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비건 레더’를 가려내고 필요충분조건을 인식하는 우리의 자세. 

요즘 비건 레더 아이템 출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비건(Vegan)’이란 단어의 긍정적 의미 덕분에 아무런 의심 없이 ‘비건 레더=좋은 제품’이란 인식이 머릿속에 콕 박혀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한번쯤 눈을 예리하게 뜨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침 “비건 레더에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곳을 만났다. 바로 스페인에 뿌리를 둔 컨템포러리 슈즈 브랜드 캠퍼. 판매했던 신발들을 회수해 재활용하거나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지난해 여름에는 ESG를 검증하는 세계적 권위의 비콥(B-Corp) 인증도 획득했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캠퍼가 비건 레더에 반대하고 계속 가죽을 사용하겠다는 이유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비건 레더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초록빛 미래를 생각한다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죽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다. 대표적으로 PVC 기반 가죽에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호르몬 교란 물질)가 포함되어 있고, 재활용이 불가능해 매립지에서 독성 화학 물질을 방출한다. PVC보다 인체에 안전하다고 알려진 폴리우레탄 기반 가죽 역시 문제가 있다. 폴리우레탄으로 비건 가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에 유해한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사용해 액체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비건’이라는 말 뒤에 숨어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동물을 해하지 않는다는 점만 부각해 마치 윤리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자칫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그린워싱’으로 비칠 수 있다. 

100% 식물성 원료로 비건 레더를 생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발목을 잡는다. 많은 기업에서 소개한 플랜트 베이스 가죽은 지속적으로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강도가 낮다. 질기고 견고한 리얼 가죽처럼 매일 착용해도 문제없도록 제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숙제. 2년 전 에르메스가 캘리포니아 기반 스타트업 마이코웍스(MycoWorks)와 협업해 버섯 가죽 핸드백을 소개한 바 있다. 해당 제품은 버섯 균사체를 이용한 실바니아 소재 원단으로 만든 빅토리아 백. 균사체는 우리가 먹는 버섯의 자실체를 수확하고 유통한 후에도 무한정 기르고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지속가능 소재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품 출시일은 미정. 한편 노바 카에루(Nova Kaeru)란 기업은 아주 크고 단단해서 엘리펀트 이어라 불리는 열대 식물로 가죽을 개발한다. 잎을 무두질하고 염색한 뒤 직물을 뒷면에 대어 보강한 비리프(BeLEAF) 가죽이다. 중금속을 사용하지 않은 태닝 과정, 생산 중 나오는 고형 폐기물과 처리수는 환경에 100% 되돌리는 완전 유기 공정을 거친다. 잎은 브라질 열대우림 지역민과 함께 채집해서 로컬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환경적 피해가 ‘0’에 가깝도록 유도한다. 비리프 가죽은 신발과 가방을 만들기에 충분한 내구성을 자랑하지만 완성된 백이 심미적으로 패셔너블하지 않아 소비자를 사로잡을 만한 디자인 보강이 필요하다.

1 지속 및 재생 가능한 바이오 자원에서 유래한 비동물성 원료로 제작한 데메트라 가죽 소재의 펫 카라는 구찌(Gucci).
2 동물 가죽을 대체하는 얼터 매트 비건 소재의 가죽 재킷은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3 동물 친화적인 100% 바이오 기반 가죽으로 만든 코인 월렛은 판가이아(Pangaia).

브랜드들은 비건 레더 제작 공정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플라스틱의 함유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구찌는 자체적 소재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했고 2년 이상 사내 연구 개발로 이뤄진 데메트라(Dematra) 비건 레더를 출시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구찌 공장에서 생산하는 데메트라는 77% 식물 기반이다. 이 소재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산림의 목재펄프와 비스코스, 재생 원료에서 추출한 바이오 기반의 폴리우레탄 혼합물이다. 데메트라라는 명칭 역시 그리스 신화 속 농업과 수확의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이키와 휴고보스는 파인애플을 따고 남은 잎과 줄기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만든 피나텍스 가죽으로 슈즈 라인을 론칭했다. 지난 7년간 꾸준히 개선한 결과 90% 생분해성 물질, 10% 플라스틱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 하이테크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판가이아는 이탈리아 비건 가죽 제조사 비제아(VEGEA™)에서 개발한 포도 가죽에 주력한다. 와인 제조 산업에서 발생하는 포도 껍질, 씨앗, 줄기의 찌꺼기를 수분산 폴리우레탄(PUD)과 결합해 오가닉 코튼에 코팅해 만드는 것. 수분산 폴리우레탄은 유해한 폴리우레탄과 달리 제조 단계에서 물을 사용함으로써 친환경적인 대체재로 각광받는 합성 고분자다. 하지만 비제아 포도 가죽 역시 생분해되지 않고 재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브랜드는 이를 인정하고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밝히며 석유화학 물질이 전혀 없는 가죽 대체품 사용을 위해 지속적인 개발을 약속했다.

열정적인 동물 보호 운동가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버섯 뿌리로 만든 마일로 가죽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회사 볼트 스레드(Bolt Threads)의 초기 컨소시엄 멤버로 투자와 홍보를 돕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식물성 유기농 성분에만 의존하기보다 완전히 진보한 기술로 시장을 키우려는 조짐도 보인다.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한 글로벌 명품 기업 케어링,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세포를 배양해 대체 가죽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 무려 4천6백만 달러, 한화 약 5백82억6천만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잭팟 투자를 받은 곳은 캘리포니아 비트로랩스(VitroLabs)다. 소의 생체에서 몇 개의 세포를 채취,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 가죽 원단을 생산한다. 가죽 세포 배양 과정에서 적절한 영양소와 특수 생물 반응기를 사용하면 그 소수의 종자 세포가 단 몇 주 만에 동물 가죽으로 성장하고, 무두질 공정으로 바로 이동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줄이고 동물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시험 생산에 들어간 비트로랩스에 따르면 그 종자 세포는 수십억 제곱미터의 가죽을 생산할 수 있으며 완성된 소재는 고급스러운 마감과 내구성을 지닌 단백질을 포함한다.
또 H&M 재단으로부터 패션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를 수상한 페루의 비건 패션 스타트업 레카라(Le Qara)는 바이오 가죽 소재를 연구한다. 세균, 곰팡이, 효모균 같은 미생물들을 조합하고 변형한 것. 자연에서 탄생한 제품인 만큼 폐기물도 퇴비로 재사용한다. 레카라 바이오 가죽 역시 100C°의 온도와 압력을 견디고 2788psi(1평방인치당 파운드 압력)의 인장 강도 테스트를 통과했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기술 창업자를 발굴해 한국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돼 곧 국내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이렇듯 비건 레더란 말이 담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은 새로운 스타트업과 패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선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 나아갈 길이 멀지만 양심의 가책 없이 온전히 가죽 트렌드를 즐길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순환 경제를 완성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계속될 전망. 그때까지 몇몇 브랜드의 과대 광고를 의심하고 그들의 행보를 꼼꼼히 살피고, 동물 복지뿐 아니라 환경까지 지킬 수 있는 아름다운 소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