋은 예. 이는 스토어 이름에 도시나 지역의 이름이 아닌 그 나라의 단어가 들어간 첫 번째 사례. 구찌는 파사드나 인테리어는 물론 이름에서도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경복궁에서 컬렉션을 시도했던 것이나, K-팝 스타 엑소 카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출시하는 등 깊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 또 올 초에 아시아를 두루 겨냥한 것이 아닌, 오직 한국만을 위한 설날 캡슐 컬렉션을 출시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다가오는 5월에 다시 서울에서 2024년 크루즈 쇼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이처럼 서울에 뿌리를 올곧게 내리려는 브랜드가 비단 구찌 하나만은 아니다.
아디다스는 지난 1월, 스포츠 퍼포먼스와 오리지널스, Y-3 등 전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스토어를 오픈했다. 국내 매장 중 최대 규모로 전체 면적 2501㎡(약 757평)라는 물리적 숫자도 놀랍지만,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아디다스의 지속가능하면서도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매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홈 오브 스포츠(HOS)’를 콘셉트로 한 아시아퍼시픽 최초의 매장이라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올해 2월에는 펜디가 본사인 팔라초 델타 치빌타 이탈리아나를 연상시키는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 ‘팔라초 펜디 서울’을 청담동에 오픈했다. 브랜드가 플래그십을 연다는 것은 브랜드의 모든 아이덴티티를 한데 모아 펼쳐보이는 것으로 의미가 깊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펜디의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가 서울로 날아오고 송혜교, 이민호를 비롯한 앰배서더와 셀러브리티, 또 1천 명이 넘는 국내외 패션 피플이 한자리에 모였을 정도. 그중에서도 한국 팬들 사이에서 ‘김종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을 만큼 인기가 있었던 킴 존스는 ‘펜디 김종수’라고 적힌 네임 태그를 붙이고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노출돼 더욱 팬심을 높였다. 또 8월에는 스트리트 패션의 절대 강자인 슈프림이 서울 강남 상륙을 확정하기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브랜드가 서울을 무대로 한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브랜드들은 왜 한국을, 서울을 주목할까?
패션에 대한 욕구, 세계를 움직인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의 지난해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백25달러(약 40만4천원)로 전 세계 1위라고 한다. 미국과 중국도 따돌린 눈에 띄는 성과(?)다. 실제로 구찌나 펜디 등 패션 하우스의 홍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국에서의 매출이 워낙 뛰어나 아시아퍼시픽은 물론 글로벌에서도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 한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불가리는 지난해부터 진행한 하이 주얼리 행사가 한국 내 높은 매출에 힘입어 이번 시즌 더 길고 성대하게 치를 수 있었다고 귀띔하기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을 대표하고 글로벌에서 인지도가 있는 K-팝 스타들을 앰배서더로 모시려는(?) 브랜드의 경쟁이 치열하다. “패션위크가 열릴 때마다 K-팝 스타를 데려오라는 본사의 요구가 대단해요, 매번 브랜드와 딱 맞으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아내고 조율하기가 쉽지 않죠. 서울에서 치르는 글로벌 행사도 많아졌고요.” 이 볼멘소리가 어느 한 메종 홍보 담당자의 사정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터.
각자 다른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K-팝 스타로는 블랙핑크가 대표적이다. 제니는 샤넬, 지수는 디올, 로제는 생 로랑, 리사는 불가리, 셀린의 앰배서더로 활약 중이다. 이들은 단지 홍보의 역할에 머무르는 계약 관계 그 이상, 브랜드를 나 자신처럼 존중하며 신의가 있는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샤넬은 지난 12월 파리에서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솔로 공연을 하는 제니를 위해 특별히 그만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러플 장식이 들어간 크레이프 조젯 소재의 화이트 뷔스티에를 입고 까밀리아를 장식한 벨트를 착용한 제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 샤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제니는 “샤넬 앰배서더라고 소개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샤넬의 절대적 지원과 사랑 덕분에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메종과 앰배서더가 찰떡궁합을 이루면 시너지는 가히 폭발적. 그러니 이런 제니의 무대를 보고 자라는 어린 팬들이 샤넬의 잠재 고객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최근에는 BTS와 뉴진스도 많은 패션 하우스와 앰배서더 계약을 체결하고 브랜드의 얼굴로 활약 중이다. 브랜드들은 K-팝 스타와 관련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글로벌 본사와 서울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서울의 팬이 된 이들도 많다. “서울은 정말 대단해요. 트렌드는 맹렬히 앞서가면서도 옛것을 잘 보존한달까요?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편이죠. 올 때마다 달라진 모습도 서울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막스마라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라리사의 말이다. 이 밖에도 서울이 좋아 출장을 자처한다는 사람, 타국에서도 K-팝을 즐겨 듣고 한식을 찾아 먹는다는 사람 등 사사로운 예시들은 차고 넘친다.
이미 알려진 것들 외에 올해는 서울에서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더욱 위상이 높아진 K-팝 스타와 문화 콘텐츠, 최첨단 IT 기술, 서울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서울은 일 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활약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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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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