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본 태풍 속 ‘주 기자’의 화법.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역대급 대형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몰아치던 날이었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전국 각지의 기자들을 연결해 현지 상황을 긴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여러 연령대 기자들의 보도를 듣노라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몇몇 젊은 여성 기자에게서 발견되는 비전형적 보도 스타일의 어투였다. 긴장감 높은 상황에서 높아지는 하이 톤, 소위 혀 짧은 소리, 예사소리인 ㄷ, ㅈ을 된소리인 ㄸ, ㅉ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향이라든지, 입을 크게 벌리지 않기 때문에 끝소리를 흘리거나, 모음이 변형되는 현상, 그리고 묘하게 종결 어미 끝을 올리는 억양이 귀에 들어왔다. 이 소리를 또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1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를 일으킨 쿠팡플레이 예능 프로 <SNL 코리아>의 주현영 인턴 기자 영상에서 받은 인상과 유사했다. 즉, 주 기자는 현실에도 있었던 셈이다. 

주현영 인턴 기자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을 때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민간인 사찰 그만하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현재 20대 여성의 어조, 특히 공적인 발표를 할 때의 담화 양식을 잘 모사했다는 평가다. 주 기자의 프레젠테이션은 음운음성학적 측면에서는 위에 기술한 것처럼 유아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발성, 담화 전략의 측면에서는 미리 짠 포맷에 맞춰 질문하고 예상한 답변을 -전문 용어로는 수사적 질문(Rhetorical Question)-자문자답하며 이어가는 방식이 특징이다. 후반부에 예상하지 않은 반박 질문이 들어왔을 때는 당황해서 앞선 질문을 반복하거나 혼잣말에 가깝게 중얼거리거나 큰 의미 없이 “감사합니다”라는 담화 표지자로 시간을 벌거나, 내용 없는 문장을 발화해서 듣는 이에게 소통에 실패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마지막에 메인 MC 안영미가 윽박지르자 목소리가 떨리거나 눈물을 애써 감추는 부분은 코미디적 과장이었지만, 현실에 전혀 없는 모습도 아니었다. 

이 영상에 대한 다른 반응 중 하나는 20대 여성의 언어 행동을 희화화하는 태도에 대한 반감이다. ‘주 기자’로 대표되는 20대 초중반 여성의 언어 습관을 부풀리고, 프로답지 않은 감정적 태도와 회피 행동을 강조해, 그러잖아도 전문성에서 공격받기 쉬운 20대 여성을 웃음의 재료로 삼았다는 비판이다. 반응 양상은 다르지만, 전문 영역에서 그에 걸맞은 프로페셔널리즘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성별, 연령에 따라 넓게 걸쳐져 있다. 즉, 여성도, 남성도, 청년도, 중년도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다만 행동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물쭈물하거나 반대로 공격하거나, 호통치거나, 울 수도 있다. 집단에 따라 더 두드러지는 방식이 있지만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인이 공적 영역에서 아이 같은 발성을 쓴다는 건 장점은 아니다. 분명, 태풍 관련 보도를 들었을 때 시청자로서의 나는 똑같은 20대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소아 편향 발성의 기자보다는 좀 더 전통적 보도문의 발성을 가진 기자에게 더 신뢰가 갔다. 사람은 물론 타고난 음성기관 형태에 따라 고유한 음성적 특질이 있고, 개성에 따른 언어 사용법이 있다. 또 태어나고 자란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다른 언어 습관이 형성된다. 그렇지만 각자의 언어 사용 방식이 다르더라도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직업이나 발화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이것이 사회적 언어의 기능이다.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대상과 영역에 따라서 여러 다른 언어 형태를 고를 수 있는 것이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가족과는 그 지역 사투리를 쓰더라도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동료와는 표준어를 구사하거나, 누구보다 보수적 언어를 사용하는 교사가 같이 ‘덕질’하는 친구를 만날 때는 속어나 은어를 쓰기도 하며, 똑똑하고 분명한 발음을 선호하는 아나운서가 집에서 아기에게 말할 때는 혀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직장 내 많은 40~50대 상사는 이 점을 불평한다. 요즈음 신입 사원이 직장 내에서 공적 화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아에 가까운 발성이나 회피적 어법도 포함된다. 지나치게 일상적 어투를 직장에서 사용하면서 프로페셔널리즘을 희생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점도 있다. ‘시대(Era)’와 ‘세대(Generation)’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어느 시대든 구세대와 신세대의 발화 방식은 다르다. 그렇지만 1990년대의 20대와 2020년대의 20대가 똑같은 어법, 발성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기분이 좋거든요”로 대표되는 90년대 X세대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20대 서울 거주 여성의 발성은 현재 20대 서울 거주 여성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그 여성의 발성은 점잖은 40대 여성의 발성과 유사할 것이다. 한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세대와 시대는 교차하며, 개인의 언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20대 여성의 언어 특징으로 지적되는 유아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과거의 시점 아닐까? 즉, 10대의 언어 습관이 20대까지 확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적지 않은 20대가 공유한다면, 현재 젊은 세대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전체 언어 행동 양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달리 생각할 점도 있다. 유아적 화법에 대한 인식은 어느 시대나 좋지 않았다. 12년 전인 2010년 8월 13일 자 <한국경제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했쪄요’… 귀엽게 보이려는 ‘혀 짧은 소리’ 소통장애 부른다”라는 기사에서는 10대와 20대가 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는 소아 편향 발성 유행이 “조음 장애, 학습 발달 저해, 국어 오염(!)”을 부른다고 심각하게 비판하면서

그 이유를 (1) 잘못된 언어 습관이 굳어진 경우,
(2)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잘못을 피하려는 성향,
(3) 현재에 대한 불만으로 회귀하려는 심리라고 한다. 전문가의 의견이니 일리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혀 짧은 소리를 ‘아이 언어’로 국한하려는 전통적 태도가 있다. 하지만 지금 30대가 된 그들도 이렇게 말할까? 국어는 오염됐을까? 실은 이런 언어 습관은 아이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의 화법이기도 하다. 

‘주 기자 화법’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공식에 가까운 발표 방식은 사회의 형식에 순응하고 위반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상대방 말의 반복이나 어휘를 고를 때 망설임도 실수를 줄이려는 태도에서 우러난다. 위압적인 상사의 말에 대한 회피적 태도도 전형적 방어기제다. 어째서 20대 여성에게 이런 화법이 더 일반적일까?
이는 사회적 요구와도 관련 있다. 똑같이 형식적 말투를 썼을 때의 평가가 남성과 여성에서 실로 다르다. 부드럽고 공감을 보여주는 어법은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기고, 천박한 어휘를 쓰거나 말실수했을 때 비난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여성의 방언은 귀엽게 여기고, 남성의 방언은 더 남성적이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자신을 귀여운 약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하는 화법은 한편으로는 방어적 태도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어적 화법을 반복해서 쓰면 계속 그 위치가 굳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이에 머무를 수 없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세대와 시대의 요구 사이에 갈등하면서 태어난 ‘주 기자 화법’, 그러나 이는 여성의 화법을 다시 희화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배우에게서 볼 수 있듯이 타고나게 유아적 발성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무한한 언어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개성을 더해 말하지만, 일상과 전문 영역을 구분하고 각자의 상황에 더 어울리는 언어 형태를 고를 능력이 있다. 적어도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을 바로 ‘프로다운 말하기’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