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마켓부터 베스티에르 콜렉티브까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지속가능한 패션 소비에 대하여.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비정기적으로 ‘돗자리 마켓’이 열린다. 말 그대로 누구나 돗자리를 펴고 원하는 물건을 진열해 팔 수 있는 플리마켓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한참 뜸했던 돗자리 마켓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우리 동네 옆 동네 할 것 없이 일대가 들썩였다.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주차 대란이 일어났고, 마구잡이로 길에 주차한 차량 탓에 일방통행길이 꽉 막혔지만, 그런 것들은 돌아온 ‘빅 재미’에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판매 품목은 실로 다양했다.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몸에 작아진 옷과 신발, 분명 언젠가 열심히 들고 다녔겠지만, 지금은 애정이 사라진 철 지난 가방,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액세서리, 책장에서 긴 잠을 자다 나온 것 같은 빛바랜 책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전히 견고한 인기를 자랑하는 포켓몬 카드였다. 팔겠다는 아이들이나 사겠다는 아이들이나 땡볕 아래 고사리 같은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판 돈으로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등 시장경제를 체득하고 있었다. 내게 쓸모를 다한 물건이 타인에게는 굉장히 쓸모 있는 세컨핸즈 개념도 자연스럽게 익혔으리라. 

패션 시장 규모가 커지고 한 해 생산하는 의류의 양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증가하고, 폐수 오염도가 높아짐을 뜻한다. 급성장하는 패션 산업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 기후 위기를 고려할 때 지속가능한 패션, 곧 지속가능한 소비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중대 과제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상품 아닌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리세일은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소비라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세컨핸즈 제품을 거래하는 플리마켓은 존재해왔다. 특색 있는 해외 도시에 가면 늘 유서 깊은 플리마켓에 들렀다. 그때는 그저 도시 역사의 스토리를 간직한 물건을 산다는 것이 매력적이었고, 가끔은 오래되어 더욱 빛을 발하는 명품 가죽 백 같은 제품을 발견하는 득템의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러나 MZ세대가 소비의 큰 축을 담당하는 요즘은 그 의미가 좀 다르다.

MZ세대는 적극적으로 가치 소비를 하는 첫 번째 세대다. 저렴하다고 해서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 심리적 만족을 주는 어떤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기업이나 제품이 주는 메시지가 자신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질 때는 가격이 조금 부담되더라도 과감하게 취함으로써 ‘미닝아웃’의 신념을 표출한다. 착한 기업은 돈쭐을 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회에 해를 끼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불매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MZ세대에게 세컨핸즈 제품을 구입하는 건 가심비를 충족하면서, 미닝아웃할 수 있는 적절한 소비의 출구다.
숟가락 받침대처럼 소소한 물건까지 당신 근처의 모든 중고 물품을 모아 온라인 플리마켓을 실현한 데가 당근마켓이라면, 글로벌하게 럭셔리 중고 명품만 한데 모아 럭셔리 편집 숍을 완성한 곳은 더리얼리얼이다. 온라인으로 운영하던 더리얼리얼이 뉴욕 소호에 최초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럭셔리 리셀러 시장을 새롭게 재편한 것이 벌써 2018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MZ세대가 소비의 중심을 이루고 팬데믹을 거치는 사이 많은 럭셔리 리셀러 플랫폼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패션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는 ‘베스티에르 콜렉티브’가 한국 지사를 오픈하고 현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Long Live Fashion’이라는 철학 아래,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의 옷장 속 아이템을 나누며 더 많은 영감을 이야기하길 기대한다. 그로 인해 패션 산업의 낭비적인 관행과 과잉생산, 과소비를 줄이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가 호주, 싱가포르, 홍콩 다음으로 한국을 선택한 건 한국의 탄탄한 럭셔리 시장 덕분이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한국의 럭셔리 시장은 1백50억 유로(약 20조8천6백억원) 규모로 전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커뮤니티가 소개하는 아이템을 거대한 옷장에 비유한다면, K-팝과 K-드라마, K-패션, K-뷰티 등 K-컬처를 선도하는 한국 양질의 아이템이 옷장을 가득 메우길 바랐을 터.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확실한 현지화 서비스를 구현하려고 투르쿠앙, 뉴욕, 홍콩, 런던에 이은 다섯 번째 검수 센터를 서울에 오픈했으며, 그곳에서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훈련한 전문 검수팀이 회원 수백만 명에게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네이버가 출자한 코렐리아 캐피탈과 구찌, 발렌시아가, 생 로랑 등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케링, 타이거 매니지먼트 글로벌 등 기업의 투자를 받아 화제를 모았다. 수요가 많은 곳에 자본과 투자가 모이는 법. 국내외 굵직한 기업이 MZ세대의 가치 소비에 발맞추기 위해 선순환형 패션 환경을 다지는 데 주력하는 셈이다.

유수의 패션 하우스도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철학에 공감해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에 동참하고 있다. 가장 먼저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브랜드 승인’ 프로그램을 이용한 패션 하우스는 알렉산더 맥퀸이다. 알렉산더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 역시 새 시즌을 준비할 때 이전 시즌에 쓴 소재를 다시 사용해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이를 확대해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시스템 아래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옷을 재매입하고 새 생명을 부여해 재판매하는 순환 경제를 실천했다. 그 후 멀버리, 루이자 비아 로마, 마이 테레사 등도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와 파트너십을 맺고 리세일을 통해 순환형 패션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더 나은 미래는 몇 가지 커다란 결정이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그 행동이 모여 좋은 에너지로 시너지를 발휘할 때 우리는 창대한 꿈을 꿀 수 있다. 불현듯 플리마켓에서 포켓몬 카드를 사고팔던 아이들의 미래 소비 형태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혹시 인공지능(AI)이 단 한 조각의 천도 남기지 않고 패턴을 뜨고, 폐수나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는 자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신세계가 오지는 않을지. 엉뚱한 상상도 간절한 오늘의 현실이다. 

 

| SUSTAINABLE EVERYWHERE |

10TOW in TOKYO

특징 꼼데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이세이 미야케 등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의 세컨핸즈 제품들.
세컨핸즈를 좋아하는 이유 모두 입는 기성복에 질릴 때쯤 레어한 세컨핸즈 제품으로 룩을 환기하는 묘미.
자랑하고 싶은 아이템 꼼데가르송 프린트 원피스.
두고 와 아른거리는 아이템 꼼데가르송 2001년 가을/겨울 메리제인 슈즈. 더워서 안 샀는데 선선해지니 생각이 난다. – ES CONSULTANCY 디렉터 김선영

OXFAM in LONDON

특징 런던 곳곳에 자리한 채러티 숍. 기증받은 물품을 팔고 사회로 환원하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아름다운가게’ 같은 곳.
추천 동네 이름 모를 빈티지부터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다양한 제품을 보유한 노팅힐과 말리본 지점.
세컨핸즈를 좋아하는 이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제품을 우연히 만났을 때는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쇼핑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큰 기쁨이 즐겁다.
득템한 아이템 내 몸에 맞춘 듯 딱 맞는 프라다의 니트 드레스와 쿠키 몬스터가 떠오르는 귀여운 미우미우의 슬리퍼. – THE PHRASE 디렉터 김누리

LAAMS in NEW YORK

특징 다양한 디자인의 티셔츠 등과 프린트 디테일 팬츠. 그리고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부터 빈티지 소품 구비.
바이브 분방한 아티스트의 놀이 공간? 스트리트 패션 무드.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 빈티지 잡지와 귀여운 프린팅의 팬츠.
세컨핸즈를 좋아하는 이유 온앤온리라 소장할 가치가 있고, 오래 묵혀둔 세컨핸즈 제품이 유행 키워드와 맞아떨어질 때 다시 꺼내 입는 맛이 있다. – 모델 선혜영

CHISWICK STREET MARKET in LONDON

특징 런던 치즈윅이란 동네의 치즈윅 로드에서 한 달에 딱 한 번 둘째 주 일요일에 여는 스트리트 마켓. 여행객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매력적인 곳.
구비 물건 접시와 화병 등 앤티크한 소품.
세컨핸즈를 좋아하는 이유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자랑하고 싶은 아이템 앤티크한 치즈 나이프 & 트레이 세트.
탐나지만 사지 않은 아이템 흑백 비행기 사진이 있던 액자. 짐이 많아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이가 낚아챘다. – 세트 스타일리스트 겸 춘광사설 대표 서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