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봄을 기다리며 온갖 색으로 물든 전시를 찾는다.

페터 바이벨, ‘다원성의 선율’, 1986-1988, 11채널 비디오 설치의 스틸 컷, 디지털화된 비디오, 컬러, 사운드.

MEDIA FANTASY

1960년대부터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을 통한 경험의 확장을 이끌어온 페터 바이벨(Peter Weibel).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은 미디어 아트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다. 전시장을 들어선 관람객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마주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전시의 하이라이트 ‘다원성의 선율’은 작가가 직접 수집한 디지털 사진과 광고 이미지 등을 모아 특수 효과를 입힌 영상 작업물이다. 한국 전시에서는 각 모니터의 사운드 대신 새롭게 편집한 소리를 입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5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택상, ‘Resonance-23-3’, 2023, Water, Acrylic on Canvas.

헬렌 파시지안, ‘Untitled’, 2018, Cast Epoxy with Acrylic.

빛과 색

대기의 요소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미국의 작가 헬렌 파시지안(Helen Pashgian)과 한국의 포스트 단색화 작가로 주목받는 김택상이 만났다. 두 작가는 ‘빛’에서 접점을 찾았다. <Reflections and Refractions>은 회절, 굴절, 산란 등 빛의 속성을 깊이 파고든 두 작가의 회화와 조각을 전시한다. 파시지안은 대표작으로도 꼽히는 ‘구(Spheres)’ 연작을 선보인다. 빛이 왜곡, 굴절되어 다가오는 동시에 물러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한 환영처럼 인식되어 오묘한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김택상의 ‘숨빛’ 연작 또한 물의 반사적 요소와 빛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물과 빛을 머금은 듯한 캔버스 위에 색의 대비로 깊이감을 만들었다. 3월 11일까지, 리만 머핀.

 

권현진, ‘Visual Poetry Pixel Series#170_04’, 2022, Mixed Media on Canvas.

SHAPELESS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이사라가 그린 추상화는 누구의 작품일까? ‘불가시화의 가시화’를 주제로 실재하지 않는 환영을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작가 권현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작가는 강렬한 빛을 본 뒤 눈을 감았을 때 맺히는 잔상이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실체 없는 형태에 주목한다. 이는 캔버스 위에 고농축 잉크와 우레탄을 반복해 붓고 칠하는 과정에서 화려하게 되살아난다. <Visual Poetry>는 그가 2023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픽셀 형태로 표현한 평면 회화 ‘Visual Poetry’ 시리즈를 비롯해 이전 작업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여백이 추가된 신작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3월 28일까지, 프린트베이커리 워커힐 플래그십 스토어.

 

타이럴 윈스턴, ‘Build Me Up Buttercup’, 2022, Used Basketballs, Liquid Plastic, Steel, Epoxy.

버려진 것들의 이야기

버려진 물건을 수집해 재구성하는 작가 타이럴 윈스턴(Tyrrell Winston)이 국내에서 첫 개인전 <STEALING SIGNS>을 연다. 뉴욕 브루클린과 맨해튼 길거리에 뒹굴던 바람 빠진 농구공과 담배꽁초는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전시는 마르셀 뒤샹의 첫 번째 레디메이드 조각 ‘자전거 바퀴’를 오마주한 ‘Trace Elements’(2022)부터 시작한다.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소장했다고 알려진 그 작품의 연작이다. 다양한 미술사적 사례를 현대적으로 변용하려는 움직임은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기조다. 버려진 물건을 재생시키는 작업 방식은 자신의 삶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2월 26일까지. 가나아트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