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상반된 가치의 공존은 우리를 자극한다. 모던과 화려, 정돈과 글램처럼. 

겨울이면 생각나는 반짝이는 것들을 탐닉하다 관심은 어느덧 데이비드 보위로 향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설명이 필요 있나 싶을 정도로 위대한 뮤지션이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아이콘 중 하나. 글램록의 대부이고, 중성적인 매력을 지녔으며, 변신을 밥먹듯이 해 대중에게 질릴 틈을 보이지 않던 데이비드 보위. 나 역시 그의 전성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기에 찾고 듣고 느낀 것이 다인데, ‘요즘 애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몇몇 후배에게 물었다.
“글램록 하면 떠오르는 게 뭐야?” 돌아온 대답은 데이비드 보위와 영화 <벨벳 골드마인>. 이 영화가 데이비드 보위를 모티프 삼아 제작했으니 세대를 막론하고 글램록은 보위 하나로 귀결되는 셈이다. 그의 노래 가운데 경쾌한 리듬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지닌 곡 중 단연 최고로 꼽는 ‘Starman’을 플레이했다. 런웨이 이미지를 뒤적이며 이 겨울에는 블랙 컬러 베이스에 모던하게 정돈된 글램록 패션을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글램록을 짚고 넘어가는 게 순서다. 글램록은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태동한 음악 형식이다. 장르의 뿌리는 로큰롤과 사이키델릭, 하드록 등을 오가지만 겉모습은 하나같이 화려한 장식으로 특별하게 옷을 입고 진한 메이크업을 즐기며, 남자와 여자를 판단할 수 없는 양성적인 외모와 뉘앙스를 어필했다. 당시 영국이 큰 불황을 겪는 시기였기에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데 글램록만큼 좋은 도구가 없었으리라. 글램록 패션을 대표하는 것은 화려한 비주얼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짝이는 시퀸, 메시나 체인 등 메탈릭한 소재와 텍스처, 속이 비치는 시스루 디테일, 그리고 대체로 몸에 딱 달라붙거나 각선미를 드러내는 등 퇴폐적인 바이브도 한몫 거든다. 

이번 2022 가을/겨울 시즌 글램록은 컬러가 만연했던 봄/여름 시즌과 달리 블랙 컬러를 중심으로 한두 가지 디테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베르사체는 화려한 패션 하우스답게 라텍스 소재 스타킹을 적극 활용했다. 라텍스의 은은한 광택이 다리를 더 길고 곧게 뻗게 하는바. 상의는 뷔스티에 모티프의 구조적인 드레스를 매치해 대비를 주었다. 눈 주위를 블랙 섀도로 잔뜩 칠하거나 입술을 검은색으로 바르는 등 모델의 메이크업에서는 글램록에서 파생한 고딕록이 생각나기도. 대비의 묘미를 보여준 것은 돌체앤가바나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글램록에 80년대 팝 무드를 더한 돌체앤가바나는 과장된 어깨와 홀쭉한 허리, 가는 다리를 강조해 시대적 분위기를 더했다. 매 순간을 즐기는 데 도움을 줄 만한 활기찬 옷을 만들고 싶었다는 캐롤리나 헤레라의 웨스 고든은 블랙 컬러에 구슬로 엮은 피더를 장식해 클리비지가 돋보이는 점프슈트를 제작했고, 보다 섹슈얼한 의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블루마린의 니콜라 브로냐노는 시퀸과 메시 소재를 이용해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보이는 데 집중했다. 한편, 저마다 다르게 그리는 여성스러움과 섹슈얼함은 언제나 수다를 떨고 싶은 주제다. 디자이너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앰부시는 메시 소재의 보디컨셔스 보디슈트에 차가운 금속 뱅글을 주렁주렁 달았다. 가슴에는 너무 진지해지지 말라고 타이르듯 거대한 하트 모티프를 장식했다. 디온 리는 시스루 레이스 장식과 투박한 가죽을 믹스매치해 구조적 실루엣이 돋보이는 테일러링으로 섹슈얼함을 표출했다.
GCDS의 바스트 라인이 돋보이는 의상에서는 이제 막 사회에 내던져진 철부지 소녀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이번 시즌 글램록 패션을 즐길 때 가장 주요한 포인트를 하나 꼽으라면 오버더니 부츠와 사이하이를 넘나드는 길고 긴 부츠의 활약이 되겠다. 코페르니, 지암바티스타 발리, 지방시, 이자벨마랑, 스텔라 매카트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브랜드에서 ‘부츠’라는 치트키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스타일링을 극대화했다. 번성과 퇴보를 반복하는 인류의 역사는 그럼에도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데이비드 보위는 언젠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침 플레이리스트는 돌고 돌아 ‘Space Oddity’에 멈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 부디 오늘의 안녕과 즐거움을 빈다. 모던과 화려함 그 사이 어디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