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도 열렬한 마음이 일구어낸 사랑스러운 괴짜들의 세계.

그 작가에 그 팬

최근 몇 년간 정세랑, 김초엽, 최은영 등 젊은 여성 작가들을 필두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사이 몸집을 불린 팬덤은 구매한 책에 사인을 받고 북토크에 참여하는 것 이상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한 작가를 깊이 파고드는 독립 매거진 <글리프>가 대표적인 예다. 비평 대신 덕질로 한국 문학을 향유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세워 지금껏 여섯 작가를 주제로 삼았다. 작품 서평부터 작가 인터뷰, 작가 덕후다운 문장력을 지닌 애독자들이 써 내려간 후기까지. 친구에게 이야기를 건네듯 쉽고 재미있게 구성한 콘텐츠로 팬과 독자 사이를 배회 중인 이들을 단숨에 덕후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책을 구매하면 함께 제공하는 ‘덕질 모의고사’ 문제지는 책을 읽기 전후로 활용해볼 것. 점수가 대폭 상승했다면 입덕할 준비는 다 된 것이다.

아이돌 덕질은 진화 중

각양각색 팬덤 플랫폼 공식 팬클럽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쁜 현생을 살아내야 하는 K-팝 팬들에게는 효율적인 덕질을 도와줄 각종 앱이 필수. 관심 있는 아티스트를 선택하면 국내외 스케줄부터 최신 콘텐츠, SNS 데이터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블립’, 그룹 내 모든 멤버의 직캠을 다양한 각도별로 제공하는 ‘아이돌플러스’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세계관 덕질 요즘 아이돌에게는 각 그룹만의 확고한 콘셉트와 이야기가 필수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아바타가 교감하며 성장하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걸그룹 에스파가 대표적이다. 르세라핌의 세계관을 다룬 판타지 웹툰 <크림슨 하트>처럼 아티스트의 핵심 콘셉트를 메인 서사로 활용해 웹툰이나 웹소설의 형태로 풀어내기도 한다. 세계관에 빠져 새로운 앨범 콘셉트를 예측하거나 뮤직비디오를 초 단위로 끊어 해석하는 사이 팬덤은 더욱 공고해진다.
역조공 문화 아이돌 팬덤 내 조공 문화는 쌍방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촬영 시간이 길어질 땐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주고 본인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물하는 아티스트가 늘어난 덕이다. ‘덕질이 밥 먹여준다’의 대표적인 예.

어머, 이건 사야 해!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을 기념한 팝업 스토어 앞은 오픈 전부터 밤샘 대기를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의류, 네임태그, 키링, 피규어 등의 굿즈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꽂힌 요즘 덕후들에게 굿즈는 마음의 크기를 재단할 수 있는 척도나 다름없다. 영화 중심의 굿즈를 만드는 1인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지나 미니 포스터, 엽서 등 활용도 높은 아이템이 주를 이루고, OTT 플랫폼의 굿즈까지 섭렵해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영화를 다루는 책을 굿즈 삼아 모으는 덕후들도 있다. 한 호에 하나의 영화를 다루는 계간지 <프리즘오브>는 판촉 활동이 더딘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주로 다루는 데다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정보를 수집해 깊이 있는 탐색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덕후들의 사랑을 담뿍 받는다.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감각적인 디자인도 한몫할 터. 개봉한 지 한참 지나서야 입소문을 탄 영화 <불한당>을 다룬 특별호의 경우 목표 수익의 1057%를 달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