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없는 향수라고? 기존의 향수 제조법에 반기를 든 워터 베이스의 향수를 소개한다. 

베나즈(Behnaz)의 ‘퓨어 로즈’는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 탄생했다. 오직 장미 꽃잎과 물! 그래서인지 제품을 포장한 상자 뒷면의 전 성분을 살펴보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단출한 성분표에는 베나즈 사라푸어의 확고한 신념이 깃들어 있다. 이란계 미국 패션 디자이너이자 향수를 디자인한 사라푸어는 ‘생화의 향기를 직접 맡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향수를 만들었다고. 

스위스 향수 업체 지보단(Givaudan)의 조향사 스테판 닐슨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향수 대부분은 물, 프래그런스 오일, 그리고 알코올을 혼합해 만듭니다”라고 설명한다. 보통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을 첨가해 기름의 가용성을 높인 것. 게다가 알코올은 향수를 처음 분사했을 때 맡을 수 있는 톱 노트를 형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향수를 분사한 뒤 알코올이 서서히 증발하면서 강렬한 톱 노트가 드러나죠.”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잔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하트 노트(또는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가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사라푸어 같은 향수 순수주의자, 즉 자연스러운 향을 만들려는 이들에게는 알코올 사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는 대신 식물에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하는 수증기 증류법을 택했다. 전통 향수에 존재하는 톱-미들-베이스 노트 구조를 과감히 깨고, 가볍고 상쾌한 향을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도 워터 베이스 향수를 소개한다. ‘오 트리쁠 페루 헬리오트로프’는 바이올렛과 우디 향조의 단일 노트로 구성되어 향수를 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유의 향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특징. 원료 그대로의 순수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스킨케어 포뮬러를 적용해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주기까지! 평소 피부 자극으로 알코올 베이스 향수를 사용하기 힘든 이들도 편하게 쓸 수 있다. 

살냄새 향수의 원조라 불리는 에이딕트에서도 에탄올을 첨가하지 않은 향수 라인을 전개한다. 에이딕트 이보람 마케팅 파트장은 “특유의 알코올 향이 나지 않아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이에요. 솔리드 향수와 사용하면 지속력을 높이거나 풍부한 향을 경험할 수 있어요. 머리나 옷 등에도 착향이 가능하죠”라며, 워터 베이스 향수의 무궁무진한 활용법을 설명했다. 다만,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아 향수층이 분리되어 있으니, 구성 향료가 골고루 섞이도록 잘 흔들어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향수 제조사 푸에그아 1833(Fueguia 1833)의 창립자 훌리안 베델 역시 브랜드의 인기 향수를 무알코올 향수 컬렉션인 ‘퓨어 에센시아’ 버전으로 선보였다. 해당 컬렉션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휘발하는 알코올을 통해 맡게 되는 강렬한 향보다는 그윽한 잔향으로 남는 향수를 선호하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각양각색이기에 앞서 언급한 브랜드의 잔잔한 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즉각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확실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고객을 위해 디올은 ‘쟈도르 퍼퓸 도 EDP’를 출시했다. 독자적인 나노 에멀션 기술을 사용해 워터 베이스에 고농축 오일을 혼합한 포뮬러의 오 드 퍼퓸이다. 뿌리는 순간 쟈도르의 클래식한 플라워 향이 주변을 물들이며 단숨에 퍼진다. 오렌지꽃, 재스민, 장미와 목련의 부드러운 향기가 섞인 조화로운 향. 잔향은 놀랍게도 하루 종일 지속된다. 역시 알코올은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다. 

| CHECK POINT |
알코올을 함유하지 않은 향수를 만드는 건 글루텐 프리, 즉 밀가루 없이 빵을 만드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이다. 밀가루 없이 빵을 만드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속 편하게 맛볼 수 있는 건강한 빵을 완성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알코올 프리 향수도 마찬가지다. 일반 향수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향을 경험하는 것이 어렵거나 발향이 다소 약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은은한 향을 지속적으로 입을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또 방향제나 헤어 미스트로 활용하거나 패브릭 소품에 뿌리는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다. 알코올 특유의 강한 향과 피부 자극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