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나 사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주어진 일만 하겠다고 선언하는 ‘조용한 퇴사자’가 등장했다. 워라밸을 회사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입사 후에는 조용한 퇴사를 택하는 시대. 회사를 다니는 방법에 뾰족한 답 같은 건 없다지만, 이제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회사, 어떻게 다녀야 할까? 

예능 프로를 보다가 출연자의 모니터에 눈이 갔다. MBC <어쩌다 출근> 출연으로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 ‘힙한 직장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동수 대리의 모니터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그는 가슴 한쪽에 사직서 대신 이 문장을 품고 산다고 했다. 올해로 12년 차. 동기들은 과장, 차장 직급을 단 지 오래지만, 승진의 타이밍에 육아휴직을 택했다. 과장으로 진급하는 것보다 아이의 한 번뿐인 지금을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그의 모니터에 붙어 있는 문장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책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회사보다 중요한 건 제 인생인데요?” 지난 몇 달간 SNS에는 ‘조용한 퇴사’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이를 접하고 일면식도 없는 이동수 대리를 떠올린 건 그의 행보에도 조용한 퇴사의 색이 묻어 있기 때문일 테다. ‘조용한 퇴사’의 특징을 몇 가지 나열해보면 이렇다. ‘승진이나 연봉 상승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기를 거부함’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되 정해진 업무 시간 외의 추가 업무는 하지 않음’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을 바라지 않음’ ‘팀원과의 소통 단절’ ‘시키는 일만 함’. 한마디로 영혼 없이 회사를 다니는, 심리적 퇴사에 가깝다. 물론 이동수 대리가 이 모든 항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쩌다 출근>에서 비춘 그는 동료, 상사와 누구보다 활발하게 교류하는 팀 내 분위기 메이커였으니까. 하지만 회사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대신 온전한 사생활의 영역을 지키며 그곳에서 삶의 의미나 행복을 찾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엔 조용한 퇴사의 핵심이 녹아 있다.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 펠린(Zaidle Ppelin)이 틱톡에 업로드한 17초짜리 영상이 ‘조용한 퇴사’의 시작이었다.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를 선언하고 실천한 그의 영상은 지금까지 조회수 350만을 기록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과 비교했을 때 균형을 넘어 퇴근 후의 삶에 더 무게를 싣는다는 점에서 회사와 일에 대해 더욱 방어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한 퇴사를 선언한 이들에게 회사는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를 지니기보다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조용한 퇴사는 목표를 위해 무한한 열정을 요구하며 무조건 열심히 일하자고 외치는 ‘허슬 문화(Hustle Culture)’의 대척점에 서서 조용하고 강력하게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개념이 업무 집중력과 생산성을 높일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초과근무를 하지 않기 위해 정해진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맡겨진 책임을 회피하며 근무시간만 칼같이 지키려 한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교묘하게 게으름을 피울 명분으로 삼는 순간 명백한 근무 태만이 될 뿐이니까.

MZ세대로 분류되는 20~30세대의 유입과 함께 불거진 개념인 만큼 이에 대한 세대 간 의견 차이도 뚜렷하다. ‘평생직장’이 옛것으로 취급받는 지금, 더 이상 꿈의 직업 같은 건 없다. 이제 막 회사에 발을 들인 사회 초년생에게 꿈은 단순히 직업으로 치환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대신 자신의 너른 꿈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한다. 훗날 어디로 뻗어갈지 모르는 내 커리어를 위해, 창의성과 역량, 체력과 열정을 회사에서 모두 소진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자연스레 조용한 퇴사로 이어진다. 일주일에 6일을 출근하고, 초과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며 회사에 헌신적인 태도로 일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일부 기성세대나 조직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퇴사보다 ‘조용한 퇴사’를 더 큰 리스크로 여기며 날을 세운다.

조용한 퇴사자가 많아질수록 팀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문제가 가시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한국이 오랜 기간 장시간 노동문화를 미덕처럼 여겨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개념이 단순히 MZ세대만의 전유물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노동의 가치는 하락하고 더 이상 무조건적인 열심이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 변화를 서서히 체감했을 일부 기성세대도 자이들 펠린의 영상이 화두에 오르기 한참 전부터 조용한 퇴사를 실천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같은 환경에서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청년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물가 상승, 치열한 경쟁 풍조, 코로나19를 겪으며 더욱 좁아진 취업문을 통과한 이들에게 조용한 퇴사는 방전된 삶을 지킬 하나의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조용한 퇴사에 대한 자구책으로 ‘조용한 해고(Quiet Firing)’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것도 옳은 방향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다시 내일의 출근으로 눈을 돌려보면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진짜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일주일에 5번, 하루 8시간은 회사에 머무르며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옆자리의 직장 동료와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이 더 많고,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돈을 번다. 이런 일련의 생각은 돌고 돌아 결국 회사에서의 시간 역시 소중한 삶의 일부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 이는 각자의 몫이다. 일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서, 회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조용한 퇴사’를 택했대도 내가 하지 않은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하게 되는 게 조직이고 기업이기도 하다. 그저 ‘조용한 퇴사’의 존재가 한국의 일터에서 개인의 일과 삶의 균형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 시작은 오늘도 묵묵히 출근길에 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