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여행을 해보고 싶다면, 이른 아침 그곳을 뛰어보기를. 익숙한 곳도 전혀 다른 곳이 될 테니까. 낯선 곳에서의 미라클 모닝은 그야말로 짜릿하다. 

가끔은 밤도 새벽도 아닌 시간에 깨어 있다. 도시의 아침이 찾아오려는 시간. 사람들이 하루가 다가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 있는 시간. 그 무렵 창밖을 바라볼 때 나는 대부분 낯선 도시였던 것도 같다. 시차가 도무지 좁혀 들지 않거나 제일 먼저 뜨는 비행기를 타야 해 어쩔 수 없이 잠자기를 미룰 때. 그런 시간이 쌓이며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움직이는 이들 중 하나가 청소부, 그리고 러너라는 것을. 아무도 없는 도시를 뛰는 마음은 어떨까? 안락한 호텔 객실에서 바라볼 때마다 궁금해졌다. 발리 출장 일정에 포함된 선라이즈 요가를 할 때도 그랬다. 어스름한 새벽에 해변가를 지나는 건 오직 러너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아사나 중인 나한테 활기찬 인사까지 건네며 뛰는 러너들. 가만 보면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힘들게 뛰는데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니, 달리기란 정말 저렇게까지 즐거운 일인가? 그걸 알아보려면 나도 뛰어볼 수밖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이다. 오전 6시까지 원고를 쓸 수는 있어도, 오전 6시에 일어날 수는 없는 사람.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느 여행자와 달리 조식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데, 화려한 조식보다 프레떼 침구 속에서 2시간을 더 보내는 게 훨씬 값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교토 여행 중 아침 7시에 운동화 끈을 동여맨 것은 적어도 내 인생에선 사건이라고 할 만했다. 교토에 간 김에 교토 호텔 기사를 쓰려던 나는 리츠칼튼 교토 홈페이지에서 ‘런 교토(Run Kyoto)’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교토의 자연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토의 여러 랜드마크를 지나는 몇 가지 달리기 경로를 제안합니다. 이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거리나 속도가 아니라 여러분을 초대하는 여정입니다. 약 1시간 소요, 무료.’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명이었다. 전문가에게 아침 러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호텔에 취재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문의했고, 그렇게 리츠칼튼 교토 로비에서 호텔의 액티비티팀 직원인 달리기 메이트 A를 만나게 된 것이다. A가 물었다. “1주일에 얼마나 자주 뛰세요?” 솔직하게 답했다. “사실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박일 때밖에 안 뛰어요.” 

달리기에 문외한인 나지만, 교토가 뛰기에 완벽한 도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도시가 평평한 데다 도시 중심에 30km에 달하는 가모가와강이 있다. 강과 호수는 차가 다니지 않기에 러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폿. 아침 강변에는 사람 대신 아침 특유의 신선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 상쾌한 공기야말로 아침을 맞은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몰랐다. 뛰면서 잘생긴 가로수와 돌로 만든 다리를 지났다. 호텔이 추천하는 달리기 코스는 짧게는 3km, 길게는 12km에 달했다. “교토에는 멋진 달리기 코스가 많아요. 하지만 가모가와 강변은 교토를 처음 찾는 사람도 누구나 뛸 수 있을 거예요. 강변만 따라가도 멋진 코스가 되니까요.” 몇 번이고 오간 강변이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교토와 더욱 가까워지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A가 이끄는 대로 뛰면서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시모가와까지 갔다. 아기자기한 집들을 지나 어느새 진짜 흙으로 된 길과 숲이 펼쳐졌다. 조금 쉬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더 짧게 느껴졌다. 이날 나는 5km를 달렸고, 녹초가 되어 오후에 낮잠까지 자야 했지만, 뿌듯함이 컸다. 아침 달리기로 인해 여행이 달라진다면 세 가지 때문이다. 만난 시간이 다르고, 뛰면서 보는 시야가 다르고, 뛰면서 향하는 곳이 달랐다. 하나를 더한다면 달린 후에 먹는 건 무엇이든 맛있다. 그게 물일지라도! 

다음 여행지인 도쿄에서도 달려보기로 했다. 적당한 달리기 코스를 찾는 것도 꽤 신나는 일이었다. 새로운 탐구 생활이 펼쳐졌다. ‘미식’ ‘전시’ ‘편집숍’ ‘핫플’로 점철된 내 여행 관심사에 ‘달리기’가 추가되자 여행이 더 ‘알록달록’해지는 것 같았다. 도쿄를 여행할 때는 긴자에 머무르는 편이었는데, 긴자 주변에는 적당한 달리기 루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달리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도 뭣해서 달리기도 할 겸 니혼바시에도 하루 머무르기로 했다. 주변에 스미다강과 기요스미 공원이 있으니까 뛰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늦가을 도쿄의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화창했다. 약간의 현금과 신용카드, 휴대폰, 물 한 병을 들고 또 뛰어나갔다. 구글맵만 보고 코스를 정한 나 자신이 기특할 정도로 완벽한 코스였다. 다리에서 보는 도쿄의 새로운 풍경. 주택가 옆 소담스럽게 자리 잡은 기요스미 공원은 떨어진 은행잎으로 온통 노란색이었다. 달리면서 만난 수많은 반려견은 귀여웠고, 곳곳에서 커피 향이 났다. 내친김에 도쿄도 현대미술관을 찍고 돌아오는 길, 뛰면서 눈여겨본 카페 ‘싱글 오’에서 콜드브루 커피를 마셨다.

연말에는 홍콩에 있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은 러너에게 최악의 도시일 수 있지만, 침사추이 산책로만은 완벽한 러닝 코스다. 산책로는 스타페리 부두에서 홍함까지 이어진다. 평일이라 그런가, 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뛰다 보니 홍콩의 변화도 눈에 들어온다. 랜드마크였던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리젠트 호텔로 바뀌었고, 쇼핑몰 K11 뮤제아가 청소기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달리기를 마친 뒤 옥토퍼스 카드로 시원한 차를 사서 홍콩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여행과 일상이 다시 돌아온 게 실감이 났다.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쓸 때 모두가 떠올리는 두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 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쓸 정도의 달리기 중독자인 하루키는 아마 나와는 종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몇 번 달린 게 고작인 나 역시 조지 쉬언의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기는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내면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는 내 안의 아래 위, 안과 밖, 내 불안한 존재와 변화 과정을 받아들였다.” 내면의 풍경이 아니더라도 내가 보는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러너가 되기로 결심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건강에 좋다는 것으로는 도무지 아침에 일어나지지도, 두 다리가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여행지에서만큼은 하루쯤은 일찍 일어나 뛰어보기로 했다. 오로지 내 여행을 더욱 즐겁게,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뛰면서 여행하는 즐거움만큼은 게으름뱅이에게도 너무 매력적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