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자락에 <청춘월담>을 만난 이태선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가도 연기나 인생 얘기를 하면 진지해졌다. 

카디건은 마르니(Marni).

셔츠는 아미(Ami). 비니는 마리아노(Magliano).

<청춘월담>으로 만난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이태선은 지금 청춘인가요?
몰론이죠. 청춘은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 정하는 것 같아요. 배우들은 청춘이 더 긴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니까 깨어 있으려고, 열려 있으려고 노력해요. 저도 최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엔 도포를 입었지만, 배우는 또 언제 교복을 입을지 모르죠.
다시 입을 수 있을까요? 그보다 10대 특유의 말투를 리얼하게 해야 진짜로 봐주실 텐데, 그건 사극보다 어려울 것도 같아요.

고등학생 시절 이태선은 어땠어요?
제가 기억하는 저는 애늙은이였어요. 친구들 만나면 인생 얘기를 하거나 나중에 뭐 할 거냐, 삶은 뭐라고 생각하냐 같은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 정말 그랬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냥 더 재미있게 놀 거 같아요.

그때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했는데요?
인생은 부질없다.(웃음)

애늙은이 맞네요.
그렇다고 허무주의는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하거나 커피에 관심을 쏟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분야가 다양한데, 사실 공부가 다는 아니잖아요. 공부에만 짓눌리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하자, 그런 마음이 있었나 봐요.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지금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한 15%?

아직 85%의 이태선을 더 찾아야 해요?
연기를 통해 나머지를 채워나가야겠죠. 연기라는 작업 자체가 저를 알아가게 해요. 제가 연기한 것을 모니터하면 제 습관 같은 것들이 결국은 보이더라고요. 부족하기도 하고, 왜 저렇게 했을까 싶은 것들이요. 제 몸으로 한 연기이기 때문에 저절로 습관이 드러나는 거예요. <청춘월담>의 명진은 제 성격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도 커요. 그럴 때 제가 가진 것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명진의 어떤 부분이 이태선과 같고 다른가요?
저는 강직하고 단단한 걸 추구한다면, 명진이는 더 활기차고 유연해요. 그래서 초반에는 좀 힘든 점이 있었어요. 명진이는 과장해서 연기해야 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거꾸로 제가 평소에 겁도 많고 두려움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앞으로 좀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고 반성도 해요. 결국 연기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나간 셈이에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요즘은 어떤 때인가요?
재미있는 때. 예전에는 제 연기에 대해 스스로 객관화를 못했어요. 지금은 ‘아, 이게 부족하네? 그럼 이거 하면 되겠다’ 같은 식으로 좀 많이 내려놨어요. 어릴 적에는 연기 하나 하면 슈퍼스타 될 것 같았거든요.(웃음) 그런 점에서 성숙해진 거 같아요. 슈퍼스타가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퇴근할 때 오늘 하루 잘 보냈네, 행복하네 느끼는 순간이 더 중요하구나. 그런 날이면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저도 발전할 테고요.

자기 객관화를 못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도 있어요. 객관화라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부족함을 응시하게 되는데, 그건 좀 아프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자기 객관화를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한 방이 크게 올 거라고 봐요. 자기 객관화가 안 되면 편하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죠. 그러다 가고자 하는 방향과 너무 달라져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태선의 나이는 만 스물아홉이에요. 20대의 끝자락에 <청춘월담>을 만나게 된 건 어때요?
작년 가을까지 촬영을 했어요. 처음엔 명진이를 연기할 줄 몰랐어요. 미팅 자리에서 제 텐션이 남달랐나 봐요. 감독님이 다음에 한 번 더 보자고 하시더니, 두 번째 만남에서 명진이 캐릭터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초반에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었지만 하다 보니까 제가 바뀌더라고요. 명진이 역할의 텐션을 올리기 위해 평소에도 노력했어요. 식당에서 명진이 톤으로 “이모, 여기 부르스타 신형이요?”라고 말해보기도 하고요. 사람들에게 민폐가 안 되는 선에서요.

그분의 반응은 어땠어요?
어이없어 하시죠.(웃음) 그게 동료들의 반응이자 시청자들의 반응일 거라고 생각해요.

 

셔츠는 코스(Cos). 재킷은 마리아노. 팬츠는 송지오(Songzio). 타이는 마르니. 슈즈는 캠퍼(Camper).

니트 베스트와 점퍼는 렉토(Recto). 팬츠는 아미. 비니는 가니(Ganni). 슈즈는 Niwwtw.

명진 역을 많이 연구했군요?
명진이는 애교쟁이라기보다는 엉뚱한 사람이죠. 명진이를 연기하면서 제가 정말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명진이를 더 사랑해요. 또래 배우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고요. 이 나이대만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거든요. 더 어리게 보이거나 더 늙어 보일 필요 없이, 명진이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가 잘해왔구나 싶을 거 같아요.

명진이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딱 하나를 꼽자면 순수함이요. 그렇게 엉뚱하고 독특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순수하기 때문이죠. 영의정 아들이면 요즘으로 따지면 재벌일 수도 있는데, 다른 걸 탐하지 않고 자기 좋아하는 것에만 파고들죠. 그런 모습이 너무 멋있고 순수해 보이거든요.

아무도 모르는 민재이의 정체를 유일하게 꿰뚫잖아요. 나름대로 천재 아닌가요?
개성 사람들은 민재이의 오빠인 민윤재가 사건들을 수사하고 해결했다고 알고 있지만, 명진이는 ‘그 사람이 수사할 수가 없는 시기의 일이다, 그렇다면 민재이가 해결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타당성을 찾아갔죠. 민재이에 대한 감정에는 존경심이 배어 있는 거 같아요. 사모한다는 것 자체에 여러 색이 있잖아요. 연인과의 사랑도 있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있고요. 저는 민재이를 단지 여자로서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사랑이라면 결국 장가람(표예진 분)과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떻게 되려나요?(웃음)

검시관인 명진이는 요즘 말로 조선시대 ‘너드남’이라고 할 수 있죠.
오, 맞아요! 명진이는 공대생이었을 것 같아요.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을까요? 검시관이니까 의학을 공부할 수도 있지만, 왠지 화학을 전공했을 것 같아요. 사극 촬영은 날씨 영향도 많이 받고 촬영장까지 거리도 멀어서 힘들지만, 이런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사극 현장의 고됨은 많이 알려져 있어요. 반대로 좋은 점은 뭔가요?
일단 ‘헤메스’를 신경 많이 안 써도 되고요.(웃음) 특히 이번 의상팀이 캐릭터별로 색을 정말 잘 선별해줬어요. 명진이 옷은 알록달록해요. 오늘 입은 옷 같은 느낌이죠. 아까 입은 카디건에 있는 색이 명진이 옷에 다 있어요. 그리고 한복은 여려 벌을 겹쳐 입다 보니 한 벌에 노란색, 파란색이 섞여 있어서 정말 예뻐요. 그리고 사극은 촬영 장소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하루에 한 번밖에 이동하지 못 하고, 주차 문제도 없어요.

하하. 현실적이네요. 요즘은 영상미가 중요하다 보니 로케이션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부안 채석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절벽이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서 정말 멋져요. 부안이 백합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 번도 못 먹었어요. 매니저가 해산물을 못 먹어요.

할 일이 없을 때는 뭐 해요?
멍때리고 있어요. 그런데 전 매 순간 생각하고 있어요. 분명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기억은 안 나요. 근데 분명히 했어요, 생각.

코멘터리를 보면 또래 배우가 많아서 촬영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더라고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어요?
막내를 맡고 있어요. 막내라고 주도적으로 할 일은 없고 맨날 밥 사달라고 해요. 서로 많이 친해졌어요. 첫 방송도 다 같이 봤죠. 원래 같이 보기로 했는데, 제작사가 자리를 만들어줘서 선배님들도 오시고 커졌죠.

누가 제일 밥을 잘 사줘요?
가람 누나가 제일 자주 사줘요. 가람 누나랑 붙는 장면도 많고, 같이 끝나는 때가 많았어요. 누나가 ‘밥 먹고 올라가지 않을래?’ 하고는 자연스럽게 계산하더라고요. 마다하지 않았죠.(웃음)

촬영할 때 보니 웃으니까 진짜 착해 보이더라고요.
맞아요. 근데 저는 그게 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겉과 속이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속도 진짜 착해요?
저는 인간적인 것 같아요.(웃음) 순간순간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20부작이 이제 시작됐어요.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나요?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찍었고,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을 믿고요. 마음 편히, 특히 명진이 부분은 팝콘 드시면서 보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