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검진의 신세계가 열렸다. 허리를 비틀고 유방을 압착하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방 CT’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된 것. 아프지 않으면서 유방 건강까지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건강검진의 날이 밝았다. 그 어렵다는 산부인과 검진을 끝냈음에도 내게는 피하고 싶은 관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경쾌하기만 했고, 나는 심호흡을 한 채 ‘유방촬영실’ 문을 열었다. 그다음 벌어지는 일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온 여성이라면 모두 알 만한 일이다. 차가운 기계와의 조우. 상의를 모두 탈의한 채 판과 판 사이에 유방을 올리고, 자세를 잡은 후 판과 판이 유방을 압착한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은 와중에 어깨나 다른 쪽 유방이 나오지 않도록 애크러배틱 같은 자세를 취한다. 혼자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방사선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방사선사에게 유방은 뭘까? 수제비 반죽처럼 이리저리 만져지고 당겨지는 내 가슴. 그리고 사정없이 가슴을 누르는 판들. “한 번 더 찍을게요. 잘 안 나왔어요.” 이 과정은 ‘유방 사진’이 잘 나올 때까지 반복되고, 결국 눈물과 비명으로 마무리된다. 정말이지, 아파도 너무 아프다. 작아서 아픈지, 크면 덜 아픈지 궁금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방식의 검진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남자도 ‘고환 검진’이라는 게 있어서 이렇게 압착하며 찍나? 유방이 아니라 손이라면 덜 아플까? 왕이라도, 재벌이라도, 배우나 아이돌이라도 이 일을 똑같이 겪어야 하니, 여성이라면 유방 촬영 앞에 모두 평등할지도.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싶을 때, 경제 신문의 한 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가슴 ‘찌부’ 안 하는 유방암 검사, 아시아 최초 국내 도입’(1월 14일, 한국경제TV뉴스). 한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아프지 않은 유방 검사 기기’를 도입했다는 내용. 한 대당 가격이 15억~20억원에 달한다는 국내 유일의 기기. 이것은, 대한민국 여성의 희망이 될지 모른다! 당장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방 사진’의 중요성 

“유방암은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환자 수가 증가하는 유일한 암이에요.” 영상의학과 전문의이자 대한유방영상의학회 부회장인 최선형 퀸스유의원 원장의 말이다. 화제의 그 기기를 도입한 장본인이자 국내 유방암 현주소를 가장 잘 아는 그가 말을 이었다. “유방암이야말로 여성이 가장 경계할 암입니다. 미국에서는 70대 발병률이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주로 발병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죠.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면, 엄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도 큰 상처를 받아요. 유방암으로 인해 모두의 인생이 달라지는 거죠.” 먼저 고통을 유발하는 기존 유방 촬영술인 유방 엑스선 검사(맘모그램)에 대해 물었다. 늘 가슴을 내맡기면서도 이 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가장 큰 이유는 유방 조직에 칼슘이 침착된 ‘유방 미세 석회화’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유방암은 모여 있는 석회(군집성 석회)로, 종괴 형태로, 조직의 비틀림으로, 주로 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석회는 엑스레이 사진으로 잘 보이고, 종괴는 초음파에서 잘 보이죠. 석회로 나타나는 암은 0기, 1기 중에서도 초기일 때가 많고, 좀 더 지나 종괴를 형성하면 초음파에서 잘 보입니다. 즉, 유방 촬영술을 통해 석회를 찾아내면 유방암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초기 암 발견에서는 석회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그 단계면 수술이 아주 간단해요. 하지만 이 상태에서 발견을 못하면 문제가 점점 커져 유방암이 되고, 전절제나 다른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흉부 등 다른 엑스레이 촬영과 달리 유방 촬영만 고통스러운 이유는 뭘까? “유방을 압착해서 누를수록 유방 조직이 겹쳐진 게 펴지고, 방사선량도 줄어요. 압착할수록 정확하게 볼 수 있죠. 게다가 우리나라 여성의 70~80%는 치밀유방이에요. 이 유방은 조직이 치밀해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욱더 압착하다 보니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죠. 저도 여성이니까 그 고통을 잘 알아요. 그래서 새로운 기기를 도입했어요.” 

유방 촬영의 신기술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는 유방 CT를 실제로 보니,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컸다. MRI 기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 기기 위에 엎드려, 기기 상부에 있는 동그란 부분에 가슴을 넣으면 촬영이 되는 방식이다. 압착하는 과정도, 억지로 몸을 꼬며 불편한 자세를 취하는 과정도 없다.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끝이다. 여성을 고통에서 구원할 이 기기의 이름은 ‘Nu:view’, 독일 AB-CT사에서 만들었다. 석회 등이 잘 보여 기존 유방 촬영을 대체할 수 있고, 보형물이 있어 기존 유방 엑스선 촬영이 어려운 환자도 촬영할 수 있다. “기기가 승인된 후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에 가장 먼저 설치됐어요. 환자들 통계를 보니 유방 보형물이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방문했다고 하더군요.” 최선형 원장이 이 기기를 도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기기가 있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즉, 기기가 좋아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 최선형 원장의 진료실 안에는 모니터만 7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가 각기 다른 사진을 띄우는 데 쓰인다. 이 사진을 종합해 유방암을 진단하고 치료 방향을 정한다. 여기에 유방 CT가 더해진 데는, 의사로서의 사명감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공감대도 한몫했다. “저도 석회가 있어서 유방 확대 촬영을 한 적이 있죠. 이 촬영은 부분만 눌러 찍는 거라 일반 엑스선 촬영보다 더 아파요. 저는 늘 새로운 의료 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술은 늘 진보하니까요. 사실 CT 촬영이라는 기술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방사선량이 중요한 변수거든요. 국제적으로 정해진 방사선량 한도가 있기에, 모든 회사가 방사선량을 줄이는 노력을 해요. 방사선량을 줄이는 과정은 환자에게 굉장한 이익이 됩니다. 이 기기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승인받을 정도로 방사선량을 줄였기 때문이에요.” 이 유방 CT를 찍는 과정은 어떨까? “양쪽 유방을 한 번씩 촬영합니다. 촬영 자체는 금세 끝나요. 하지만 3D 형태로 사진이 들어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하루에 최대 8명까지만 촬영할 수 있겠더군요. 기기를 조립할 때도 독일에서 엔지니어팀 3팀이 와서 6주 동안 작업했고, 출장비만 1억원이 들었어요.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수작업하듯 나사를 조립하더군요.” 유방 CT 도입이 알려지면서 비용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퀸스유의원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가격은 100만원대. 현재로선 의료보험뿐 아니라 실비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많은 기기가 그랬듯이 국내에 더 많은 기기가 도입된다면 유방 CT를 보다 저렴하게 촬영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MRI 기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990년대지만, 보험 급여가 된 건 2010년대에 와서예요.” 이 대목에서 부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구성원이 모두 여자이기를 기원했다. 남자라면 이 고통을 모를 테니까, 까짓 사진 하나 찍는데 뭐가 아프냐고 생각할까 봐 두렵다. 사비를 털어 심평원 앞에 플래카드라도 걸어야 할까? 문구는 ‘한국 여성에게 아프지 않은 유방 CT를 보급가로 허하라!’ 정도면 어떨까. 세상이 조금 좋아졌으니, 더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방 건강, 어떻게 지킬까? 

유방 건강에 대해 좀 더 물었다. 성인이 되어 건강검진을 시작한 대부분의 여성은 충격에 빠진다. 자궁에, 가슴에 혹이 있다는 거다. 여성 중 가슴과 자궁에 혹 하나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 나 역시 섬유선종이 발견되어 조직검사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안심하면 안 된다는 조언이다. “섬유선종 중에서도 엽상종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추적 관찰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크기는 보통 6개월 간격으로 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1년에 한 번은 검사를 해야 해요.” 유전자 검사가 보급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기도 한다. 유방암 발병률이 높은 BRCA 유전자가 발견되자, 유방과 난소를 절제한 안젤리나 졸리가 잘 알려진 예다. “예전에는 유전자 검사를 권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말이 있거든요. ‘BRCA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유방암에 안 걸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충분히 살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거죠. 우리나라 통계에 따르면 70세를 기준으로 BRCA 유전자가 있으면 70% 정도가 유방암에 걸려요. 70대 유방암의 BRCA1이 72.1%고, BRCA2는 66.3%. 난소암은 BRCA1이 24.6%, BRCA2가 11.1%를 차지합니다.” 유방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가족력과 정기검진입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특히 주의해야 하고, 모든 여성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유방암을 진단한 환자 중 제일 어린 환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어요. 자기 가슴을 자주 점검해야 해요. 생리가 끝날 무렵 거울을 보면서 또는 누워서 만져보세요. 모양이 이상하지 않은지도 보고, 유두가 말려 들어가거나 속옷에 뭔가 묻어나거나 하면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합니다.” 비용은 비싸지만 고통 없는 신기술에 가슴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5분만 참기로 하고 다시 유방을 ‘찌부’시킬 것인가. 당장 선뜻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 방법만이 아닌, 선택권이 생겼다는 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선 나는 ‘유방 검진’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적금을 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