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단색화의 거장이자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이목을 끌어온 화가 박서보. 어제 개인 SNS에 폐암 3기 판정 소식을 전하며 담담하고 초연하게 작품 활동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아플수록 더 단단해지고 예술혼이 불타는 걸까요? 많은 이들이 슬퍼할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 그는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며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아서 그 시간을 알뜰하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내비쳤습니다.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는 아흔 두 살의 화백의 담담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 한국 전쟁 속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뒤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박서보 화백. 안팎으로 다양한 영향을 받은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단색화의 대부라고 불리죠. 그의 대표 작품들은 단연 묘법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후기 묘법 시기, 막대기나 자를 사용해 한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밀어내며 캔버스 위에 긴 선을 만들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단색화죠.

개인의 작품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2019년에는 후대 양성을 위한 기지 재단을 설립합니다. 비영리 재단법인 기지 재단은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관리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전시를 주관하고 기념관도 운영합니다. 또한 젊은 창작자를 찾아 지원하는 등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하죠.

불과 얼마 전인 2022년에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콜라보 하며 아직도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루이비통의 아이코닉 백 카퓌신이 그의 단색화를 입고 새롭게 태어났죠.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힘들게 제작한 만큼 결과물 역시 마음에 든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또 이런 멋진 콜라보와 전시를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