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사회운동가라는 역할을 넘나들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2022년 12월 29일,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50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펑크 패션의 대모로 불린 웨스트우드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스타일만큼이나 급진적인 사회 활동이다. 그가 몸담고 있던 패션 하우스는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를 추모하며 생전에 목소리를 드높였던 메시지를 이어가기 위한 비영리법인 ‘더 비비안 파운데이션(The Vivienne Foundation)’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비정부기구(NGO)와 협업해 기후변화와 전쟁을 멈추고 인권보호와 자본주의 반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얼루어>는 패션을 무기로 20세기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이 문제적 인물의 궤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펑크라는 출발선과 기득권에 던지는 물음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야기는 1970년대 말콤 맥라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를 탄생시킨 말콤 맥라렌이 여자친구이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에게 밴드의 스타일링을 맡긴 것. 그는 초창기 뉴욕의 펑크 뮤지션들을 시작으로 캐나다의 미술사학자 게리 네스(Gary Ness), 역사 속의 코스튬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본디지나 화려하게 염색한 모히칸 헤어 같은 현대 예술의 요소를 더해 아이러니하면서도 위협적인 비주얼의 펑크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런 웨스트우드의 스타일은 기득권의 부패와 패악을 폭로하며 무정부주의자이기를 자처하는 펑크의 메시지를 시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득권에 저항해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 순간으로, 1992년 그가 대영제국훈장(OBE)을 받던 날을 꼽는 데 이견이 없을 테다. 우아한 스커트 슈트 차림의 웨스트우드가 빙그르르 돌자,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이 모두의 눈에 띈 것. 의도적이었는지 단순한 실수였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에 한몫을 했다. 영국 패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2년 대영제국훈장을, 2006년에는 데임(Dame) 칭호를 받았건만, 권위에 저항하는 태도에는 아무 변함이 없었다. 특히 불평등을 영구화하는 부패한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며 더 큰 책임과 투명성을 주장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패러디한 <태틀러> 매거진 커버에 등장한 이유이기도 했고(담당 에디터의 해고로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그는 자아 검열에도 냉혹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패션 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를 문제 삼은 것.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였던 그는 공급망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공정한 노동 관행과 업계 근로자들을 위한 더 나은 근로 조건을 부르짖었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인종과 계층,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평등과 정의를 옹호하는 일에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언론 검열 반대는 자유를 지지해온 웨스트우드에게 어쩌면 사명이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줄리언 어산지다. 미국 군사외교 기밀문서를 입수하는 일을 공모했다는 혐의로 영국 벨마시 감옥에 수감되어, 미국에 송환될 경우 175년을 구형받을 것으로 알려진 저널리스트이자 위키리스크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 어산지가 국제적 망명자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지지해온 웨스트우드는 2013년엔 자신의 패션쇼 피날레에 ‘내가 줄리언 어산지다’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2020년에는 미국 송환 위기에 처한 그를 도와야 한다며 초대형 새장 안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지구 기후 파업 그리고 프래킹 시위 웨스트우드는 본업인 패션 외에도 환경보호라는 주제 아래 기후변화의 가속화, 공기와 물, 토양의 오염, 숲과 야생 서식지 파괴를 포함한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적극 사용했다. 2015년 9월 20일 열린 ‘지구 기후 파업’은 그 대표적 예시. 이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에 맞춰 조직되었으며, 세계 지도자들에게 더 강력한 기후변화 위기 해결책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대규모 운동이었다. 웨스트우드는 이날 전 세계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파업에 참여한 많은 유명 인사들 중 한 명. 마침 런던 패션위크가 열리던 시기였기에 그는 ‘기후 혁명’, ‘프래킹은 범죄다’ 같은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런웨이 피날레에 등장했으며, 쇼에 참가한 모델들과 함께 런던 거리를 행진했다. 웨스트우드의 시위는 다음 날 탱크를 동원하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지하에서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유압 파쇄 작업 ‘프래킹’을 반대하는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 그는 물, 화학물질, 모래를 고압으로 암석에 주입하는 프래킹 공정이 물을 오염시키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유해하다고 주장하며, 당시 영국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 자택 앞까지 탱크를 몰고 가는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었다. 그 덕일까? 영국 환경청은 프래킹에 관련된 위험한 작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역시 환경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는 환경청의 엄격한 평가 대상이라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와의 연대도 끈끈했다. 이곳의 정기 후원자이기도 한 웨스트우드는 배우 에마 톰슨과 함께 2014년 ‘기후 혁명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직접 북극을 찾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린피스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북극의 눈부신 아름다움, 그리고 해양 시추로 인한 환경 파괴를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멸종에 가까워지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 온도가 2℃ 올라간 이후부터 4℃, 6℃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거다.” 이들은 다음 해 열린 파리 기후변화 정상회담과 같은 시기, 런던 시가 행진에 참여해 세계 지도자들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배우 에마 톰슨, 샬럿 처치, 그리고 밴드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함께한 자리였다. 이들은 AFP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지난해 북극 환경의 악화를 직접 목격한 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은 파리에서 기후변화 정상회담이 열리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정상 국가의 지도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화석연료 배출량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국제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제도를 만들기를 바란다. 그들이 미래를 위한 보다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를 바라며, 우리가 여기에 모였다.”

지속가능한 패션 인터뷰, 마니페스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 파괴에 반대해온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가 무엇을 계기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증언한다. 처음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을 선보이던 1970년대부터 가지고 있던 재료를 재활용하는 DIY 방식으로 옷을 만들지 않았느냐고.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웨스트우드는 지속가능성 그 자체였던 것이다. 웨스트우드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적게 구입할 것, 신중히 선택할 것, 잘 관리할 것(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을 강조하곤 했다. 실제로 그의 2022 가을/겨울 컬렉션만 해도 90%가 재활용과 친환경, 업사이클 소재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사회운동가이자 패션 디자이너였던 웨스트우드의 역량이 가장 빛난 순간은 따로 있다. 원주민들이 공동체의 이주와 착취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데에 방점을 둔 2011년의 ‘윤리적 패션 – 아프리카’ 캠페인이 바로 그것. 이는 케냐에 거주하는 

7천 명 이상의 소외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로, 이들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텐트와 거리 표지판 등을 재활용해 가방을 제작하면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에서 판매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모두 지속가능한 패션 사업인 이 프로젝트는 국제무역센터(ITC)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가 파트너십을 맺은 결과물. 오늘날 모든 브랜드가 목 놓아 부르짖는 ‘윤리적 패션 사업’이 움트던 새벽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있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