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휴가를 결합한 ‘워케이션’이 회사원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실제로는 어떨까? 정신줄도 원격으로 도망가버린 한 달짜리 원격근무 후기.

프리랜서의 가장 좋은 점은 근무시간과 장소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기 전에 나는 도쿄에서 하는 원격근무에 재미를 붙였다. 작은 노트북 하나를 들고, 도쿄 긴자에 새로 오픈한 캡슐 호텔 하나를 예약해 2박 3일을 보내다 오는 것. 비행기표가 싼 평일에 갔으니 전체 여비도 저렴했다.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일하고, 오후에 쇼핑을 잠깐 즐기다 호텔 공용 공간에서 일을 끝내고 다시 이자카야를 향해 뛰어나가는 일상. 협업이 아닌 단순한 원고 작성 업무가 많던 초보 프리랜서 시절이었기에 가능했고, 제시간에 맞춰 화상회의에 참여할 일도 없던 팬데믹 이전의 이야기다. 

워케이션의 준비물 

프리랜서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업무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회의와 미팅이 일주일 스케줄표에 가득하고, 주중과 주말 할 것 없이 해결할 업무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월급과 안정을 포기하면서 얻은 프리랜서의 특권 중 하나인 ‘일하면서 노는 것’에 대한 열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사무실에서 일만 할 거면 다시 취업하는 게 낫지 않나? 해보자, 워케이션!” 어느 날 방언처럼 터진 이 한마디에 기대어 한 달짜리 워케이션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두세 달은 글로벌 시티즌처럼 각국 도시를 돌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나마 상반기 큰 프로젝트가 끝난 시점이고, 클라이언트도 휴가를 떠나는 7월이니 워케이션 실험을 하기에 시기도 적절했다. 우선 속초와 양양에 장기 숙소를 잡았다. 미팅은 최대한 화상으로 돌리고, 대면 취재는 날짜를 몰아서 워케이션 중간 즈음 한 번 상경했을 때 모조리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햇빛을 막는 캠핑용 가림막도 구비하고, 태닝 크림부터 비치 쇼츠까지 단단히 준비했다. 세 끼 모두 외식을 할 수는 없으니 부엌이 딸린 숙소에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미역국 수프, 1인분씩 포장한 파스타 소스 등도 준비했다. 커피 드립백, 포스트잇, 업무용 방석, 어디서든 업무에 빠르게 착수할 수 있는 아이패드와 미니 무선 키보드까지 챙기고 보니 말 그대로 ‘사무실의 원격 이동’이 실감 났다. 

양양에서의 워케이션 첫 주는 우왕좌왕이었다. 일단 포부는 원대해서 아침에 일어나 급한 메일 업무를 처리하고 선크림을 잔뜩 바른 뒤 해변으로 나갔다. 그늘막 아래 의자를 놓고 노트북을 켰다. 주중의 바닷가는 한산했지만, 이내 주말의 인파를 대비하는 해수욕장 사무소의 각종 공사 소음과 먼지로 가득 차고 말았다. “저기요,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라는 소리를 두어 번 듣고서야 그늘막을 거두고 숙소로 돌아와 키보드 사이에 낀 모래알을 털면서 남은 근무를 이어갔다. 한낮의 동해는 너무 뜨거워 실제로 ‘바다 풍경을 보며 일하기’를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뿐이다. 해가 등 뒤로 넘어가는 4시부터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지 않아도 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평소와 같은 업무량을 이고 지고 휴가를 떠나온 나를 여러 번 원망했다. 어느 날은 좀 편안하게 앉아 일할 요량으로 양양 해변의 카페 여러 군데를 훑었지만, 적절한 테이블 높이와 적당한 음악 소리를 갖춘 곳은 쉬이 찾기 힘들었다. 너무 큰 음악 소리, 알 수 없는 커피 맛, 나의 17인치 노트북을 바라보는 동정의 시선이 더해져서 30분 만에 일어나야 했다. 대기업에서 휴가철에 임시로 문을 연 워케이션 사무실도 주중에는 문을 닫았고, 이용하려면 내 인스타그램과 사연을 탈탈 털어 신청서를 쓴 후 당첨되어야 자격이 주어졌다. 

양양에서 속초로, 속초에서 고성으로, 휴가와 업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스폿을 찾아 이동할 때마다 업무 문자나 긴급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이 바다도 핫플도 없는 수산센터 뒷골목 등에 차를 급하게 세우고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거나 긴 통화를 했다. 행여나 줌 미팅이 낮에 잡히면 미팅 1시간 전부터 그 일대에서 인기가 가장 없고(손님이 없고) 규모가 제일 큰(음악 소리가 옅어지는) 카페를 찾아다녀야 했다.
양양에서 벗어나 거처를 속초로 옮겼다. 지난겨울, 설악산 근처에 새로 문을 연 한 카페를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노트북을 옆구리에 낀 내게 “워케이션에 적합한 카페”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게 생각나 그곳을 다시 찾았다. 널찍한 커뮤니티 테이블에 콘센트도 많던 곳이다. 오랜만에 다시 가본 그곳은 사진 찍기 좋은 가든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여러 커플이 쉼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테이블과 콘센트는 그대로라 많은 일을 처리했다. 귀중한 시간이라 그런지 서울에서 일할 때보다 집중도가 2배는 높았다. 어떤 날은 설악산이 눈앞에 펼쳐진 캠핑 카페에서 숨 막히는 듯한 풍광을 보느라 업무의 괴로움을 잠깐 잊은 적도 있다. 내리쬐는 햇빛에 아무리 눈을 찌푸려도 노트북 화면이 보이지 않고, 연약한 캠핑 체어 때문에 키보드를 칠 때마다 화면이 격하게 흔들려도 그저 행복했다. 바다가 코앞에 펼쳐진 속초의 리조트에 머무를 때는 워케이션의 균형이 잘 맞았다. 숙박비가 울산바위처럼 묵직했지만, 그래도 맛집도 인근 10분 거리에 몰려 있어 관광과 업무 사이 소요되는 이동 시간이 확 줄었다. 객실 내에서 여유롭게 줌 미팅을 하다가 5분간 이어지는 리조트의 쩌렁쩌렁한 안내 방송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흐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우리 리조트의 퇴실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퇴실 전에는 반드시 쓰레기를 처리하셔야 하며, 재활용 쓰레기는 각 층의 처리장으로 모아주십시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생각대로 되지만은 않아 

“워케이션 실험을 한번 해보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부모님을 속초로 모시고 주중 이틀을 할애해 효도 관광 일정을 소화할 때다. 최대한 바쁘지 않은 날짜를 고른 뒤 낮에는 관광을, 밤에는 못다 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부지런한 계획을 세운 후 시작한 일정이었다. 역시나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고, 밤 9시에 갑작스럽게 줌 미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일찍 주무시는 부모님 덕에 마음 편하게 리조트 식탁에 앉아 줌 미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서서히 커지더니 벽을 뚫고 맹렬히 퍼져 나왔다. 아무리 음소거 버튼을 껐다 켰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워케이션이라는 실험을….” 

워케이션의 마지막 한 주는 바다를 벗어나 숲으로 갔다. 휴가철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바다가 클럽처럼 붐볐기 때문이다. 국립자연휴양림 여러 곳을 검색했다. 가족의 쉼터이자 동시에 ‘피케팅’처럼 치열한 예약 전쟁으로 엄두도 못 내던 숙소다. 전국 명산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풍광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운데 국가 운영이라 숙박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최고 장점이다. 막바지 취소분이 발생했는지 속리산 근처 소박한 휴양림 예약에 성공해 그대로 차를 몰고 달렸다. 오페라처럼 들리는 다채로운 새소리를 들으며 숲속 테라스에서 서류철을 읽을 때는 ‘그래 이게 워케이션이지, 너무 좋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했다. 휴양림 내 전역에 와이파이 이용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래서, 내 워케이션 실험은 성공했을까? 이른 아침과 저녁 시간 호텔 로비로 하나둘 모여든 노트북 부대를 보며 남몰래 위안받은 일, 클라이언트가 급한 일로 대면 미팅을 세팅해 야밤에 2시간 차를 끌고 서울로 이동한 일, 양양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연수원 내 아름다운 북카페를 찾아낸 일, 달리는 차 안에서 업무 클레임을 거느라 모르는 산길로 한없이 내달린 일, 아무도 없는 저물녘 해변에 앉아 썩 괜찮은 글 한 편을 마무리한 일 등이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것처럼 반복되어 한마디로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확실한 건 ‘워케이션’은 절대 일과 휴가가 반씩 섞인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될 수 없다는 것. ‘워라밸’이 일과 삶을 반반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듯, 워케이션 역시 휴가와 업무의 물리적 결합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깨우치며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수백만원의 여비를 메꾸기 위해 사무실로 향한다.