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이 마라케시의 아가파이 사막 한가운데서 불현듯 탄소 중립이라는 화두를 던진 순간. 

달마가 서쪽으로 향한 까닭은 영영 몰라도 될 일이지만, 안토니 바카렐로가 불현듯 이브 생 로랑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마음의 집으로 알려진 모로코 마라케시로 향한 까닭은 꼭 알고 싶었다. 마라케시 부근 아가파이 사막 한가운데, 어김없이 심장이 튀어나올 듯 엄청난 진폭을 갖춘 세바스티안의 음악이 생 로랑 2023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의 포문을 열었다. 이토록 가혹한 기후변화 시대에 지구가 아닌 것처럼 척박한 사막 위 오아시스 위로 길쭉한 모델 군단이 쏟아져 내려 빙글빙글 도는데, 처음엔 안토니 바카렐로가 위대한 하우스의 상징 이브 생 로랑에게 바치는 노골적 헌사인 줄 알았다. 르 스모킹에서 파생한 정제된 턱시도 룩으로 연결하면 그럴 법한 말이 되니까.
하지만 의상 50벌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이브 생 로랑의 흔적이 지워지기 시작했고, 오아시스에서 해인지 달인지 모를 거대한 빛이 차오를 때는 모든 게 다 신기루 같은 착각일지 모른다는 의구심만 가득했다. 세상 모든 질감의 블랙이 벼락 치듯 할 때, 이건 그야말로 완전하고 완벽한 안토니 바카렐로다. 입고 싶다는 계산이 서기도 전에 갖고 싶다는 욕망이 먼저 솟구쳤다. 

쇼가 끝난 후 그는 2016년생 생 로랑을 이어받은 뒤 ‘처음으로, 개인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했다. 내게 그 말은 바이 이브 생 로랑이 남기고 간 호화로운 유산 가장 깊숙한 곳으로 돌진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확신을 가장 정중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에게는 자신의 의지대로 거침없이 밀고 가는 힘이 있다. 박진감이나 기백과는 꽤 다른 에너지다. 그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사려 깊고 우아하다. 영화에서 앞의 장면이 사라지는 동안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순간, 즉 다른 이미지 두 개가 하나로 희미하게 겹치는 순간을 디졸브라고 하는데, 안토니 바카렐로는 지금 그토록 유연한 디졸브의 순간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브 생 로랑과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브 생 로랑의 안식처 마라케시와 안토니 바카렐로의 안식처 LA가, 남성성과 여성성이, 남자 옷과 여자 옷이, 칠흑 같은 검정과 총천연색이, 메마른 미지의 사막과 발광하는 오아시스가 디졸브되는 순간. 디졸브는 잔상처럼 남아 의문을 품거나 혹은 제기한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아니나 다를까 쇼가 끝난 직후 받아 든 보도 자료 속 한 줄의 문장은 생 로랑의 오랜 팬인 내게 낯선 질문을 던졌다. 

‘생 로랑 2023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은 탄소 중립 패션쇼로 치러졌다.’
지속 가능이니 ESG 경영이니 하는 말이 대세 아닌 대세가 되었다지만, 생 로랑이 그 흐름에 편승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내가 동경하는 생 로랑은 레지스탕스처럼 차갑고 단호하고 파괴적이고 심술궂은 어두운 로맨티시즘이기에. 윤리나 책임과 상관없어도 그만이라는 착각에 빠질 무렵, 생 로랑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지속 가능성’을 말하는 페이지가 있음을 알았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생 로랑은 케어링의 환경 손익 계산서를 통해 탄소 배출량, 물 소비량, 대기 및 수질 오염, 토지 사용, 폐기물 생산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서 열린 이번 컬렉션은 스스로의 다짐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움직임인지도 모른다. 컬렉션 장소를 선정하면서 동식물에 관한 지역 전문가에게 자문했다고 한다.
에스 데블린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고리 형태의 빛나는 오아시스 세트에 사용한 재료와 장비는 가능한 선에서 모두 임대했고, 임대가 불가능할 경우 재사용하거나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자 했다. 쇼에 사용한 직물은 마라케시의 여성 협동조합에 기부해 추후 재활용 카펫 등을 만들고, 오아시스의 물은 아가파이 지역의 올리브나무에 뿌리거나 아가파이 사막의 관개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또 이 지역에 나무 수천 그루를 심고 우물과 태양에너지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자선 활동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생 로랑은 멈추지 않고 탄소 중립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 중요한 지역의 산림과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는 검증된 레드플러스(REDD+) 프로젝트를 통해 탄소 상쇄 프로그램 목표 달성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생 로랑을 비롯해 알렉산더 맥퀸,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 모두가 열망하는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한 케어링 그룹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노력은 특별히 주목하고 널리 알려야 마땅하다. 케어링은 2017년에 환경 발자국 40% 감축을 목표로 하는 ‘2025 지속 가능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를 위한 배려의 노력으로 환경 발자국 40% 감축, 탄소 배출량 50% 감축, 100% 투명한 공급망 구축을 다짐했다. 각 브랜드는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케어링이 <얼루어> 오디언스에게 그룹 내 주요 브랜드별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 중인 최신 내용을 전해왔다(2022년 8월 12일 기준).

 

NOW & FOREVER

알렉산더 맥퀸
– 럭셔리 패션 리세일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와 협업 시작함.
– 고객이 의류와 액세서리를 더 쉽게 재판매할 수 있도록 목표 개선함.
– 고객에게 제품을 수령하면, 알렉산더 맥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 의해 인증 및 구매되어 신용장이 발급됨.
– 수령한 제품은 NFC 태그 작업을 거쳐 미래의 고객이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함.
– 고객은 프로그램을 통해 의류와 액세서리의 수명을 연장해 순환 경제에 참여함. 

구찌
– ‘탄소 농업’을 통해 재생 농업으로 전환하도록 농부에게 자금을 지원함.
– 파타고니아의 양모 재배자에게 자금을 지원해 1800헥타르의 초원에서 재생 방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고, 토양 건강과 수질 및 탄소 격리 등을 장기적으로 촉진함.
– 자체 공급망 내에서 재생 농업에 대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전략의 첫걸음이며 제품의 재생 원료 조달을 목표로 삼고, 재생 농업 프로젝트를 확인하고 확장하려는 타당성을 연구함.

보테가 베네타
–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찾는 데 전념함.
– 디자인팀은 Circular.Fashion과 함께 교육 세션에 참석해 디자인 과정에 원형 디자인의 원리를 가장 잘 적용하는 방법을 배움.
– 전문 컨설팅 회사와 협력해 전 세계 매장을 조사하여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폐기물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함.
– 매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상태를 분석하고, 8가지 폐기물 흐름과 발생 빈도를 확인하고 평가함. 

생 로랑
– 원재료의 효율적 사용을 고려한 순환적 접근법을 적용하고 있음.
– 가죽 제품 부서는 전용 프로그램을 개발. 생 로랑의 아틀리에 내에서 점진적으로 이동해 최첨단 기술로 커팅 효율을 개선함.
– 업사이클링 가죽으로 만든 최신 핸드백을 출시함.
– 가죽을 자르고 남은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원재료의 소비를 자제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