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옥선 대표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얼루어 코리아>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이옥선이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기름질 옥과 베풀 선을 쓴다. 할아버지께서는 법관이 되라는 의미로 지으셨는데 나는 패션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2020년 파리에서 한 외국인 바이어를 만났는데, 그가 이름의 뜻을 물어보더니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딱 네 이름 같구나’ 하더라. 나는 지속 가능성에 관하여 기름지게 베풀고 싶은 사람이다.

‘지속 가능하다’라는 것이 필수인 시대다. 오픈플랜의 지속 가능성은 타 브랜드와 비교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나는 자유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고 있어 타 브랜드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차별점은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다. 보통 비건 패션이라고 함은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대체 소재를 사용하는데, 조개껍데기나 선인장 등 그 대체 소재라고 알려진 것들 대부분이 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즉, 동물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플라스틱 사용으로 미세플라스틱 오염 등의 또 다른 환경 오염을 야기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프리’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를 본 후라고 들었다.
맞다. 내 마음 속 물이 넘칠랑말랑 찰랑일 때 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마치 그 물속에 묵직한 돌덩이를 던진 듯한 느낌으로, 플라스틱 프리와 지속 가능 패션에 대한 욕구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재활용 플라스틱과 비닐류를 수입해서 재생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작은 비즈를 만드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 내가 사는 곳에 쓰레기 대란이 일었다. 아파트 일대에 분리수거 날이 되면 모두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내놓았는데 몇 주 동안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 것이다. 알고 보니 담당 업체가 쓰레기를 수거해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는데(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마을 같은 곳으로) 중국 정부에서 갑자기 쓰레기 수입을 전면 금지한 것. 업체는 팔 곳이 없으니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았고 쓰레기는 계속 쌓이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분리수거만 잘하면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쓰레기가 다른 곳으로 가서 그 도시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을 패션으로 연결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마을 전체가 쓰레기로 덮여 있다. 6-7살 돼 보이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쓰레기에 뒤덮인 채로 살아간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는 쓰레기 산에 올라 책도 보고 잡지도 보며 세상을 깨우친다. 그것을 보며 깨달았다. ‘저 쓰레기와 내가 만들어낸 재고가 뭐가 다를까. 지속 가능성과 패션이라는 이 모순적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아, 재활용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겠구나. 무엇을 만들던 지구에 남게 되어있구나. 만들어야 한다면, 만드는 사람이 책임 있게 만들어야겠구나.’라고.

그렇다면, 오픈플랜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는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면이나 마 같은 식물 섬유와 브랜드명으로 통용되는 텐셀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면이라고 다 친환경 소재라고 말할 수 없다. 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농부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일을 했는지, 후가공이 어땠는지 다 따져보아야 한다. 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살충제나 제초제, 그리고 물이 많이 필요하다. 면이 플라스틱도 아니고, 동물을 해하지도 않지만, 그것만으로 친환경이라 이야기할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오픈플랜은 3년 동안 농약을 치지 않은 땅에서 수확한 유기농 면을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목화를 기르는 동안에도 일절 약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수확할 때도 고엽제를 사용하지 않는 면을 찾는다. 그마저도 친환경이라고 부르기보다 ‘환경영향이 좋다’라고 표현한다.

소재 수급이 쉽지만은 않겠다
그래서 리넨을 많이 사용한다. 리넨은 면을 수확할 때에 비해 물을 덜 사용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 면에서 환경영향이 적은 소재라 말할 수 있다. 유칼립투스로 만드는 텐셀은 화학섬유지만 친환경 공법을 사용해 지속 가능하다. 텐셀을 섬유화시킬 때 사용하는 화학 용매 99%가 재사용이 가능해 밖으로 빠지는 폐수가 없고 순환이 된다.

채식주의자를 나누는 단계로 치면 비건의 느낌이다.
지속 가능하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양분해서 말할 수는 없다. 친환경이 소재 하나만 두고 분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떤 것도 무결한 것은 없다. 다만 어떤 것이 환경영향이 적고 많은지 혹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비교할 수 있다. 좀 더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최근 지속 가능성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개념 있는 행위로 보는 이들도 많다.
기사나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정도는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선택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지속 가능한 패션은 예쁘지 않다는 편견이 있다.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는지.
오픈플랜의 존재 이유는 패션 브랜드로서 역할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가 많이 담겨 있어도 제품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능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면 예쁜 쓰레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 아름답다는 것은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오픈플랜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리넨의 전형적인 모습보다 젊고 개성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픈플랜의 파트너사와 함께한 ‘우리가 당신의 옷을 만듭니다’와 같은 프로젝트를 보면 단순 캠페인이라기보다 ‘연대’의 느낌이 강하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SNS나 글 등 텍스트로 전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전달하는 입체적인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사명이 있지 않으면 어려웠을 것 같다.
아마 나이를 먹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저 트렌디한 게 제일 중요했다. 빠르고, 어리고, 힙한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보다 내게는 그것을 어떻게 오래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발전하지 않고 똑같은 것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부끄러울 것.

마지막 드롭인 ‘move, love, sing, dance, and live’ 컬렉션의 의미는?
말 그대로다. 결국은 아름다운 삶을 위해 이 모든 과정을 겪는 것이므로, ‘옷을 입고 나가서 사랑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2023년에 오픈플랜에는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버섯균사체로 만든 버섯 가죽으로 시제품을 만든적이 있는데 그걸 의류용으로 다시 만들어 볼 계획이다. 또 아직 자세히 얘기할 수 없지만. 패션이 아닌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오픈플랜의 방향성을 지지하는 단체가 많은 것 같다.
오픈플랜을 하고 가장 큰 기쁨이 그런 것이다. 동물권익단체, 스타트업 등 지구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

사람들이 오픈플랜을 입으며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
소비자들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좋겠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닌 잠시 왔다 가는 여행자. 오픈플랜을 입고 지구 낙원에서 즐겁게 여행하기를!

지속 가능한 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종국의 목표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 플라스틱 프리 98%, 비건 100%를 향해 달려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