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터 남해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입은 지역에 뿌리내려 줄기차게 뻗어가는 로컬 브랜드 4곳을 찾았다.

1 한옥을 테마로 지은 곡물집 외관. 2 다양한 곡물 큐레이팅으로 공간을 채운 그로서리 카페의 내부. 3 팥, 아주까리밤콩 등 지역 농부가 생산한 곡물을 다양하게 판매한다. 4 곡물집이 디자인한 내열 유리컵.

곡물집 | 공주

토종 곡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브랜드. 그로서리 카페도 함께 운영한다. 지역 농부가 기른 곡물과 이를 응용한 음식, 음료를 만들어 소개한다. 곡물을 중심으로 식(食) 경험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곡물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한국 농부가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을 이어가는 데 보탬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곡물로 미식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는 사업에서 답을 찾았다.

공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주에는 고도개발제한구역이 많아 계획적인 개발을 하기 힘들다. 덕분에 지역 특유의 느슨한 정취가 확연히 느껴진다. 다른 지역에 비해 외부인을 환대하는 정서도 짙게 남아 있다. 지방 소도시만의 경쟁력을 활용하고 싶었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어떤 일을 실천하고 있나?
충남을 비롯한 전국 지역을 대상으로 토종 곡물을 공급받고 있다. 토종 작물을 재배하려는 농부가 공주로 모여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밑작업의 일환이다. 로컬 기반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지역과 더불어 크는 것이 목표라면 지역 안에서 다양한 협업부터 꾸준히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눈에 띄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축적하는 시간을 다지는 거다. 

곡물집의 올해 목표가 있다면?
2021년은 곡물집의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명확한 브랜딩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작년에는 파트너와 함께한 협업 프로젝트의 비중이 높았고. 이제는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로 터득한 우리만의 일하는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때인 것 같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출시하고 유통망 확충에 집중할 계획이다.

 

1 소수 인원이 방문해 조용한 담소를 나누기 좋은 한남점 3층. 2 한남점의 메인 공간. 탭에서 신선한 생맥주를 뽑아 제공한다. 3 오는 3월 오픈을 앞둔 성수점 내부. 4 서울브루어리의 첫 와일드 에일. 청포도 향이 특징이다.

서울브루어리 | 서울

서울 합정동에서 시작한 크래프트 양조장 겸 펍 레스토랑. 맥주의 전통 원재료인 몰트, 홉, 효모에 갖가지 부재료를 더해 흥미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서울브루어리의 5주년을 맞는 올 3월에는 성수동에 양조장과 매장을 확장해 오픈할 계획이다. 

서울브루어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8년 3월 17일, 서울브루어리 합정 양조장에서 첫 맥주를 출시했다. 같은 해 7월 오픈한 한남점은 양질의 음식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기획했다. 5년간 두 매장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로 맥주 70여 종을 선보여왔다. 오는 3월 17일, 서울브루어리의 첫 맥주가 출시된 지 딱 5년이 되는 날 성수 매장을 새롭게 오픈한다. 

성수점만의 특색은 무엇인가?
공간 디자인에서 소재의 물성이 잘 드러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수점은 콘크리트, 스테인리스, 나무, 유리가 고루 사용되었음에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이 점이 모던하면서도 캐주얼한 성수의 지역색과도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은 전국 각지를 넘어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도시가 됐다. 브랜드 이름에 ‘서울’을 붙인 건 이 도시의 다양성을 맥주에도 그대로 녹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뚜렷한 하나의 색으로 규정할 수 없고, 쉽게 예측되지 않는 콘텐츠를 전개하기에 제격인 도시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어떤 일을 실천하고 있나?
국내 로컬 양조장과 협업해 다양한 맥주를 만들었다. 합정, 한남 매장 근처의 식음료 브랜드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부지런히 기획해왔고. 팬데믹 이전에는 러닝, 요가를 함께하는 로컬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과의 건강한 유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로컬 기반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제품의 질이 곧 브랜드의 기초 체력이다. 이토록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매력적인 마케팅에만 치중한 브랜드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상품의 생명력은 짧아진다. 서울브루어리는 해외 크래프트 맥주 회사 및 와이너리와 행사를 주최하고, 와일드 맥주를 생산하는 등 우리의 메인 아이템인 맥주의 다양한 풍미를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브루어리의 올해 목표가 있다면?
3월 성수점 무사 오픈! 기존 매장 2곳을 합친 것보다 규모는 5배, 맥주 생산량은 15~20배 증가한다. 매달 새로운 맥주 3~4종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이 가까운 목표다.

 

1 호텔 객실 내부. 짙은 우드 톤 가구가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2 객실에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도구와 LP 등이 구비돼 있다. 3 널찍한 욕실 입구. 4 당일 새벽에 구운 스콘과 수제 그래놀라, 제철 과일로 구성된 조식.

굿올데이즈 | 부산

부산 중앙동의 호텔로 1, 2층은 카페로 운영 중이다. 이곳에 머문 시간이 오랜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Good Old Days’라고 이름 붙였다. 각종 문구류, 널찍한 책상 등. 객실과 카페 곳곳에 비치된 물건들로 부산을 기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굿올데이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일본에 머물 때 한 건물에 숙박업소와 카페가 공존하는 형태의 호스텔을 자주 이용했다. 1층 카페에 자리한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끝냈을 때, 캐리어를 끌고 온 여행자와 카페에 들른 지역 주민이 뒤섞인 공간에서 생경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묘한 경험을 한국에서도 구현하고 싶었다. 카페는 지역 상품을 소개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로 활용되기도 한다. 카페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호텔에 관심을 갖는 고객도 많다.

부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 안에서도 중앙동의 매력을 말하고 싶다. 이곳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가장 번화했던 동네다.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건물과 거리 풍경은 옛 부산의 정취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바다 말고 부산의 진짜 레트로 문화를 보존하는 동네가 관광객에게 새로운 소구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산 문제도 크다. 우리가 갖고 있던 자원으로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의 호텔을 구현하기는 불가능했을 거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어떤 일을 실천하고 있나?
우리의 성장만 바란다면 분명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굿올데이즈가 자리한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 옛 건축 형식이 잔존하는 건물, 걷기 좋은 은행나무길 등 이 동네의 매력을 어필하려 힘썼다. 1층 리셉션 옆에 비치한 노포 소개 카드는 그렇게 완성됐다. 커피 원두, 우롱차, 디퓨저, 배스 밤 등 객실 내에도 부산, 특히 중앙동에서 운영 중인 업체와 협업한 콘텐츠로 가득 채웠다.

로컬 기반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지역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 나는 굿올데이즈의 문을 열기 전 중앙동을 10년 가까이 터전으로 삼았다. 그 덕에 외부 사람이 볼 수 없는 지점을 발견하고 비즈니스에 접목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이 브랜드만 잘 키우려고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지역 내 다른 로컬 브랜드와 동반 성장하려는 마음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지름길이다.

굿올데이즈의 올해 목표가 있다면?
지역의 앵커 기관이 되었으면 한다. 찬란했던 중앙동에 옛 호시절의 영광이 다시 도래할 수 있도록.

 

1 차와 과일 양갱 등 다양한 로컬 푸드를 판매하는 상점 내부. 2 앵강마켓의 외관. 3 남해산 유자와 페퍼민트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달스민 티. 4 쉼과 여유가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바닥과 가구에 나무를 활용했다.

앵강마켓 | 남해

우리 땅에서 정직하게 키운 로컬 푸드를 큐레이팅하는 동시에 국내외 작가의 다양한 공예품을 소개하는 찻집. 가파른 절벽과 청명한 남해 해변으로 둘러싸인 앵강만에 자리 잡았다.

앵강마켓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남해를 찾던 우리 가족은 7년 전, 오랜 도시 생활을 접고 귀촌을 결심했다. 이곳엔 죽방멸치와 토종 유자, 마늘 등 전통 어업 방식으로 잡은 품질 좋은 식재료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이를 제대로 포장해 판매, 유통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2년간 남해에서 얻을 수 있는 건강한 식재료로 다양한 로컬 제품을 개발해 2018년 겨울 앵강마켓을 오픈했다.

남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심신이 지쳐 있을 무렵 진짜 휴식에 갈증을 느껴온 곳인 만큼 ‘쉼’을 키워드로 한 비즈니스를 떠올렸다. 남해는 ‘시골 마을’ 하면 떠오르는 고즈넉함을 완벽히 구현한 곳이다. 각종 블렌딩 차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찻집을 세우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어떤 일을 실천하고 있나?
남해는 인근의 하동, 보성과 기후 조건이 비슷한데도 차 산업 쪽으로는 발전이 더디다. 지역 농수산물을 수확하는 1차 산업 종사자는 포장부터 판매, 유통, 홍보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지역 농가는 앵강마켓을 통해 산물을 알릴 수 있고, 우리는 품질 좋은 재료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유통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이다.

로컬 기반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지역색을 정교히 살리는 것이 곧 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이다. 지금도 남해와 관련한 거라면 아주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 지역에 대해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앵강마켓의 올해 목표가 있다면?
현재 2650m²(약 800평) 규모의 차 재배지를 조성하는 중이다. 남해의 1호 다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앵강마켓의 차가 마늘과 유자, 시금치를 잇는 또 하나의 지역 특산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