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북 종(鍾), 둥글 원(圓). 이종원은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기 위해 태어났다. 

블랙 시퀸 재킷은 보디. 골드 펄 드롭 네크리스는 파나쉬 차선영.

블랙 시퀸 재킷은 보디(Bode). 블랙 레더 팬츠는 김서룡(Kimseoryong). 골드 펄 드롭 네크리스는 파나쉬 차선영(Panache Chasunyoung). 골드 링은 지예 신(Jiye Shin). 모자는 이종원 소장품. 아이보리 슬리브리스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레더 팬츠는 김서룡. 실버 드롭 네크리스, 실버 링은 크롬하츠(Chrome Hearts). 레더 프린지 재킷, 웨스턴 부츠,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니트 슬리브리스는 펜디(Fendi). 베이지 레더 쇼츠는 로에베(Loewe). 실버 브레이슬릿과 실버 링은 스쿠도(Sukudo). 블랙 롱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자, 카메라 같은 소품을 직접 준비한 데다 포즈까지 척척. 오늘 촬영에 유독 신난 이유가 있나요?
준비해주신 콘셉트 덕분입니다. 카우보이 이미지를 보고 무척 기뻤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위트 있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연출해볼까 했는데 막상 찍어보니 장난기가 걷히더라고요.

첫 컷을 찍고 사진가와 얘기했어요. 장난기 빼고 진지하게 가자고.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하고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좀 더 어른스럽고 남자답게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전에 찍었던 화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좋아요. 상체를 노출하는 촬영도 처음이에요. 시안을 보고는 바로 탄수화물을 끊고 열심히 준비했어요.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늘 찍히는 입장이겠지만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죠?
제대로 찍은 지 8년 정도 되었어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속성이 매력적이에요.

자신만의 사진론이 있나요?
따로 배운 적이 없어서 나만의 감각, 생각대로 찍어요. 특징을 꼽자면 보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 필름 카메라로는 흑백사진을 찍고 컬러는 디지털카메라를 써요. 흑백사진에는 시간이 묻어나는 정적인 주제를 담죠.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이는 건축이나 사물 등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요. 흑백필름은 아무 때나 찍지 않아요.

컬러와 흑백을 구분하는 이유가 있어요?
처음에는 흑백필름 자체에 매료됐어요. 검은색과 하얀색으로만 표현되니 피사체를 편견 없이 보게 되더라고요. 컬러도 찍어보자 싶었는데 제가 원하는 톤을 얻기 어렵더라고요. 저는 1970~80년대 필름 감도를 원했거든요. 내가 원하는 사진을 만들지 못한다면 집어치우자 싶었죠.

최근에는 어떤 사진을 주로 찍었어요?
여행 사진이 많아요. <금수저> 촬영을 끝내고 모처럼 시간이 나서 세부와 북유럽으로 떠나 꿈같은 휴식을 즐겼어요. 원래는 기회가 생겨야 ‘이제 일을 하러 가야겠구나’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얼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지난 연말에는 신인상을 받았죠. 데뷔 이후 첫 수상이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당신은 이제 진짜 배우입니다’ 하고 인정받은 느낌이었어요. 저를 소개할 때 ‘배우 이종원’이라고 말해왔지만 이제야 좀 더 당당하게 배우라고 할 수 있겠더라고요. 전에는 연기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배우였다면, 이제는 낙인이 찍힌 느낌이랄까.

수상 내내 무척 떨더라고요. 미처 못해서 아쉬웠던 소감은 없었나요?
멋있게 하려고 소감을 준비해갔어요. 혹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동시에 욕심이 났거든요. 어휴, 막상 무대에 오르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신인상, 이종원입니다!’라는 음성이 들린 순간부터 블랙아웃이 됐어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를 향초에 비유한 내용이었어요. 향초는 타는 과정에서 주변을 밝히고 향을 내잖아요. 저 역시 힘들더라도 작열히 불타며 나도 모르는 사이 빛을 내고 향을 퍼뜨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였죠. 그런데 향초는 무슨…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께 제대로 감사 인사도 전하지 못했어요.

상은 곧 누군가의 인정이기도 하죠. 일의 무게에도 변화가 있나요?
내 에너지를 태워야 할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변화예요. 원래 좋아하는 일은 온 마음을 바쳐 열심히 하지만 주어진 일에는 그만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신인상을 받고 나서는 주어진 일에 마음과 열정을 온전히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이제 도망칠 구석이 없어졌겠어요.
저는 도망칠 구석이 있으면 자꾸 빌미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했어요.(웃음) 상을 받고 회사 식구들과 축하하는 자리에서 제 시간을 다 드릴 테니 스케줄을 촘촘히 짜달라고 말했어요. 감사하게도 PT, 필라테스, 차기작을 위해 배워둬야 하는 수업으로 바쁘게 만들어주셨어요. 2023년 하루하루가 아주 힘들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인간 이종원을 어떻게 성장시켰나요?
내면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 계기가 된 작품이 <엑스엑스(XX)>라는 웹드라마예요. 제가 맡은 왕정든이라는 인물은 섬세하고 예민한 동시에 깨발랄하고 오지랖이 넓은 친구였죠. 처음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만 해도 저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는데, 제 안에 왕정든의 모습이 숨어 있었더라고요. 멋지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박에 꽁꽁 숨겨왔을 뿐이었죠. 제 안의 숨겨진 모습과 마주하다 보니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슬리브리스는 릭 오웬스(Rick Owens). 골드 펜던트 네크리스는 복초이(Vokchoi).

블랙 슈트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블랙 보터 햇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재킷은 프라다(Prada). 네크리스는 스쿠도. 실버 브레이슬릿, 실버 링은 크롬하츠. 블랙 진,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진이나 음악 같은 취미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나요?
애정이 깊어졌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요. 배우는 공백기에 가장 불안해한다는 말이 있는데, 덕분에 저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이미 뭘 해야 할지, 뭘 했을 때 행복한지를 아니까 공허함이 들어올 틈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거든요.

취미만으로 이렇게 행복하고 바쁜데 일하기 싫어지면 어떻게 해요?
일은 해야죠.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웃음) 소품이나 LP, 옷 등 소장하고 있는 것도 많고 계속 수집해야 하고요. 다 모시려면 열심히 벌어야 해요.

인간 이종원이 배우 이종원의 동력이 되는 셈이네요?
정확해요! 인간 이종원은 일을 벌이고 배우 이종원은 열심히 수습하죠. 악어와 악어새처럼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종원이는 진짜 열심히 재미있게 사는 친구고 어디로 튈지 몰라요. 당장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어디든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죠.

<금수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이 널리 알려졌어요. 배우 이종원이 너무 커져서 인간 이종원의 입지가 좁아지면 어떻게 하죠?
안 그래도 얼마 전 혼자 강원도에 갔을 때도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기분은 좋았지만 누려온 자유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웠죠. 하지만 곧 변화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왠지 모르지만 확신할 수 있어요. 전 늘 재미있게 살 자신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직업 만족도가 꽤 높아 보여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프리랜스 모델로 활동하던 중 뮤직비디오 출연 제의가 왔어요. 이승환 선배님의 ‘너만 들음 돼’라는 곡의 남자주인공이었어요. 감독님께서 앞머리를 일자로 자르고 교정기를 낀 너드를 원한다고 하셨어요. 당시 제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죠. 지금보다 훨씬 말랐는데, 몸에 딱 붙는 형형색색 폴로셔츠도 입고 우스꽝스럽게 춤도 췄어요. 막상 하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당시 조감독께서 지금의 소속사를 소개해줬고 계약까지 하게 됐네요.

타이밍도, 운도 완벽했네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부모님께서 뭐든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해주셨어요. 대신 스스로 책임지게 하셨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어요.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공부보다 더 값지게 인생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는 위생 관념을 배우고 나이키 매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응대하고 부딪히는 법을 배웠죠. 제가 경험론자가 된 것도 그렇게 인생을 배웠기 때문인 듯해요. 돈 버는 법, 적금, 주택청약 다 혼자 터득했어요. 제가 삼 형제 중 막내인데, 형들이 군대 다녀오고 나서 독립했어요.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입대 전에 모아놓은 돈이랑 복무하며 부은 적금을 합한 5백만원으로 용산에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왜 용산을 골랐어요?
서울의 중심이더라고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 같고 서울 어디든 쉽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보증금 500만원에 35만원짜리 반지하에서 4년 반 정도 살았어요. 그리고 <나 혼자 산다>에 나온 햇살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죠.

지금과 그 시절의 가장 다른 점은 뭐예요?
사고 싶은 옷이 생기면 백 번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섯 번만 생각해도 된다는 점? 치킨 한 마리 시켜 먹기도 어려울 만큼 힘들 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행복의 밀도는 같아요. 그때도 혼자서 알콩달콩 잘 살았어요.

<나 혼자 산다>에서 일어나자마자 LP를 틀고 로브를 입고 시리얼을 먹는 감성 넘치는 순간은 정말 매일이에요?
맹세코 꾸미지 않은 진짜 제 일상입니다. 오늘도 로브 입고 아침에 LP로 음악 듣고 시리얼 먹고 나왔어요. 고요한 호수처럼 살고 싶어요.

잘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예요?
좋은 친구들이 옆에 있을 때요. 자주 만나는 여덟 친구가 있는데 서로가 서로의 영감이 되어줘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들과 옛날이야기 하면서 웃고 떠들 때 묘한 성취감이 느껴져요.

2023년 원하는 목표가 있어요?
지금처럼만 살고 싶어요. 새로운 목표라면 충전된 에너지를 잘 쓰고 싶은 것 정도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