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강한 몸을 위해 뜨거운 항해를 떠난 여자들의 이야기. 

올 한 해 TV 프로그램에서는 운동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방송인 박나래는 격투기를 하고 홍윤화와 고은아는 씨름에 사활을 걸었다. 꾸준한 인기로 시즌제에 안착한 <골 때리는 그녀들>과 <노는언니>를 비롯해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 <씨름의 여왕> 등에서 언니들은 숨을 헐떡이고 구슬땀을 흘린다. 곳곳에서 비춰진 운동하는 여성의 서사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자발적으로 모여 동호회를 만들고, 축구와 풋살, 농구, 야구 등 팀 스포츠를 즐기며, 강한 몸을 위해 커뮤니티를 결성하고 운동을 음미한다. 이들이 운동을 욕망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좋아서 땀을 흘릴 뿐이다. 희생과 득점이 가져다주는 팀 운동의 묘미, 하루하루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신체 기록의 뿌듯함은 오롯이 즐기는 자만의 것이다.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 | 위밋업스포츠 강사 서보희

2011년, 스무 살이 되자마자 대한민국 럭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처음에는 럭비가 뭔지도 잘 몰랐다. 당시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세대에서 열렸다. 럭비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서울 소재 학교를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선발전을 치렀다. 체력 테스트만 엄청나게 했던 것 같다. 지원자 50명 중 23명이 뽑혔다. 여자럭비는 2007년부터 클럽식으로 운영해왔는데 국가대표를 정식으로 만든 건 2010년이다.

이후에는 주로 어떤 트레이닝이 이어졌나?
국가대표로서 국제 시합을 준비했다. 국내에는 마땅한 상대가 없어 중학교 남자아이들과 경기를 했다. 해외 전지훈련에 가야 여자 팀과 연습할 수 있는데, 2016년에 처음 갔다.

그럼에도 약 9년 동안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그 동력은 무엇인가?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럭비는 공을 든 상태에서 질주와 돌파를 통해 점수를 내는 스포츠다. 득점을 위해 악착같이 돌진한다. 내 희생으로 동료에게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거나, 패스를 해서 득점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 상대를 추월해 득점할 때의 행복 등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넘친다.

함께하기 때문에 기쁨도 클 것 같다.
처음 럭비를 배울 때부터 들은 ‘럭비 3대 정신’이라는 게 있다. 희생, 협동, 인내가 중심이다. 럭비에 존재하는 문화 중 ‘노사이드’가 대표적이다. 경기 중치열한 경쟁 상대였던 양 팀이 경기가 끝나면 편 가름 없이 친구가 된다는 뜻으로 서로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 응원을보낸다.

럭비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몸의 기능은 무엇인가?
코어와 체력. 럭비는 7인제와 15인제로 나뉜다. 15인제는 힘과 기술, 스피드를 기준으로 역할 구분이 확실한 반면 7인제는 힘도 쓸 줄 알면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힘 싸움도 하고 달리기도 빨라야 공을 지킬 수 있다. ‘스크럼’이라고 특정 대형을 만들어 힘 싸움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 코어 근육이 받쳐주지 않으면 크게 다친다. 무릎은 떠 있지만 양손과 발로 땅을 짚는 자세가 럭비 훈련의 기본이다. 여기에 뛰는 것, 핸들링, 캐치 같은 기술을 더해간다.

은퇴 여성 선수들이 만든 위밋업스포츠와는 2년째 함께하고 있다.
위밋업스포츠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이곳에 선수가 되기 위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다 함께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내가 패스에 성공하면 기쁘고, 우리 편이 잘 받아주면 그건 그것대로 기쁘다. 여기에 득점까지 성공하면 즐거움은 배가된다.

현재 국내 리그는 어떻게 운영되나?
여자는 리그 자체가 없다. 남자는 실업 팀 3개와 국군체육부대 소속 상무 팀이 있다. 총 4개 팀으로 리그가 운영된다. 여자럭비 국가대표 팀은 몇 년 전 해체됐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 럭비 지도자라는 타이틀은 더 빛날 수밖에 없겠다.
우리나라에는 여성 럭비 지도자가 아예 없었다. 나 역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성 지도자는 진짜 어렵겠다고 느꼈다. 팀과 선수가 없을 뿐 아니라 남자 선수도 설 자리가 없는데, 여자 선수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다 보니 정식 지도자가 됐다. 열심히 사명감을 갖고 럭비를 더욱더 사랑하려고 한다.

 

‘거거익선’의 미학 | 샤크짐 코치 샤크, 에리카, 하나, 제이미

샤크짐은 여성 전용 그룹 트레이닝 센터다. 개인의 운동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케틀벨과 바벨을 이용한 3대 운동을 주로 하는 1호점, 소도구를 이용한 근력과 유산소운동에 집중한 2호점, PT 전용인 3호점을 각기 다른 콘셉트로 운영한다. 이곳의 코치로 활동하는 네 사람은 다양한 운동을 경험했다. 요즘은 칸주게이트 메소드라는 바벨을 이용한 웨이트 리프팅을 주 훈련으로 삼는다.

네 사람의 근육을 보면서 한참을 감탄했다. 자랑할 만한 기록도 상당할 것 같다.
에리카 너무 많다.(웃음) 아시아 세 번째 ‘아이언 메이든(24kg 케틀벨로 한 다리 스쿼트, 프레스, 무게 턱걸이를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격)’이다.
샤크 아시아 두 번째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외에 더 많지만 가장 최근 기록으로는 스트롱퍼스트에서 주최하는 TSC(Tactical Strength Challenge)에서 세계 1위를 했다는 것.
제이미 피지컬로는 마땅히 자랑할 기록이 없지만, 케틀벨 운동에서 바이블처럼 내려오는 책 <케틀벨 심플 앤 시니스터>를 번역했다.
하나 데드리프트 170kg에 성공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샤크 어릴 때부터 활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했다. 하지만 늘 비만이었다. 운동신경이 좋아 체대에 진학했지만 졸업하고도 다이어트는 여전히 숙제였다. 다이어트를 위해 크로스핏을 하며 운동을 향한 욕망을 일깨웠다. 3kg 덤벨로 운동하던 내가 어느 순간 10kg 덤벨을 거뜬히 소화하는 등 몸과 체력이 성장하는 게 보이니 동기 부여 역시 확실했다.
에리카 어떤 운동을 해도 두 달 이상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다. 뷔페처럼 맛만 보며 여러 운동을 순회하던 중 크로스핏에 안착해 10년을 했다. 나를 단련하는 운동만 하다 타인을 가르치면서 개인 운동 역시 점점 더 정교해진 것 같다. 크로스핏의 목적은 신체의 열 가지 기능을 골고루 발달시키는 것이고, 여러 종목을 크로스 오버하며 이뤄진다. 이 다채로운 움직임 속에서 내게 더 맞는 운동, 내가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아가는 데 좋은 기회가 됐다.
제이미 타고나기를 남보다 체구가 작은 데다 힘이 세지도 않았다. 체육 시간이면 구석에 앉아 있는 운동을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20대 후반 다이어트를 하려고 찾은 킥복싱 체육관에서 운동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내게 운동을 민첩하게 따라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킥복싱 코치로 일하다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퍼스널 트레이닝과 관련된 교육을 받고, 바벨 트레이닝, 케틀벨 트레이닝, 요가까지 섭렵했다.
하나 나 역시 운동을 하기 전까지 움직이는 걸 되게 싫어했다. 그러다 우연히 크로스핏을 시작했는데, 내 안에 품고 있던 힘을 발견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잘하고 싶어지더라.

내 몸을 긍정하는 과정 역시 동반되었을 것 같다.
하나 맞다. 남보다 큰 내 몸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이어트하면 예쁘겠다”는 말을 가족에게도 자주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삶의 무대가 좁다 보니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한 후 함께 운동하는 남자들조차 내 신체 조건과 힘을 부러워했다.
에리카 하나 코치가 자기 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커다란 골격, 강한 관절을 기반으로 한 튼튼한 몸을 전에는 좋게 보지 않았다. 수업 때면 너무 멋있다며 회원들이 가장 선망하는 코치다.
하나 이런 반응을 샤크짐에서 처음 경험했다. 내게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멋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냐’라는 질문만 쏟아질 뿐.

운동을 시작한 후 삶의 효용성이나 가치관 역시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
샤크 운동을 하기 전에는 ‘강하다는 것’을 막연히 선망했다면, 운동을 시작한 뒤에는 그 강함에 여러 종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에리카 샤크 코치의 말에 동의한다. 운동을 할수록 느끼는 건 ‘거거익선’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한창 운동을 하면서도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여자가 이 정도 세면 됐지’ ‘여자가 이 정도 두꺼우면 됐지’ ‘여자가 이 정도 어깨면 됐지’라는 생각 자체가 틀렸던 거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세상은 편해진다. 몸이 튼튼할수록, 면역력이 강할수록 나쁜 게 없듯 물리적인 개념으로 강해서 불편한 건 하나도 없다. 나도 몰랐던 선입견이 하나씩 깨졌다.

막연하게 짐작할 뿐 사실 그 기준점은 오롯이 내게 있다는 뜻인가?
에리카 맞다. 샤크짐에서 축구와 농구, 풋살 같은 동호회를 운영하는데, 같이 경기를 해보면 원래 이 운동을 하던 분들이 충격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술적으로는 떨어지지만 기초체력이나 파워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이라서. 이런 포인트에서 충격을 받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더 잘하기 위해 샤크짐을 찾는다. 이렇게 함께 운동하며 스스로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닫는 시너지가 발생한 적도 있다.

샤크짐은 거울, 간판, 성별 고정관념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전용’이라는 가치는 운동을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느껴지는 차이가 있나?
제이미 미묘한 경쟁이나 불필요한 긴장감이 없다. 샤크짐에 오기 전까지는 ‘여성 전용 체육관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일하며 편안한 곳에서 함께 운동할 때 발현하는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목격했다. 운동은 단순히 잘하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기 싫은 날은 다른 사람의 텐션이 나를 이끌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연대감 역시 덩달아 끈끈해진다.

샤크짐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규칙과 가이드는 점점 확고해지는 편인가?
에리카 어떤 지점에서는 확고해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유연해지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거울이다. 1호점에는 거울이 없지만, 2호점과 3호점에는 있다. 이 거울은 나를 단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세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여성주의의 성장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페미니즘이 대두되었을 때는 이와 관련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도 성숙해짐에 따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생겼다. 그런 면에서 한계는 점점 더 옅어지는 것 같다. 엄격한 기준을 장착하고 출발했지만 사람들의 성숙도가 높아지다 보니 우리 역시 유연해지는 거다. 하지만 여성 전용이라는 조건만큼은 앞으로도 확고히 지켜갈 것이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종목이 있나?
에리카 아주 작더라도 꾸준히 어느 정도의 향상성이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1~2년은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10년이 넘어가면 앞날이 막막할 때가 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 역시 신체적으로 정점을 찍고 내려간다고 여겨지는 시기다. 그럼에도 미세하게나마 뭔가가 늘면 좋겠다. 유연성이든 가동성이든 웨이트의 무게든 할 수 있는 게 뭐라도 조금씩 성장하면 좋겠다.
샤크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느낌이 들어 소소한 목표를 세우는 편이다. 어떤 대회나 타이틀 같은 작은 목표가 있으면 늘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기록을 계속 세워갈 것 같다.
제이미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커진다. 하나 아쉬운 건 뭘 물어보거나 상의할 만한 여성 트레이너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세대에게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 선배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여러 사람과 같이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원래 운동을 혼자 하는 편이었는데 함께하면 더 오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샤크짐에서 깨달았다.
하나 그래서 내게는 이 크루가 너무 소중하다. 샤크짐이 아니었으면 운동을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