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는 저 푸른 바닷속에. 

‘육식=기후 악당’이라는 말이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06년 보고서 ‘가축의 긴 그림자’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을 위한 축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산림을 파괴하며, 생물다양성 훼손에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기후 위기의 시대. 각국 정부와 유엔이 식량의 생산과 소비, 먹거리에 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나섰다.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는 2030년을 목표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며 누구에게나 평등한 푸드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 중심에 블루푸드가 있다. 블루푸드는 생선, 어패류, 해조류 등 바다에서 나고 자란 수산물을 일컫는다.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에 비해 현저히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땅을 오염시키지 않는 등 블루푸드가 지금 가장 지속가능한 푸드 시스템이라고 소개한다.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솟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블루푸드의 영양 성분은 육류에 못지않다. 하버드대 크리스토퍼 골든 교수팀은 “3,000여 종의 블루푸드와 소나 돼지 등의 육류와 비교한 결과 비타민 A, 칼슘, 철 등 성분 모두 육류보다 블루푸드에 더 풍부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맛과 영양과 건강과 지속가능성까지 잡은 가을 제철 블루푸드를 찾아 수산 시장을 찾았다. 전국 팔도에서 모인 싱싱한 수산물은 이토록 아름답기도 하다.

 

| 갈치 |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20년째 갈치, 장어, 오징어 등 선어를 취급해온 일해수산의 임희윤 대표는 말한다.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보다 비싸다는 말이 있어요.” 여름 지나 겨울 오기 전까지 영양 보충을 살벌하게 한다는 것이다. 날카롭고 뾰족한 갈치 이빨을 바라보다가, 갈치는 자기 이빨을 아끼기로 소문이 자자하단다. 아무리 허기져도 단단한 먹이는 입에 대지도 않고 오징어 따위의 부드러운 살만 찾아 먹는다고. 야들야들 갈치 살밥의 비결이랄까. 단백질과 비타민 A, B, D군,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니 여느 육류 못지않다. “길쭉하잖아요.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맛도, 함유한 영양분도 다르대요. 아끼지 말고, 누구 나눠 주지도 말고 인당 한 마리씩 다 잡숴. 믿거나 말거나지만. 으하하.” 

| 꽃게 |

봄과 가을에 찾아와 시들해진 입맛을 끌어올리고 떠나는 꽃게의 계절 10월. 봄 꽃게의 매력이 가득 찬 알에 있다면 가을 꽃게의 매력은 통통하게 차오른 뽀얀 살밥에 있다. “천연 피로 해소제로 불리는 타우린과 키토산이 잔뜩이니 기운 달리는 가을에 딱이죠. 오는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게 돕는 보양식이기도 하고요.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어식백세 캠페인’이라고 있어요. 백세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식 위주의 식습관이 좋다는 캠페인이에요. 백합이 평균 507년을 산대요. 바다거북은 350년, 흰수염고래는 150년을 살고요. 바다 생물의 수명이 긴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해양수산부 이진우 홍보 서기관은 자신의 주관 업무인 어식백세 홍보에 열을 올렸을 뿐. 

| 대하 |

‘큼직한 새우’라는 이름이 내뿜는 박력이 마음에 든다. 가을 서해안을 따라 돌면 곳곳에서 대하 축제가 열린다. 뜨겁게 달군 천일염 위에서 파닥거리며 익어가는 붉은 대하의 몸짓은 주왕산 단풍놀이와 함께 가을의 클리셰로 남았다. 10월 대하는 유독 감칠맛과 단맛이 폭발한다. 단맛을 내는 글리신 함량이 이 즈음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매력을 뽐내는 타이거새우에 홀릴 법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대하와 흰다리새우는 쌍둥이처럼 닮았으니 혼동하지 않아야 하니까. 대하의 이마뿔과 수염이 흰다리새우보다 길다는데, 차이를 알아채는 건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인다. 먹기나 하자. 가을 대하 한 입 베어 물면 입에 단 것이 꼭 몸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스친다. 

| 문어 |

고등한 생물인 문어는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을 익힐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양반고기라 칭하는데, 차례상에 꽃처럼 활짝 핀 통문어를 올리지 않는 건 불효 중의 불효. 조선시대 가정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는 “문어의 알은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고, 쇠고기를 먹고 체한 데는 문어 머리를 고아 먹으라”고 쓰여 있다. 고단백·저열량에 타우린도 풍부하다. 관건은 부드러운 식감에 있다. 강호의 문어 맛집 돌곰네의 이희경 대표는 부드러운 문어 식감의 비결은 마사지라고 말한다. “문어를 손질할 때 밀가루로 박박 문질러 닦아야 빨판도 깨끗해지고 식감도 부드러워져요. 삶는 시간도 중요한데 그건 알아도 소용없어요. 핵심은 타이밍이니까.” 

| 홍합 |

홍합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인원수에 맞춘 숟가락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한데 꽂혀 깔리는 기본 안주 홍합탕의 처우만 봐도 그렇다. 홍합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피트니스 트레이너 천봉근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닭가슴살이나 쇠고기 대신 홍합을 먹는다. “홍합은 바다의 보약이에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품고 있거든요. 단백질과 비타민, 오메가-3, 글리코겐, 칼슘, 철분, 비타민 B, 엽산, 타우린, 셀레늄, 아르기닌, 아미노산 등 근력운동 전후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다 갖고 있어요. 비싼 돈 주고 보충제 사 먹는 대신 홍합밥 한 그릇 든든히 먹는 게 낫다고 봐요.” 홍합은 숙취 해소의 왕이요, 홍합 한 마리가 하루에 물 약 25L를 정화할 수 있다. 홍합은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